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하여>, ‘사각사각 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개소리쟁이에게는 모든 것이 무효다. 그는 진리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다. 개소리쟁이는 사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말하는 내용들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다. (p.59)
- 해리 G.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중 발췌
유머집 아닙니다. 철학책입니다. 고매한 학문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개소리’라는 단어가 제목에 있어 장르를 오해하기 쉽지만, <개소리에 대하여>는 ‘개소리’ 즉, 근거 없는 허튼소리와 아무 말의 근본 구조를 뜯어보는 심도 있는 철학서입니다.
‘우리 문화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책의 첫머리에서 ‘개소리’를 연구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SNS와 1인 미디어가 늘어가는 현재, 사람들은 이제 언제 어느 때나 아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상적으로 가볍게 지나가던 말들을 디지털 데이터로 박제할 수 있게 되었고, 삼삼오오 모여 나누었다면 금세 소멸해 버렸을 언행들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껄일 수 있게 되었죠. 문자화와 영상화가 쉬워진 덕분에 모든 층위의 말들은 ‘역사적 보존의 정당성(=기록될 권리)’을 얻게 되었고, 별거 아닌 잡소리들은 온라인을 타고 돌면서 불필요한 힘과 권력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개소리가 증식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환경이 갖추어지게 된 셈이죠. 누구나 발언권을 가졌다는 건 누구라도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으니까요.
이처럼 역사적으로 어느 때보다 개소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시기인 만큼, ‘개소리’를 보다 진지하게 검토하고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건만, 현재까지 개소리를 이론으로 정립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자인 프랭크퍼트 교수가 자칫 우스워 보일 수 있는 ‘개소리’를 연구의 주제로 삼은 것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죠. 우후죽순으로 생산되는 개소리의 구조와 원인을 파악할 수 있어야 그에 대한 대처도 할 수 있는 법인데, 현재까지는 개소리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조차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학문적인 사명감을 토대로, 프랭크퍼트 교수는 ‘개소리(=bullshit)’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진리와 진실,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해 무관심한 말
‘무관심’은 개소리를 정의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단어입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거짓말’과도 구분되는 결정적인 기준점이기도 하고요. 청자를 기만한다는 데 있어 거짓말과 개소리는 궤를 같이하지만, 사실 둘은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 개념입니다. 먼저, 거짓말은 ‘허위성’을 전제로 하는 기만입니다. ‘참에 반하는 사실’을 제시해 진실을 가리고 훼방을 놓으려는, 뾰족한 목적성이 있는 행위죠. 그래서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진실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그에 반하는 말을 지어낼 수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거짓말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노력과 정성’이 도출한 그릇된 결과인 셈입니다.
반대로 개소리는 ‘목적 없는 헛소리’입니다. 개소리의 영역에서는 진리와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명무실하죠. 또한 개소리쟁이는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진실이 무엇인지에 무관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보의 맥락마저도 제멋대로 지어내 버립니다. 그래서 프랭크퍼트 교수는 개소리를 ‘거짓’이 아닌 ‘가짜(phony)’라 지칭합니다. 개소리는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닌, 진실의 가치를 통째로 삭제시켜 버리는, 생각나는 대로 만들어내는 마구잡이의 말이니까요.
때문에 프랭크퍼트 교수는 ‘개소리’와 ‘개소리쟁이’를 ‘거짓말/거짓말쟁이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p.64)’이라 못 박습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거짓말쟁이는 거짓을 말해 혼동을 야기하기는 하지만,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식하고는 있으니까요. 적어도 거짓말쟁이의 세상에서 진실은 권위를 잃지 않은 상태인 것이죠. 반면, 개소리쟁이는 진실의 권위 밖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사태의 진상 따위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으며, 근거 없는 창조를 통해 절대적으로 보호 받아야 할 정보의 기초적인 권리마저 짓밟습니다. 그래서 개소리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진실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개소리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죠.
개소리에 가끔 분노가 치미는 이유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아마도 개소리가 내포하는 이러한 ‘진실에 무신경한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뱉는 말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심함, 왜곡된 진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 아픔, 고통, 피해가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감각함, 진리의 질서를 교란하고도 파생된 결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무지함. 개소리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이러한 무책임하고도 몰지각한 태도들은 종종 무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모르는 이는 교육하면 되고, 악랄한 이는 처단하면 되지만, 무지몽매함에도 자각이 없으며 개선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거든요.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는 문제는 종종 짜증을 유발합니다. 특히나 그 문제가 나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해를 가하는 형태라면 더더욱 그렇죠. 온갖 군데에서 출몰하는, 작금의 만성적인 개소리처럼요.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개소리를 영원히 박멸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말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개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사회적으로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한마디를 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분위기에 휩쓸려 무심결에 아무 말이나 던져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나 개인 소통의 창구가 늘어나며 ‘나의 의견’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지금, 개소리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습관이기도 합니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이렇게 만연한 행태를 ‘정확성’의 대안적 규율인 ‘진정성’이 우세해진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 주장합니다.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주의가 확산하며, 정확한 사실보다는 ‘나’를 온전히 표현하는 형태로 진리 추구의 방식이 전환되었기 때문에 개소리가 더 만연해졌다는 것이죠. ‘무엇이 옳은가’를 논의하기보다 ‘나의 입장은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해진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무지에 기반한 헛소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날로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프랭크퍼트 교수는 이러한 반실재론적인 태도, 진리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가 개소리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개소리는 본래 ‘자신들이 무지한 사안에 대해 말하기를 강요받는(p.66)’ 상황에서 자주 탄생하기 마련인데,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 즉, 사회적인 중차대한 사안이라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나의 의견을 한 마디라도 얹는 게 ‘깨어 있는 시민’이 되는 분위기에서는 개소리가 난무하기 십상이라는 뜻이죠. 프랭크퍼트 교수는 그러므로 선택적 침묵과 정확성으로의 회귀를 요청합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경우에만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말을 내던지는 걸 경계해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현재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개소리가 문제시되는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저 또한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 물들어 버린(?)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자주 뜨끔하며 자정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되고 싶은 열정 때문에 한 마디씩 얹었던 과거의 순간들이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소위 당 떨어진 상태에서) 아무 말이나 지껄였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떠올랐거든요. 이렇듯 개소리에서 자유롭지 않은 군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책은 과거의 말들을 되새김질하며 말의 중요성을 되짚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쉽게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말은 모든 것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어떤 말은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초래합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말 한마디 때문에 누군가는 죽음에 이르기도 하죠. 그중에서도 개소리는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것이 ‘무심코 던진 돌’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위험한 말을 휘두르는 위험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나보다 더 넓은 범위의 가치와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내 말과 행동에 누군가가 베일 수 있는, 함께 사는 사회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