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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정 Aug 19. 2021

청소 아줌마로 처음 나서던 날

60대 청소 아줌마 이야기

ㅊ병원 세탁물 수거로 시작한 청소 일


2009년 처음 청소 일을 시작했다(쭉 청소만 한 건 아니지만). 당시에 나는 50대 후반이었다.

첫 일자리는 생활정보지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다. ㅊ병원 환자복 수거직이었다.

시간은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고, 급여는 90만 원(2009년 당시). 병실에서 사용한 환자복과 시트, 이불, 담요 등을 하루 4번 수거하는 일이었다.

새벽부터 병원이 문을 여는 시간 전에 출근해 수레를 끌고 다니며 사용한 물품을 거둬들이고, 그만큼 채워 놓는다.

수레는 내가 평소에 알던 크기보다 훨씬 크고, 높아서 물품을 높이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아침에 수레가 출발할 때에는 물품들이 내 키보다 높이 쌓여 있다. 수레 뒤에서 밀고 가니까 앞이 보이지 않아 무척 조심해야 한다. 기초 공사도 잘해야 한다. 맨 아래부터 안정감 있게 쌓아야 물품이 무너지지 않는다.

웃기는 건 더러운 환자복을 담았던 이 수레에 세탁한 환자복과 담요며 시트를 담아다가 깨끗한 비품실에 채운다는 것이다. 수레를 소독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똥 묻은 환자복이 나올 때도 있는데.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하라는 대로 해야지 어쩌겠는가.

지하 3층 한 공간이 미화부의 휴게실 겸 대기 장소였다. 급여가 짠 대신 이 직업의 좋은 점은 쉬는 시간(대기 시간)이 많다는 거다. 세탁물이 웬만큼 쌓여야만 걷어 오는데 시간이 제법 걸려서 그렇다.

다행히 세탁은 위탁 업체에 맡긴다. 업체가 세탁해서 가져다준 물품을 청소 아줌마 4명이 채우고 걷는 것이다.

작업이 새벽에만 바쁘고 나머지는 쉬엄쉬엄 돌아가서 급여가 짠 것 같다. 깍두기 같은 일자리랄까?




밥 해 먹다가 불날 뻔했다


식사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다. 새벽부터 일하니 아침과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데 반장과 난 도시락을 싸는 걸로 해결했다. 반찬을 2~3일 분량을 냉장고에 보관하고 밥만 가져가기도 한다.

내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여기서 밥을 해 먹었는데 마음을 바꾼 이유는 청소 아줌마 가운데 70대 여사님 때문이었다. 반장한테 볼멘소리를 맨날 해대고 꽥꽥거리는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반장이 집에서 가져온 쌀로 밥을 지어먹으면서도 쌀이 품질이 나쁘다는 둥 밥이 맛이 없다는 둥 타박을 그렇게 했단다. 밥솥도 회사가 사준 게 아니라 각출해 마련한 거란다. 그래서 알아서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다고 들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반장이 콩나물을 들고 와 콩나물밥을 하겠다고 코팅이 다 벗겨진 전골냄비에 밥을 짓기에 그 냄비 써도 괜찮은 거냐 했더니 “에이, 괜찮아” 하면서 밥을 지었다. 한눈에 봐도 냄비 상태가 수상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건은 터졌다. 냄비 바닥 코팅이 벗겨진 건 문제도 아니었다. 피복이 벗겨져 있는지 코드를 콘센트에 꽂자마자 불꽃이 튀어대기 시작했다.

다행히 반장이 코드를 잽싸게 뽑아 버렸다.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순발력 빠른 사람이 있어 살았다. 하마터면 ‘ㅊ병원의 미화부 직원들, 콩나물밥 점심을 해 먹다가 지하에서 불이 나 어쩌고 저쩌고’ 뉴스를 저녁 헤드라인으로 볼 뻔했다면서 우스갯소리로 넘겨 버렸다.




올라가면 커피 좀 훔쳐와


일터에서 먹는 커피믹스 맛은 그야말로 천국의 맛이다. 커피를 타 먹는 시간은 휴식시간이란 기분을 더한다. 달콤, 쌉쌀, 고소한 맛은 환상적이다.

그렇다면 커피가 제공돼야 하겠지? 의료진에만 제공하고 미화부는 국물도 없다. ㅊ병원만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비품을 채우러 올라가면 반드시 간호사실을 통하게 되어 있는데 거기는 커피가 박스째 담겨서 차고 넘친다. 2~3개나 많을 때는 10개 훔쳐도 티도 안 난다. 아줌마들끼리 처음에는 재미 삼아 훔쳐 먹었는데 자꾸 반복하다 보니 나잇살 잔뜩 처먹고 딸 또래 되는 애들(간호사) 먹을 커피를 훔친다는 게 면 팔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반장님! 우리끼리 돈 걷어서 삽시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내가 말발이 서지 않아 그런지 씨알도 안 먹혔다.




엘리베이터 타기 전쟁


모든 일은 난관이 꼭 있게 마련이다. ㅊ병원의 문제점은 준종합병원이라 시설이 썩 편치가 않다는 점이다. 엘리베이터는 승객용과 화물용 2대로 용도가 나눠져 있어야 할 텐데 ㅊ병원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좁아서 사람만 탈 수 있고, 화물용은 건물에 한 대뿐이다. 그래서 청소 아줌마들과 의료진, 심지어 장례사까지 이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선점하려 눈치작전 경쟁이 치열하다.

새벽은 응급실이 붐빈다. 응급실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수레를 끌고 갈 때는 그들의 시선이 따끔따끔 나를 찔러댔다.

하루는 방금 사망 선고를 받고 지하 영안실로 내려가는 장례사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었다. 더러운 세탁물 수레와 고인의 침대가 한 공간에 탄 것이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도 괜히 내가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동료여야 할 이의 구박


아까 말한 70대 여사님이 날 갈구기 시작했다.

어느 날 툭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반장이 빵을 좋아하니까 좀 사 와.”


훗날 알고 보니 청소 업계에서 신입은 먹거리로 신고식을 하는 게 통과의례란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당시 돈이 궁해서 월급날만을 기다리던 무렵이었다. 내 빵 사 먹을 돈도 없는데 무슨 돈이 있겠는가. 차비도 간신히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못 들은 척을 했다.

그때부터 갈굼이 시작됐다. 이를 본 반장은 아무 내막도 알지 못하고 그저 내 편을 들기 위해서 7학년 늙다리와 싸웠노라 말했다.

인간의 갈굼은 무시하려야 점점 강도가 세지면 세졌지, 약해지지는 않는 법이다.




어느 일자리 세계나 그렇듯 동료여야 할 사람들끼리 서로 못살게 구는 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의사들끼리도, 간호사끼리도 서로 견제하고 사표를 쓰게끔 왕따 시킨다고 한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이 무섭지, 사실 일이 힘든 것쯤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

정말 공감이 가는 말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하고 있다. 조금씩만 양보하고 위한다면 일자리가 지옥처럼 느껴지진 않을 텐데.

결국 을과 을의 전쟁에서 같은 동료끼리 괴롭힐 힘을 사업주에게 쓰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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