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숙정 Aug 23. 2021

선생님, 제 아들 자퇴시켜 주세요.

지금은 결혼해 제 아들까지 낳고 잘살고 있는 내 아들의 사춘기 때 이야기다.


“공부는 못해도 상관없으니까 학교는 열심히 다녀라.”


최대한 자유를 주면서 키웠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약간 삐딱선을 타고, 겉멋이 들어서 오토바이 몰래 사서 타기, 친구들과 술 먹고 응급실 실려 가기, 새벽에나 귀가하기, PC방에서 며칠을 살며 학교도 안 가고 집에도 안 오고 살기 등 말썽을 깨나 부렸다.

제목에 자퇴 얘길 썼는데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오토바이 타기 얘기, 술 먹고 응급실 실려간 얘기를 좀 더 해 보겠다.




볼일이 있어서 길을 가고 있는데 우리 동네 왕복 4차선 차도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멋지게 핸들을 꺾는 오토바이에 내 아들이 떡하니 타고 있더라. 버젓이 교복까지 입고서 말이다.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아들 이름을 크게 불렀다.


“○○야!”


애가 놀라서 사고라도 났더라면 어쩔 뻔했나. 순간적인 실수에 후회가 막심했다.

물론 아들은 힐끗 돌아보더니 가던 길을 잘 가긴 했다.




술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갔던 얘기는 또 어떤가.

애아빠한테 한밤에 다급한 전화가 왔다.


“큰일 났어! ○○가 지금 병원에 있는데 혼수상태야.”

“뭐?!”


아들이 응급실에 있는데 지금 혼수상태란다.

그때가 밤 10시를 넘어서 11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다.

청천벽력이었다. 허둥지둥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이 보였다.


‘침착하자.’


스스로를 달래며 아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CT까지 찍고 뇌파 검사까지 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단다.

그런데 가만 앉아 지켜보고 있자니 아들 몸에서 술냄새가 진동하면서 코까지 고는 게 아닌가.

이불을 들춰 보니까 축축한 것이 오줌까지 싸고 술에 취해 자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이놈 술 처먹고 자는 거네.”

“진짜?”


애아빠라는 사람이 본인도 회식에 가서 술 먹고 귀가를 했는데 아들 친구 녀석들이 떠 넘기고 내뺀 것이었다. 술 먹은 사람이 술냄새를 어찌 맡으리오?

하여간 이러고 다니니 학교를 제대로 다닐 리가 없다.




당연히 학교에서 어느 날 부모 호출이 왔다. 나도 속을 있는 대로 썩이다가 이런 식으로 가느니 차라리 자퇴를 시켜 일찌감치 다른 길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부모라지만 선생님은 무슨 죄인가? 굳은 결심을 하고 학교에 갔다.

교무실에서 아들 담임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얘 그냥 자퇴시켜 주세요. 민폐를 끼쳐 안 되겠어요.”


그때 담임 선생님이 무척 놀라셨는지 한참 말씀이 없다.

그런데 아들이 옆에서 대뜸 이런다.


“맘대로 해! 마음대로! 자퇴하면 나 완전 망가질 텐데.”


원망스럽고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곤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부는 좀 못해도 학교는 잘 다니라고 그랬잖아!”


집에서처럼 아들과 몇 마디 언성을 높여 큰소리가 왔다 갔다 하는 꼴을 조용히 지켜보던 선생님이 아들을 꾸짖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보았나! 어머님, 어머님은 잠깐만 밖에 나가 계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밖에서 기다렸다. 안에서 선생님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10분 정도 뒤에 교무실에 들어가니 그 사람 좋아 보이는, 마음씨 좋은 영화 속에나 나올 아빠처럼 생긴 선생님의 얼굴이 그 사이에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담임 선생님을 애들이 부르는 별명도 아빠쌤이란다.


“일단은 오늘은 댁에 돌아가십시오. ○○이, 앞으로 학교 잘 나올 겁니다.”


선생님이랑 무슨 얘길 한 건지 나도 지금까지 모르는 채 있다. 선생님이 내게 왜 ○○이를 자퇴시켜 달라고 하느냐고 묻지 않은 것처럼 나 역시 선생님께 묻지를 않았으니.

사실 그때 내 심정은 반반이었다. 학교를 떠나는 방법과 다니는 방법 두 가지 중에 양자택일을 아들에게 시키려고 충격요법을 쓴 거였다. 그걸 선생님이 얼른 캐치하셨던 것 같다.

다만 그때 미리 선생님과 의논을 했다면 선생님을 놀라게 하지는 않았겠지. 지금까지 죄송하다.

아들은 그 이후 학교를 그야말로 ‘꾸역꾸역’ 잘 다녔다. 매일 아침 아들이 늦으면 선생님이 모닝콜까지 걸어주셨다.


“그때는 무조건 학교를 다녀야 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자퇴하고 빨리 다른 길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아.”


훗날 아들을 낳은 아들이 한 얘기이다. 내 생각도 그러하다. 학교에 꼭 목맬 필요는 없으니.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또 하나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아들이 걱정됐다. 성적이 나빠 대학은 못 갈 것이고, 뭘 해서 먹고살려고 하나 싶더라.

어느 날, 아들에게 물었다.


“앞으로 무슨 일로 먹고살 거야? 마침 쉬고 있으니 운전면허나 따라. 면허가 있으면 버스든 택시든 운전으로 먹고살 수 있으니까.”


그 당시 30만 원 정도를 줬더니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돈도 그대로 돌려줬다.

자기 힘으로 하나를 성취하고서 무슨 맘을 굳게 먹었는지 그 후 뒤늦게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대학 진학도 했다.




자식이 그렇다. 자식들 입장에서야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서 내 방식대로 구속하며 키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자유를 주면서 잘못되지만 않게 큰 방향 정도 잡아주는 쪽으로 키우려 노력했다. 애들 인생이 내 건 아니니까.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지금도 확신은 안 선다. 어쨌든 난 그런 엄마였다.

기왕이면 내가 부자 엄마라면 좀 더 잘해줬을 텐데 참 아쉽다!!


작가의 이전글 대학교 청소는 좀 다를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