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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Dec 09. 2020

출근이 없는데 퇴근 시간도 없네요

<우리 직업은 미래형이라서요> 

2018년 7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300인 이상의 사업장을 가진 기업에서는 야근을 강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을까?  


 내가 입사를 했던 2010년에는 주 52시간 근무제도, 자율근무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른 기업보다 보수적이었던 첫 회사에서 나는 매일 아침 8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정식 출근 시간은 9시였으나 모두 함께 하는 체조 시간이 8시 30분에 있었고 그 시간에 눈에 띄지 않으면 사실상 지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침에 엘리베이터는 왜 이렇게 층층마다 서는지! 8시 25분이 되면 자리에 없는 동료들에게 급하게 카카오톡을 보내곤 했다. 


‘오고 있어? 얼른 와! 본부장 와 있어!’ 


내가 8시 30분보다 이른 8시까지 출근해야 했던 건 신입사원이면 응당 선배들보다 먼저 도착해 테이블을 닦고 간식을 비치해야 한다는 차장님의 믿음 때문이었다. 재밌는 건 우리 본부를 담당하는 비서가 나보다 늘 먼저 출근해서 테이블을 닦고 커피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진짜 그 일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런 시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입사원의 정신이, 그러니까 군기가 바짝 들어있느냐였다. 바로 그 점이 견디기 힘들었다. 사무실에 비서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아무도 테이블을 닦고 모두가 마실 커피를 내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기꺼이 그 일을 자처했을 것이다. 내가 힘들었던 건 내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런 일을 한다는 ‘흉내’를 냄으로써 누군가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내가 이 회사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말을 잘 듣기 때문에’ 혹은 ‘자리를 채우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했다.


퇴근 시간은 6시였지만 아무도 6시에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다. 7시는 되어서야 하나둘씩 자리를 정리하는 시늉을 했고, 8시는 되어야 안전하게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꼼히 들고 차장은 갔는지, 부장은 갔는지, 본부장은 없는지 확인했다. 역시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하는 것이었다면 좀 더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몰랐다. 노동의 윤리를 예찬하며, 성공 신화가 담긴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직장인이 된 당시의 나라면 많은 일을 처리하는 걸 능력의 상징이라고 봤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일은 업무 시간 내에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졌다. 그런 괴로움에 대해 토로했더니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거 아냐? 일은 별로 안 하는데 돈은 똑같이 주잖아.”

“아무 일도 안 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게 힘들어.”

“그럼 인터넷 쇼핑이라도 해.”

“나 신입사원이잖아. 모두가 내 모니터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고.”


없는 일을 만들어 내서 한다고 누군가 환영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그 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노동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일이 없다고 자리를 일찍 뜨면 개념 없는 신입 소리를 듣기 좋았다. 나는 매일 8시에 출근해서 8시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내 일은 무엇인가, 나는 왜 계속 자리를 지키는가, 나는 왜 돈을 받는가라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체 노동이란 무엇인가 혹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로 귀결했다. 당시 내가 회사에 판 것은 나의 시간이자 젊음이지, 노동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에게 늦잠이란 자율성의 상징 같은 것  


그러니 내가 회사에서 강제하는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단순히 ‘늦잠을 자지 못한다’거나 ‘사람으로 가득 찬 지옥철이 힘들다’보다 ‘내 일의 통제권이 내 손 안에 있지 않다’에 있었던 것 같다. 프리랜서가 되고 난 후에, 늦잠이 상징하는 노동 시간의 자율성은 일의 통제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감각을 가지게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그것이 노동자의 새로운 착각일지라도 말이다. 어차피 모두에게 속을 거라면 좀 더 교묘한 술수를 쓰는 사람에게 넘어가는 기분이다. 


물론 프리랜서마다 노동의 시간은 다르다. 그건 자신의 생활 리듬에 맞춰있기도 하지만, 프리랜서 근무 영역의 특성에 달려 있기도 하다. 행사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이 잦고, 컴퓨터 보안을 맡는 프리랜서는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 시간에 맞춰 일해야 한다. 나는 보통 11시에 일어나서 새벽 4시에 자는 패턴을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밤 11시부터 새벽 4시가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이고, 대부분의 일을 이때 몰아서 한다. 처음엔 11시 전에 오는 클라이언트의 전화를 못 받을 때도 있었다. 혹은 잠결에 확인을 했지만 잠에 취한 목소리로 받을 수는 없어서 나가서 목도 좀 가다듬고 물도 한잔하며 목소리를 추스르곤 한다. 


 오래 함께 일하거나 기존에 합을 맞춰 본 적이 있는 클라이언트에겐 내 업무 시간은 11시 이후라고 미리 양해를 구해 놓기도 한다. 프리랜서가 건방지게 클라이언트 출근 시간에 자고 있느냐고 타박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내가 일하고 싶은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낸다. 가고 싶던 레스토랑에 평일런치를 이용하러 가고, 한가로운 시간에 서점을 방문하고, 사람이 없는 때에만 은행에 간다. 



일은 마치 근력 운동처럼 꾸준히


프리랜서가 시간을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실컷 자랑했지만 물론 거기에는 어느 정도 대가가 따른다. 누군가가 강제하지 않는 노동 시간을 정하고, 노동의 흐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우리 다들 한없이 흐트러지던 학창 시절의 방학을 기억하지 않나? 방학이 끝나는 게 일요일이라고 하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신나게 놀다가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울면서 자리에 앉지 않았나? 그런 습관은 어른이 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라서 프리랜서를 시작할 때는 한동안 생활리듬이 들쭉날쭉했다. 한참 9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일하는 걸 반복했다가, 그게 점점 늦어지면서 11시에 일어나서 새벽 4시에 잠드는 생활이 이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꼴딱 날을 한번 새고 나면 다시 9시에 일어나는 삶이 시작되는 식이다. 


일을 아무 때나 해도 된다고 하면 하루 중에 일이 가장 잘 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이도 있겠지만, 그런 시간이 오는 일은 거의 없다. 일은 아침에도 하기 싫고 저녁에도 하기 싫으니까. 가끔은 일에 탄력이 붙어서 하루에 9시간은 연이어 달리기도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일하면 다음 날 일하기가 싫어진다. 일은 마치 근력 운동처럼 하루에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게 좋았다. 


추천하고 싶은 첫 번째 방법은 일의 리듬을 잡기 위해 자신에게 워킹 시간을 강제하는 것이다. 프리랜서에게 널리 알려진 김명남 번역가의 KMN 워킹방법이 그 중 하나다. 40분 일하고 20분 쉬는 노동을 반복하는 방법이다. 잘 된다고 안 쉬어도 안 되고, 못한다고 자리를 떠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일이 잘되냐고? 결과물의 퀄리티가 높아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마감은 지키게 된다. 그리고 오래 일하는 프리랜서에게, 그리고 클라이언트에게 작업물의 퀄리티보다 중요한 것은 마감을 잘 지키는 일이다.


두 번째는 자신이 일을 얼마나 했는지 스스로 체크하는 방법이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 동료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재촉하지 않는 프리랜서, 퇴근시간이 다가오지 않는 프리랜서에게는 늘 ‘내가 정말 일을 했는가?’, ‘어느 정도 했는가?’에 대한 자기 검열이 따라 붙는다. 왠지 얼마 안 한 것 같고, 더 해야 할 것 같고,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자기 착취를 계속하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다.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어 놓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위안 방법이자 나를 착취하지 않기 위한 노하우다. 안 그래도 불안한 프리랜서에겐 심리적인 안전지대가 필요하기에 ‘나는 잘하고 있어’라고 스스로 안심시켜줄 만한 객관적 증거가 도움이 된다. 출근도 퇴근도 없기에, 언제나 일하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자신만의 출퇴근 의식을 정해두는 것도 추천하고 싶은 팁이다.


 아침에 일했다가 새벽에 일했다가를 반복했던 때, 내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했느냐를 기록해보는 게 도움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 있다고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하나의 일에 어느 정도의 시작이 필요한지 파악할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예열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그렇게 예열한 후에는 어느 정도 집중이 가능한지 알게 되면 일의 리듬을 잡기에 좋다. 


 일의 진척속도도 함께 체크하면 언제 일하기 좋은 사람인지 파악하기도 좋지 않을까? 일이 얼마나 진행되는지 체크가 가능한 업무라면 생산성툴을 이용해 내가 어디 즈음 와 있는지 파악하는 게 도움이 되었다. 그건 내가 최소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어야 하는 노동기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흔들리는 나의 멘탈 관리에 좋기 때문이다. 




마흔 너머를 준비하는 여성 프리랜서를 위한 유쾌한 제안서 <우리 직업은 미래형이라서요>에 실린 글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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