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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튼 Jul 29. 2023

하버드와 어머니

미국 여행기-1

처음으로 밟은 미국 땅은 보스턴이었다. 몬트리올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반이면 도착했다. 캐나다 내에서 이동하기 위해 3-4시간은 기본으로 타야 했던 비행기에 비하면, 이 정도면 거의 이륙하자마자 착륙한 꼴이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입국 수속은 정말 간단했다. 특이하게도 보스턴 공항이 아니라 몬트리올 공항에서 미국 입국 심사를 받았다. 물어보는 것도 거의 없었다. 사실 당시에는 그게 입국 수속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미국에서 아무 심사도 없다는 사실을 보고서야 알았다. 입국 심사에 대한 어마어마한 루머를 많이 들었던 터라, 이런 간단한 절차에 살짝 허무할 지경이었다.




첫 번째 미국 여행지로 보스턴을 선택한 것은 바로 ‘하버드’ 때문이었다. 4살 때부터였던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머니께 물었을 때, 어머니는 항상 “하버드대학교”라고 말씀하셨다. 4살 때는 꽤나 영재라는 소리를 듣곤 했기에 어머니는 '너는 하버드에 가야 해'라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그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지방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서울의 학교에 가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목표였고, 하버드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어찌어찌 지방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내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학은 턱걸이로 겨우 들어갔고, 의대에서도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요즘에는 정말 똑똑한 후배들이 의대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하버드는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하버드 설립자 동상 옆의 줄


하버드에 도착하니 저 멀리에 어마어마한 줄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설립자 동상의 발을 만지고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었다. 나도 정문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줄에 섰다. 웃긴 것은 바로 이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는 것이었다. 내 앞에 선 사람, 뒤에 선 사람 모두 당연히 한국 사람이었고, 그 앞 줄 사람들도 한국 사람이었다. 그리고 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한국어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줄에는 아시아 사람들이 많았고, 아시아 사람들 중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았다.





왠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모두 나와 같은 유년 시절을 보내었을 것이다. 분기마다 보던 모의고사를 통해 좌절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더 열심히 노력했던 우리들. 이제는 다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왔다. '우리 아이가 하버드에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라고 빈다. 하버드 설립장 동상의 발을 만지면 3대 내에 하버드에 입학할 수 있다나..?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도 후손이 하버드에 가게 해달라고 빌까 하다가 문득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그때 하버드 대학은 한여름의 더위로 푹푹 찌는 날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자식의 미래를 위해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여기에 왔다. 빨리 집에 가자고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달래며, 아이비리그 학교를 보여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내가 학부모의 나이가 되고 직접 이곳까지 와보니까 알겠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인지. 그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머니는 고3 때 학교에서 자처해 매일 야식 당번을 맡으셨다. 당시 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고, 야식 당번이 되면 매일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야식 당번이 되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70여 명의 기숙사 멤버들의 식사까지 모두 책임져야 했다. 어머니는 매일 오셔서 고생하시고, 나에게는 따로 보양식을 챙겨다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왜 하버드까지 와서 그런 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나를 채찍질하셨던 그 모든 것도, 모든 게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는 걸. 

여기 수많은 한국인들이 자기 아이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 기도했다. 


하버드에 가봤다고 안부전화나 드려야겠다. 그리고 치열했던 학창 시절의 망령을 이제 좀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3 때 어머니와 나, 모두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한 때를 보냈고 좋은 추억이지 않았냐고, 어머니 수고 많으셨다고. 




<참고>

하버드에는 졸업하기 전에 하버드 동상에 오줌을 싸야 한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매일 아침 깨끗이 동상을 청소한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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