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커리어 (6)
일에도 화장발 조명발이 있다.
직장생활 20년 차입니다.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어 회사에서는 제가 몸담고 있는 부서의 인원을 지속적으로 감축하고 있어요. 회사에 다니는 게 눈치도 보이고, 저도 더 이상 회사에 미련도 없지만, 아직 젊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제 꿈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것도 모르겠어요. 이직 준비를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두렵고 막막해요. (43세 B씨)
취업준비 1년차 입니다. 금융권에 입사하고 싶어요. 금융권 입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다른 일에 비해서 높은 연봉과 복지혜택이 때문이죠. 금융 관련 자격증과 토익점수 등 기본 스펙 준비하기가 벅차요. (26세 K씨)
저는 취업 준비한지 3년 됐어요. 취업공고가 뜨면 어디나 지원서를 내봅니다. 어디든 걸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지원하는 회사를 특별히 동경한다거나, 그 일을 특별히 좋아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다. 대기업 계열 사면 최고인데요. (28세, Y 씨)
내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학교 교육이라는 것은 대량의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이 크다. 일터에서나 교육현장에서나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와 개성을 중시하기보다는 거대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하기 쉽다. 이 시스템 속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자각하고 변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냥 부품으로써 살다가 죽어가게 된다.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개인의 적성, 자아, 가치관을 찾기보다는 영어, 수학, 컴퓨터 능력 혹은 무슨 무슨 역량을 기르는데 집착한다. 왜냐면 S라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야 하는데, S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좋은 직장이라고 규정하는 S, 예를 들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라고 하자. 이 S직장은 비교적 높은 연봉과, 안정성, 적절한 복지와 쾌적한 근무환경을 보장한다. S 직장에 들어가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근 20년의 인생을 바쳤지만, S직장 취업이 행복으로 이어지기는 거의 어렵다.
그 첫 번째 이유는 S직장의 겉모습만 보고 S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의 겉모습이란, 높은 연봉, 근사한 건물, 브랜드 인지도, 복지, 주변 사람의 선망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S직장의 속 모습은 잠시도 숨 돌릴 틈 없이 쪼여오는 압박과 상사의 인격모독과 상명하복의 군대식 명령체계와 ‘일가정 양립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는 식의 경영철학일 경우가 많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화장발이나 슈트발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S직장의 겉모습을 보고 선택했을 때, 이 겉모습이라는 기준을 자신이 선택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취업을 지원한 사람도, 입사한 사람도 본인이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실은 사회적 분위기나 타인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면, 낭패이다.
본인이 지원하거나 다닐 회사, 기관이 진정한 본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적성, 욕구, 가치관, 우선순위와 비교해 보았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럴 시간을 차분하게 갖지 못한다. 나부터도 어렸을 때 ‘법관은 대단하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하니까 법대를 갔다. 인문계였고, 성적이 좋았고, 법대가 점수가 제일 높아서 법대를 갔다. 정말 평생 영향을 미칠 자신의 진로에 대한 결정이 이런 식이다.
명절 때, 친척 누군가 ‘공무원이 세상 편해, 연금도 나오고, 요새같이 언제 잘릴 줄 모르는 시기에 얼마나 안정적이야!’ 하고 말한다. 그러면 부모님이 맞장구치고, 자녀는 그다음 해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배우자를 고를 때, 배우자에 대한 나의 기준 없이 주변에서 “무조건 잘생겨야 해.” 혹은 “예뻐야지.”라고 한다고 해서, 배우자를 외모만 보고 고를 수는 없다. 자신의 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 자신만의 눈으로 일의 기준을 정할 때이다. 일의 본질이 아니라 주변적인 화려함에 속지 말자. 일의 조명발, 화장발의 여자의 그것보다 더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