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숙정 Aug 20. 2021

다시 뛰어든 청소 아줌마의 길

60대 청소 아줌마 이야기

이번엔 2017년으로 훌쩍 뛰어 넘어서 항문 전문 ㅎ병원이다.

8년 동안을 무얼했느냐? 사람이 싫어 신문 배달을 했다.

ㅎ병원 미화부 자리는 ㅅ노인종합복지관(이하 ㅅ복지관)에서 당일치기로 주선해줘서 비가 오는 날 바로 면접을 보러 갔었다.

미화부는 보통 사무실이(휴게실도) 건물 지하에 있다. 책상 하나 달랑 있는 삭막한 공간에 소장이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면접 후 내일부터 바로 나오라고 했다.

썩 내키지도 않았고 병원 청소는 처음이라 불안한 마음으로 다음날 출근했다.




우리 동네 늙은이들은 새벽 5시부터 버스를 탄다


부자 동네가 아닌 없이 사는(나도 없이 살지만) 동네 버스는 새벽에 바쁘다. 60~70대 노인들을 쉴 틈 없이 미화와 경비 일터로 날라주니까. 내가 갈 곳은 복정역 사거리를 지나야 했다.

성남을 벗어나 도로가 넓어지는 구간에 가까이 갈수록 버스를 타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유는 단순하다. 복정역 근처로 갈수록 부자들이 사는 동네니까(위례 등).

내가 사는 동네 노인들이 새벽과 오후 3시쯤 단골 승객이 되고, 버스 회사도 그들 덕을 본다 할 수 있겠다.

혹시 그 광경을 보고 싶다면 새벽 첫 차를 타 보면 된다. 전철도 마찬가지이다.




수술실 청소법


일은 별것 없다. 전임자가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서 하면 그만이다. 단지 수술실에서는 피도 봐야 하고 병실에 딸린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는데 그 냄새가 어떤 때는 집에 와서도 코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수술실에서는 조직을 떼놓고 거즈 위에 죽 늘어놓은 것도 보았다. 아마도 암덩어리였으리라.

피나 조직 떼어 놓은 것은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피비린내와 화장실의 역한 냄새는 너무 싫었다. 나는 코가 예민해서 냄새에 무척 약하다.

밥을 먹다가 더러운 냄새가 나면 밥숟가락을 놓을 정도다. 냄새가 나는 곳에서는 뭘 먹을 수 없다.




선배 밥 좀 데워놔


ㅎ병원은 아침밥은 각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 점심은 정각 12시에 병원 식당에서 영양사가 식단까지 짜준 식사를 병원 직원과 병원장까지 다 함께 둘러앉아 우아하게 먹는다.

사람대접받는 것 같아서 일과 중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이다.

ㅎ병원 미화부 구성원은 나까지 세 명이다. 제일 오래 일한 70대 대선배와 나보다 한 달 일찍 들어온 역시 70대인 한 달 선배가 각자 층을 맡아 청소했다. ㅊ병원 때처럼 여기서도 내가 막내였다.

그러니 제일 막내인 내가 그들의 아침밥을 들고서 미화부 휴게실에서 멀리 떨어진 간호사실에 가져가 렌지에 넣고 데워다 놓아야 한다. 마실 물까지 함께….

하다 보니까 짜증이 나서 도시락을 안 싸오고 간편식 빵과 커피를 싸서 근처 공원에 가서 먹기로 했다. 밥 먹는 시간은 누구나 공평히 누리는 자유 시간이지 않나.




또 동료여야 할 사람들의 갈굼을 당하다


밥을 데워주지 않고 나 혼자 따로 행동하니까 자연스럽게 두 노인 눈 밖에 났다. ㅎ병원은 그런대로 일할 만한 곳이었다. 쉬는 시간도 딱 정해져 있고, 좁기는 해도 지친 몸을 뉠 수 있는 휴게 공간도 따로 있었다. 점심 식사도 나오고 한 달 급여가 140만 원이면 청소 일로는 괜찮은 축에 속한다.

그래서 1년은 채워 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선배가 어느 날 자기 일을 나한테 떠넘기며 대신 하란 것이다.

그래서 소장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잡아줄 궁리는 하지도 않고 수수방관이다. 이렇게 되면 사면초가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난다고 2개월을 채우고 그만두게 되었다.




나를 봐서 며칠만 더 일해줘


소장이 한 말이다. 잘못 돌아가는 일을 소장이 되어서 바로 잡지도 않고, 내 자리에 금방 다른 사람 꽂을 듯 오만하게 굴더니 막상 사람이 안 구해지니 자기를 봐서 며칠만 더 일해 달라고 나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안 구해지던 사람이 왔다.

한눈에도 청소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내 또래인데 데리고 다니며 인수인계를 하라는 것이다. 일을 가르치다 보니 뱃속에서부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말했다.

“소장님한테 가서 배워요. 잘 가르쳐 줄 텐데. 난 못하겠으니까.”

그랬더니 중간에 돌아갔다.

이 일의 불똥이 튀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소장이 또 한 명 일할 사람을 데리고 왔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딱 마주쳤다.

그러자 대뜸 “이제는 일 안 해도 돼. 여기까지만 하고 가” 말하는 거다.

그날 일이 끝나려면 2시간은 더 해야 했다. 소장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할 일 다 끝나고 그만두고 나왔다.




이유가 뭔지 쓰레기봉투에 목숨을 건다


여기도 그랬다. 자기네 집에서야 쓰레기봉투에 목숨 걸지 몰라도 일터에 나와서까지, 특히나 병원에서는 일반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많이 오염이 되어 나온다. 화장실 쓰레기에 의료폐기물까지 나오니 가정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ㅎ병원 청소 아줌마들은 봉투가 미어터질 때까지 쓰레기를 꾹꾹 눌러 담고 온 체중을 다 실어서 누를 수 있을 때까지 눌러 담는다. 그런 과정을 거친 봉투를 묶으려면 손가락이 얼얼해질 때까지 힘껏 잡아당겨야만 한다.

병원 원장이나 소장이 그렇게 하라고 따로 지시한 것도 아니고, 모든 비품을 아끼지 않고 제공하는데도 자기네들끼리 핏대를 올려가며 잔소리를 해댄다. 막내인 나한테도 쓰레기봉투를 아껴 써라 하면서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애쓴다.

참다못해 “이게 다 병원 진찰료에서 받은 것이고, 고용주도 말을 안 하는데 왜 그러느냐”고 한 적이 있는데 먹히질 않았다. 이것 또한 ‘을과 을’의 전쟁이다.

새벽잠을 설치고 다 늙은 몸뚱이를 이끌고 일하러 나와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을 하지 않나.

ㅎ병원도 청소 아줌마 신분이란 비정규직은 물론이다. 한 번은 용역업체 직원이 나왔기에 물었다. 청소 아줌마 한 사람 당 대체 얼마를 용역업체에서 떼어가느냐고. 그랬더니 1인 당 ‘30만 원’이란다.

이유는 모르나 그 사람 역시 용역업체에서 나와 같은 날 해고당했단다. 그래서 30만 원의 비밀을 알려준 것 같다.

그 사람도 나도 내일부터 새벽에도 푹 쉬어도 되겠지만 생활비는 앞으로 어찌할꼬….





후일담


일을 관두고 얼마 후 ㅅ복지관에서 전화가 왔다. ㅎ병원 미화부 소장이 사람을 구해 달라고 하는데 문제가 있는 자리였느냐고. 그래서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다. 왕고참 눈 밖에 나면 왕따 시키고 자기 일자리 떠넘기고 내 자리의 전임자도 왕따 시켜서 스스로 나간 거라고. 나한테도 왕고참이 자기 자리 떼 가라고 해서 그럴 것도 없이 내 자리랑 바꿔 주겠다고 했다. 그전부터 왕고참이 내 자리를 탐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또 싫다나. 그렇다면 저의는 뻔하다. 알아서 그만두란 것이다. 얼마나 소문이 났으면 ㅅ복지관에 또 사람을 구해 달라 요청했을까.

작가의 이전글 청소 아줌마로 처음 나서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