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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Dec 11. 2020

모두가 프리랜서가 되는 시대가 온다     

불안이 디폴트, 계획할 수 없는 세대의 출현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영화 <기생충>에서 아버지 기택(송강호)은 그렇게 말한다.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입고 싶은 거 안 입고, 잠을 줄여가며 노력하면 종내엔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기성세대에겐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기택의 말이 한심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택의 말에 눈물이 찔끔 났다. 재벌집 딸을 사랑한 나머지 장모님께 김치 싸대기를 맞고 그녀를 보내줘야만 하는 신파 드라마보다, 계획을 세울 의지조차 빼앗겨버린 기택의 이야기가 훨씬 슬프다. 엉엉. 기존 신파에는 적어도 달콤한 사랑 이야기라도 있지 않나. 기택의 무계획이야말로 역사상 최대 빈부 격차를 자랑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신파다. 


기택의 ‘무계획 썰’에 격하게 공감한 사람이 가난한 집안의 중년 가장뿐일까? 나를 비롯한 청년들 대다수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지 않았을까? 우리는 계획을 신뢰할 수 없는 세대다. 노력이 성과로 돌아오는 걸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간다고 대기업에 갈 수도 없고, 커피값 아낀다고 아파트를 살 수도 없으니까. 불과 1년 전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을 계획을 세웠는데, 한 해가 지나고 나니 초원이 재개발되거나 바다가 되어버렸으니까. 200만 원의 월급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100만 원씩 저금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그 일 년 동안 내가 사고 싶었던 집은 1,000만 원이 올라버렸다. 영어 못하면 원서도 낼 수 없다고 해서 겨우 토익을 900점으로 올려두었더니, 980점 밑으로는 1차 서류도 통과할 수 없다. 


이쯤 되면 돈 아낀다고 못 먹은 3,000원짜리 마카롱과 토익 공부한다고 못 나갔던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아련히 떠오르기 마련.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었던 꿈은 1,000원짜리 자동 로또에 걸어본다. 주린이와 부린이가 늘어나고 영혼을 끌어 모아 집 사기 막차에 올라 탄다. 그런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기를 포기하는 건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계획을 세우기를 포기하는 건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불안이 디폴트, 계획할 수 없는 세대의 출현 


청년들은 이미 불안에 익숙하다. 불안이 디폴트값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불안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슬프게도 ‘불안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는 자아착취에 시달리거나(이명박도 하루에 세 시간만 잤다니까 내일부터 세 시간만 자겠다), 이상주의자가 되거나(그래도 선한 마음은 이긴답니다), 타조처럼 모래 속에 얼굴을 처박고 외면하는 방법을(잘 모르겠고 어떻게든 되겠지) 택한다. 그러나 어느 방법도 불안을 근본적으로 없애지는 못한다. 우리는 불안을 안고 사는 세대다. 


이런 시대에 ‘공시생’만큼이나 프리랜서가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일차적으로는 우리에게 ‘안정’을 보장하는 회사나 조직, 그리고 그곳에서 제공하는 일자리가 줄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불가피한 결과이지만, 한편으로는 청년들이 더 이상 기성세대의 ‘안정’을 구하는 데 목매지 않기로 선택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 선택을 이왕 불안에 무릎까지 젖어버린 바지를 보며 에라 모르겠다 물로 뛰어드는 마음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족하다. ‘직업’과 ‘노동’에 부여하는 의미와 기대하는 보상이 달라지고 있는 거이 프리랜서가 늘어나는 현상의 한 원인은 아닐까? 

이 시대의 직업과 노동, 그리고 인정이란 


계획할 수 없는 세대에게 직업과 노동은 더 이상 삶의 안정을 담보하는 장치가 아니다. 우리는 평생 안정적인 직장이 판타지라는 것, 게다가 그 불안정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10년 후 혹은 20년 후 살아있을지 아닐지 알 수 없는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4년제 대학을 나오고, 토익 점수를 올리고, 어학연수에 몇천만 원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들어가면? 내가 들어간 기업이 너무 튼튼해서 내가 죽기 전까지는 망할 걱정이 없다고 호언해본다고 해도, 마흔이 넘어가면 그 기업에서 내 자리를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 의심한다. 당신이 다니는 그 기업이 늑대의 입김 한 번에 날아갈 지푸라기 집은 아닐까? 그 집이 벽돌로 지은 튼튼한 집이라면, 당신은 거기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집을 지을 때가 아니라 내 한 몸 가릴 든든한 외투를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우리는 평생 안정적인 직장이 판타지라는 것,
게다가 그 불안정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행여 운이 좋아 이 시대의 멸종위기종 같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기성세대의 안정을 누리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런 조직의 생활이란 대부분 보수적인 문화, 낮은 임금, 반복적이고 지루한 업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심지어, 내가 조직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내가 운영하는 ‘언젠가, 프리랜서’라는 북클럽에서 건실한 전자제품 유통회사 과장인 A를 만난 적이 있다. 근속한 지 11년차인 그의 주 업무는 경기도 한 지역의 가맹점 관리였다. 일은 지루하고 고되었지만 급여와 복지 수준은 좋았다. 다만 그는 10년 넘게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가맹점 관리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회사에서 좀 더 가맹점을 쥐어짜라고 한다고 해서 항의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했다. 전문성을 가진 일이 아니었기에 독립도 할 수 없었고, 연봉을 낮추지 않는 이상 이직도 힘들었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은 회사의 부당한 요구나 절차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가 안정을 위해 치르는 대가였다.

어떻게 해야 하죠

밥벌이 이상의 내 일을 지키기 위해


프리랜서를 선택하는 청년들에게 직업과 노동의 의미는 주체성과 자율성, 독립성에 가깝다. 이들에게 일은 ‘자아실현의 도구’이자 사회적 인정을 위한 증거다.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는 세대의 새로운 니즈이건 불안을 안고 사는 세대의 자의 반 타의 반 니즈이건, 어쨌건 현실이 그렇다.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부터 그저 살아남기가 최우선이었던 이전 세대에게 요즘 세대들이 일자리에서 ‘밥벌이’ 이상의 뭔가를 바라는 게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고르는 조건으로 ‘밥벌이’ 이상의 무엇을 찾는 게 무리한 요구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일을 하는 그 오랜 시간을 단순히 ‘나 죽었다’라는 생각으로 버린 셈 치기에는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 동안 노동자로 산다. 우리는 자신의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일이나, 명예로운 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조직 안에서 그런 일을 찾으면 ‘놀러 왔냐’, ‘네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냐’라는 평을 듣는다. 


그러니 프리랜서로 살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커리어를 조금씩 연결해나가고자 하는 것이고,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탐색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이를테면 오지선다의 객관식 시험지 대신 문제만 주어지고 답은 서술형으로 작성하는 시험을 택한 거나 다름없다고나 할까. 물론 한 문장 한 문장을 덧대는 건 본인이 해야 하는 길이기에 누구에게도 같은 답은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찍은 점을 어떻게든 연결해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랜서는 청년들에게 더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2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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