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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정 Aug 22. 2021

대학교 청소는 좀 다를 줄 알았다

60대 청소 아줌마 이야기

ㅅ대학교 청소하기


이번에는 대학교 미화부 자리에 면접을 보러 갔다. 처음부터 소장의 서슬이 시퍼렇다.

알고 보니 내가 사는 동네에서 5~6명은 이 학교에 청소를 다니고 있었다. 어느 곳이든 미화부는 지하에 있다. 구성원은 소장, 미화 직원 15명가량이다. 합판 등을 써서 날림으로 지은 휴게실은 ㅅ대학 ○○관 지하주차장 구석에 있다. 처음에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쉰다고 해서 의아했었다.

전임자가 좋지 않은 사정으로 퇴직해서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이 인수인계를 시켜주는데 표정을 보니 굉장히 불만스러워 보인다. 그 심정 알 것 같다. 나 역시 ㅎ병원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으니까.

화장실 청소가 제일 큰 문제다. 용변 본 휴지 제거도 고역이지만 냄새가 또 날 괴롭힌다. 이번에는 남자 화장실의 변기까지 닦아야 하니 앞날이 캄캄했다. 교실, 복도 청소는 할 만하다.

여기도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다. 급여는 147만 원에 식사는 각자 싸 온 도시락이나 같은 조끼리 휴게실에서 지어먹는다. 쌀이니 각종 재료비는 지어먹는 사람들끼리 각출이다. 보통 4명에서 5명이 조를 짜서 같이 몰려다니고 휴식도 같이 취한다.




그놈의 신고식


“점심때 먹을 맛있는 것 좀 가져와.”


이를테면 신고식을 하라는 말이다. 신고식 음식이 화려할수록 대접이 융숭해진다(?). 여기에서도 난 묵살해 버렸다.

오래 다닐지 아닐지 간부터 봐야 하니까.




내가 지금 미화에 고용된 건지 잡역에 고용된 건지


ㅅ대학 체전을 한다고 학생들이 다 운동장으로 나가고 나니 아줌마들이 할 일이 확 줄어들었다. 그래서 운동장으로 나가서 행사에 쓸 자재를 릴레이로 차에 실어주고, 운동장 돌 고르기, 천막 치기, 의자 탁자 배치 등등 학생들의 일을 거들었다.

이때 소장이 지휘하는데 그 말투가 아주 가관이다. 아줌마들을 윽박지르며 하녀 부리듯 한다. 아줌마들은 어떻게든 소장 눈에 나지 않으려고 신경전들이 대단하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중간관리자의 횡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비품을 타려면 증거를 가져와


휴지가 떨어져 타러 갔더니 휴지심을 갖고 와야만 주겠단다. 비품실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들어갔다가 거길 왜 들어가느냐 거의 욕에 가까운 잔소리를 들었다.

아줌마들이 청소 비품을 집에 가지고 가는 걸 막기 위해서 다 쓴 증거가 필요하다나.

내가 청소하는 자리 전임자는 빗자루며 걸레도 제 돈으로 사서 쓰다가 나갔다 한다.

걸레도 구멍이 숭숭 나고 너덜대야 새 것을 내준다. 이렇게 지독하게 나오니 오죽하면 자기 돈을 내고 비품을 사서 쓴 게 아닌가 싶다.




아침부터 왜 술 생각이 나지?


아침 청소를 마치고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70대 아줌마 하나가 불쑥 말한다.


“아침부터 왜 술 생각이 나지?”


그러자 소장 왈,


“내 방에 가면 맥주 하고 소주 있어. 가서 가져와.”


그다음부터 근무 시간에 술파티가 벌어졌다.


“먹고 싶은 사람은 끼고 아니면 조용히 쉬어.”


순식간에 예닐곱 사람이 몰려가서 술들을 푸는데 꽤 익숙해 보였다. 그렇다면 저 술은 어디에서 돈이 나 공급이 되는 것일까?

어쩌면 비품 값에서 떼어내 술값 충당을 한 게 아닐까?

왜냐하면 소장이 제 돈으로 매번 술을 사 오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느 날은 소장에게 볼일이 있어서 소장방에 갔는데 술을 먹다 잠이 든 건지 대낮부터 술 냄새가 폴폴 풍겼다.




또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오늘로 일주일째다. 내 자리 일을 끝내고 휴게실에 가니까 한 아줌마가 대뜸 시비조로 군다.


“여기 취직하기 전엔 어디서 뭐 하다 왔어?”


신고식도 안 하고 왜 뻗대느냔 뜻이다. 그때부터 눈에 띄게 따돌림이 시작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일만 묵묵히 하면서 지냈고 그 이후로는 휴게실에서 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체전이 모두 끝났다. 왕따는 점점 더 심해졌다.

하루는 내가 속한 조의 한 아줌마가 다가오더니 자기가 여태 해 오던 자리를 나 보고 조금 떼어 가라는 것이다.

그 순간 여기도 그만둬야 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다음날부터 허리병이 나 그만둬 버렸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하러 나왔으면 서로 아껴주고 말 한마디라도 곱게 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이지 인간에게 정나미가 떨어진다.

내 또래 늙다리들 혐오가 점점 심해져서 다가오면 슬슬 피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동료끼리 못 잡아먹어 으르렁대지 말고 그럴 힘을 아껴뒀다가 중간관리자와 학교 측에 건의해서 잘못된 걸 바로잡을 생각들은 하지 않고, 오늘도 열심히 자기 옆의 동료들을 괴롭히는 즐거움으로 지내겠지.

뭉치면 못할 게 없다는데 이 청소 세계는 뭉쳐서 사람을 못 살게 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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