삿포로 한 달 살기-5
벌써 삿포로에서 한 달이 다 지났다.
이곳에 있으면서 다행히 음식 때문에 고생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항상 외국을 나가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어서 귀국하면 신성한 의식이라도 되는 양 신라면에 김치를 올려먹고는 했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고자 한 달 내내 김치를 사서 냉장고에 신줏단지처럼 모셨다. 꽤나 많은 양의 김치였는데도 불구하고 다 먹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김치 쇼핑을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스시도, 낫토도 아니고 바로 김치가 되었다.
일본은 김치를 기무치라고 불렀는데, 김치의 일본식 발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기무치’를 먹고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그건 김치가 아니었다. 생긴 건 똑같은데 분명 김치가 아니다. 기무치를 먹어보신 분이라면 내 말에 모두 공감하실 거라 생각한다.
일단 ‘달다’
우리나라도 겉절이 같은 경우 매실청이라든지 이런 걸 넣는 것 같지만, 그런 종류의 단맛이 아니다. 쯔유에서 느껴지는 단맛과 같은 맥락의 단맛이다. 겉절이에 넣는 매실청은 그냥 부차적인 맛의 요소이다. 하지만 쯔유도 그렇고 ‘기무치’도 그렇고 여기서의 단맛은 거의 음식의 본질에 가까운 부분을 차지하는 단맛이다. 사실 이런 단맛은 일본음식 전반에 있는 것 같다. 뭔가 일본음식의 ‘정체성’ 같다고 해야 하나? 나도 토종 한국인 터라 ‘기무치’를 보고 묘한 반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매일 밥상에서 보다 보니 기무치에게 호감이 느껴졌다. (물론 와이프는 끝까지 기무치와 친해지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 기무치를 한국음식의 변주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용서하지 못할 변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나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하여튼 뭐든 일본에 와서 일본화하는 재주는 알아줘야 한다.
한 달간 나의 입맛을 달래준 ’기무치‘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또 한 가지 이곳에서 이질감을 느꼈던 문화가 있었는데, 바로 ‘1 인 1 케이크’ 문화였다. 나만 그럴 것 같진 않은데, 다들 후식을 먹으러 가면 음료는 두 개 시키고 케이크는 한 개 시켜서 나눠먹지 않나? 팬케이크 가게나 디저트 가게에서 한국에서 똑같이 팬케이크 한 개와 음료 두 잔을 시켰는데, 왠지 모를 이질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보다 체구가 작은 여성분들이었는데 각자 팬케이크를 한 개씩 시켜서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저분들만 그러려니 생각을 했는데, 다른 케이크 집을 가도 모두 각자 한 개씩 케이크를 먹고, 심지어는 초등학생 아이들도 각자 접시에 케이크를 가지고 있었다. 다 먹지 못한 케이크는 그냥 남기고 가는 듯했다. 곁에서 케이크를 먹고 있던 일본인 남녀를 관찰해 보았다. 남녀는 서로 다른 종류의 케이크를 시켰다. 속으로 ’ 저렇게 다른 종류의 케이크를 시켰으니 포크로 서로 먹어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남성분 여성분 각자 케이크를 정확히 반으로 잘라 각자의 접시에 예쁘게 얹어주었다.
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와이프랑 데이트 포함 거의 15년을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그 일본 남녀는 서로의 접시를 절대 침범하는 일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열풍을 불었던 깻잎논쟁 따위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는 각자 반찬그릇이 따로 있으니까
뿐만 아니다.
부딪힌 것도 아닌데 곁을 지나기만 해도 수시로 들리는 ’ 스미마셍(죄송합니다)‘라던가 모든 게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 일본‘이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덕분에 나도 스미마셍, 아리가또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가 입에 붙어서 한국에서도 무심결에 튀어나올 뻔했다.
그런데
이런 게 여행의 재미인 듯하다.
뭐가 더 잘났고 못난 문화라는 게 아니라, 음식을 나눠먹고 가까이 지내는 게 우리나라의 고유의 특성이라는 사실을 일본에 와서야 알았다.
’ 정‘이라는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일본에 와서 느낀다.
다음 행선지는 캐나다다. 당연히 일단 마트에서 김치와 쌀부터 살 거다.
김치가 밥상에 있어야 일단 안심이 된다.
벌써 캐나다 김치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