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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씨 Sep 30. 2024

입학금 700만 원 어린이집

- 다단계 어린이집 1화

 

 딸이 발걸음을 종종 떼면서 동네 아파트 어린이집을 보내게 됐다.

처음에는 어린이집에서 점심만 먹고 빨리 하원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역시 육아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첫날은 엄마와 함께 한두 시간 머무르고 둘째 날은 엄마가 자리를 비우고 아이 혼자 점심시간 전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둘째 날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오니 점심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고 본인도 밥을 먹겠다며 눈물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이렇게 계획보다 빠르게 적응을 하더니 등원 삼일차에는 점심을 다 먹고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더니 낮잠시간까지 버티다 (아무 준비도 못했는데) 낮잠까지 잤다. 등원 3일 만에 낮잠까지 자는 우리 딸.

무던하고 순한 기질도 한몫했겠지만 선생님도 너무 좋은 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어린이집도 잘 가고 어린이집 밥도 잘 먹고 낮잠도 잘 잤다. 덕분에 계획한 것보다 빨리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린이집을 1년 가까이 다니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새로운 동네는 신도시라 주변에 가까운 어린이집이 없었다. 급하게 이사를 간 터라 일단 한두 달은 가정보육을 하면서 어린이집을 알아보게 됐는데... 그간 어린이집에서 어려움 없이 잘 지냈기에 큰 걱정은 없었지만 당시 어린이집 관련된 안 좋은 사건들이 뉴스에 연일 보도되던 때였기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상담을 간 어린이집은 3층 건물의 규모가 꽤 컸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들이 하원하는 시간과 겹친 듯했다. 남편과 아이까지 온 식구가 함께 출동했는데 추운 1월의 날씨를 감안하더라도 유치원 내부는 냉기에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 이런 냉골에 아이들이 있었다니. 이전 어린이집은 하원할 때마다 문이 열리면 훈훈하고 따스한 온도가 바깥까지 퍼졌는데. 당혹스러움이 밀려들었다.


 그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은 목소리가 굉장히 크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보였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세일즈맨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교육커리큘럼에 대한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아이들에게 주는 간식을 소개하면서 팩으로 된 우유를 지급한다며 강조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다른 어린이집은 우유를 컵에 따라서 제공하는데 그렇게 되면 신선한 우유를 먹지 못하게 되고 아이들도 맘껏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포인트들이 장점이라면 얼마나 자랑거리가 없는 걸까, 유치원의 철학이나 교육이념 같은 건 와닿는 게 1도 없었고 사교육을 시킬 필요 없이 많이 하고 있다는 뉘앙스는 우리 부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과는 많이 어긋나 있었다.


 당시 나는 아이를 가정보육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된 상황이라 3월엔 무조건 어린이집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석연치 않았기에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원장은 남은 자리가 얼마 없으니 일단 입학신청서를 쓰라고 했다. 고민해 보고 안 보낼 거면 언제든 취소를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찜찜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취소가 된다는 말에 일단 신청서를 쓰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상담내용을 듣기도 전에 남편은 절대 절대 반대를 외쳤다. 내가 상담받는 동안 남편과 아이는 교실에 있었는데  아이들 책상에 말라붙은 밥풀과 바닥엔 반찬을 흘렸는지 양념자국이 군데군데 묻어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고 했다. 순간 머리에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선생님들 표정이 한결같이 피로에 찌들어있는 듯했다. 그리고 기가 팍 죽어있는 느낌이었는데. 선생님이 힘들면 그 힘듦도 당연히 아이들에게 영향이 갈 것이 뻔하다. 피로에 찌든 선생님, 거기다 위생상태 빵점. 장사꾼 같은 원장까지.

설마 이런 어린이집이 평균은 아니겠지?


 그날 이후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맘카페를 삭삭 뒤져가며 엄마들이 추천하는 어린이집을 찾아봤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발견한 그곳은 무조건 안심하고 아이를 보낼 수 있는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천국이었다. 그렇게 2월의 폭설이 내리던 날, 우리는 그 어린이집을 상담가게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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