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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Dec 11. 2020

프리랜서가 노동의 미래라는 판타지 너머

프리랜서니까, 더더욱 계획이 필요해

이 글은 <모두가 프리랜서가 되는 시대가 온다>에서 이어집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안정’이 점점 희귀한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고 해서, 그리고 우리 세대가 직업과 노동에 다양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안정을 보장해주지 않아도 된다거나, 우리 삶에 안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불안정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유연성의 반대축에 안정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연한 노동을 안정적으로 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 어떤 기업들은 노동의 유연성과 독립성을 준다고 포장하며 고용자로서 보장해주어야 할 안정성만 제거하기도 한다. 더 이상 고정적인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기업이 자신의 이윤을 높이고 노동자를 다른 자본처럼 쉽게 부리기 위해 고안해낸 ‘프리랜서’는 판타지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에서 새라 케슬러는 미국에서 독립계약자인 우버 드라이버들의 실상을 밝힌다. 우버에 의해 자유로운 노동과 고임금을 보장받는 듯 홍보되었던 우버 드라이버는 실제로는 고강도 노동과 평점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독립계약자이기 때문에 아프거나 다쳐도 회사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없다. 택시 회사에 근무하는 드라이버였다면 그는 차와 기름값을 제공받고 난폭한 손님으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을 받고, 아플 때 연차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계약자일 때 우버드라이버는 최소 수익을 보장받기 위해 아무 손님이나 받아야 하고, 회사가 손님 ‘거절을 거절’했기 때문에 자유롭지도 않을뿐더러, 사실상 영업이 되는 시간에 나오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자유롭지도 않다. 우리가 떠올리는 프리랜서의 가치인 독립성, 유연성, 자유로움 중 어떤 것에도 들어맞지 않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나 배달, 이사 등의 업계에서 프리랜서들과 이런 식의 계약을 맺는 업체들이 있다. 플랫폼이 있는 분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프리랜서가 일을 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리랜서 사이트들은 프리랜서에게 수수료는 많이 떼어가면서 그들이 클라이언트로부터 입는 불이익은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미래의 프리랜서는 점점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고 노동 인구 대부분이 프리랜서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모두가 강제로 노동의 기반을 잃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경고로 들어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노동이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 자유의 바닥에 매트리스가 깔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프리랜서가 되는 시대가 정말 올 거라면,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한병철 교수는 『심리 정치』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의 감정은 일정한 삶의 형태에서 다른 삶의 형태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나타나 이 새로운 삶의 형태 자체가 강제의 형식임이 밝혀지기 전까지만 지속될 뿐이다.”

프리랜서니까, 더더욱 계획이 필요해 

.

프리랜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함부로 예측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기본소득이 실현되어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받으면서도 나의 점을 멋지게 연결해볼 만한 자율성이 보장될 지도 모르겠다. 혹은 교묘한 계약들로 사실상 자유를 박탈당하면서 임금은 더 낮고 복지는 꿈도 못 꾸는 프리랜서가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향으로든 간에 프리랜서의 세계는 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10년 후 세계 인구의 절반이 프리랜서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 계획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계획을 짜자.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그림을 그려보는 일이다. 그림을 그릴 때 스케치 후에 지우개로 지우고 물감을 덧대는 일이 이어진다고 해서 스케치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기회와 위기로 우리의 커리어 계획은 계속 변화하겠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자원을 바탕으로 내가 꿈꿀 수 있는 커리어가 무엇인지 단계를 그려보는 것이 좋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언젠가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보겠다거나, 대학원이나 자격증 공부를 좀 더 해서 그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좀 더 키워보겠다거나, 커리어 분야를 본격적으로 전향해보겠다는 포부도 좋다. 


 두 번째는, 노동자들의 꿈을 이용해 이익을 확대하는 단체를 경계하고 정부와 지자체에 새로운 노동에 걸맞는 정책과 법안을 세우도록 촉구하는 계획이다. 독립된 노동자로 살고 싶은 개인의 욕망을 이용해 노동 단가를 낮추고 불공정 계약을 하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왔고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투표권과 지갑이라는 훌륭한 무기가 있다. 이런 흐름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다가 온다는 ‘모두가 프리랜서가 되는 시대’는 자신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노예로 가득 찬 디스토피아가 될지도 모른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택은 계획이 없어서 실패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그는 영원히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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