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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Jan 04. 2021

프리랜서여, 그 도장을 찍지 마오

계약서는 어떻게 써야 하죠?

계약서. 그래, 이번에는 계약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자. 


계약서를 잘 쓰라는 이야기를 하자면 부동산 이중계약의 피해자로 십오 년 간 모은 돈을 홀딱 빼앗긴 우리 사촌오빠를 불러와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사촌오빠를 부르면 얼굴의 생김새가 성기 같다는 그 사기꾼의 욕을 두어 시간 들어야 하니 효율적인 강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젊은 시절 큰 기업에 취업했다는 사실에 취해 계약서도 안 보고 덜컥 사인을 했다는 삼촌 이야기를 되새겨보자. 근무 중 상해에 대한 조항이 그다지 튼실하지 않았던 계약서 덕에 삼촌은 다쳐서 삼 년을 누워 있어야 했는데도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허리통증은 사라지지 않는지라, 아직도 비가 올 때면 삼촌은 IMF로 옛날에 망해버린 그 회사 욕을 한다. 


생각해보니 굳이 과거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컫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동화책 <구름빵>을 출간했지만 출판사와 처음 한 계약 때문에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세상에! 계약서의 중요성을 알고 싶다면 친구들의 모임에 가서 ‘계약서’라는 화두를 던져보자. 우리 사촌오빠가 그랬고 삼촌이 그랬듯 좋은 말로 끝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말해 뭐해. 프리랜서가 되었다면, 계약서를 잘 쓰자는 거지!

님아, 도장 찍는다고 신난 그 손을 멈추오


프리랜서로서 내가 처음 썼던 계약서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인터뷰 원고를 작성하는 외주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하던 업무를 그대로 가지고 나온 케이스는 아니라서, 이 업계의 꼬꼬마였다. 서울문화재단은 프리랜서의 노동 권리를 잘 지켜주는 곳인지라(보고 계신가요, 담당자님?) 꼬꼬마인 내게도 적당한 페이를 약속했고, 나는 너무 설레고 신난 나머지 담당자가 가져온 계약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도장을 쾅쾅 찍었다. 


“작가님, 여기 확인하시고 도장은 여기에.”

“쾅!”

“아, 작가님께서 보관하실 계약서는 여기.”

“쾅! 쾅!”

“빠르시네요. 이게 간인도 해야 하는지라.”

“쾅! 쾅! 쾅!”


좋은 클라이언트였으니 망정이지! 그때는 어쩐지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고 세밀하게 읽어보면 클라이언트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이런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당연히 일을 하려면 계약서를 읽어봐야 하는데 어쩐지 담당자를 앞에 두고 교정교열 하듯 계약서를 살피면 내가 당신을 의심한다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만약 내가 클라이언트라면 계약서를 보지도 않고 도장을 쾅쾅 찍는 프리랜서는 어쩐지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 그 계약서는 별 문제가 없었고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계약서 때문에 분쟁이 벌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을 때 흥분해서 나처럼 계약서에 도장을 쾅쾅 찍거나, ‘아는 사인데 뭘 이런걸’이라며 대충 넘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계약서는 꼭 써야 한다. 세계 평화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프리랜서와 클라이언트의 평화는 계약서에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내 일’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될 수도 있고, 작업물을 제때 넘기지 않아 클라이언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래서 얼마 받느냐’도 명확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계약서에서 이것만은 확인하자


만약 당신이 나무 깎기 장인으로서 테이블을 하나 만들어주기로 계약했다고 하자. 그런데 계약서 없이 대충 ‘주방에서 쓸 만한 테이블 하나 만들어 줘’라고 요청을 했다면? 테이블의 가로, 세로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나무를 쓰는지, 언제까지 만들어줘야 하는지, 다 만들면 돈은 언제 주는지, 선금은 주는 건지, 만들면 어디로 배송시켜줘야 하는 건지 하나씩 계속 협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만들었더니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안 든다며 안 사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 계약서에는 꼭 ‘언제까지’ 만들어줘야 하는지, ‘무엇을’ 만들어줘야 하는지,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만드는 건지 명시해야 한다. 돈이 언제까지 ‘입금’되어야 하는지와 그때까지 입금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조치를 취할 건지도 꼭 들어 있어야 한다. 계약서가 보통 복잡하고 어려운 말이 많아서 무슨 이야기인지 헷갈릴 수도 있는데, 자세히 읽어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고 안 된다면 계약할 때 물어봐도 된다. 일반인이 읽었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계약서라면 나중에도 분쟁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이야기고,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계약서를 들춰야 할 일이 보통 이럴 때 생긴다.


“왜 나한테 이런 일까지 시키지? 내가 여기까지 해주기로 했었나?”

“입금일이 지났는데 왜 아직 돈이 안 들어오지?”

“대박, 프로젝트가 엎어졌잖아? 일 다 했는데!”

무엇보다 업무 범위는 구체적으로! 


업무 범위를 쓸 때는 그래서 아주 구체적으로 쓰는 게 좋다. ‘전반의’, ‘일체의’, ‘수반하는’, ‘기타의’ 같은 말들이 프리랜서의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사실 같은 클라이언트와 프리랜서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계약서에서만 기반에서 일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서로 상황을 이해하며 마감 기한을 조금 늦춰주기도 하고, 업무 비용을 좀 조정하기도 하며, 그간 일한 의리를 봐서 좀 더 해주는 경우도 잦다. 일의 업무나 역할, 범위가 그렇게 무로 자르듯 명확하게 되지도 않고, 꼭 그렇게 칼같이 하는 것만이 능사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서를 쓰는 건 서로 지켜야 할 예의를 갖추게 하는 방법이다. 추가 업무가 금방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전에 조율하지 않은 추가 업무를 시키는 건 분명 양해와 부탁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돈을 주는 사람이 아직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지 않은 이상 프리랜서는 늘 약자가 될 수밖에. 그러나 계약서를 사전에 작성하면 수정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눈치 보게 하거나 고마워하게 만들 수 있다. (안 그럴 것 같은 클라이언트면 님아 제발 그 일을 맡지 마오!) 일을 하면, 부탁을 들어주면, 티를 내야만 그 몫을 챙기게 된다.


계약서를 쓸 때 알아야 할 점을 다 말하게 되면 너무 길다.  계약서를 잘 썼다고 해서 안심할 수만도 없다. 웬만한 질문은 한국저작권위원회 유형별 자동상담을 통해 알아볼 수도 있고, 작은 사기라면 서울시 ‘눈물그만상담센터’ 등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것만은!’이라며 눈물로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저작권’이다.

안일하게 있다간 큰일나는 저작권 문제 


창작물을 넘기는 프리랜서라면 계약서에서 저작권 조항도 잘 살펴봐야 한다. 나의 창작물을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항이 자세히 적혀있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랑 계약을 맺고 귀여운 펭귄 캐릭터를 하나 그려줬는데 몇 년 후에 팬시점에서 그 캐릭터로 만들어진 온갖 문구세트를 보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내가 장편 만화에서 만든 설정이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대로 응용되는 걸 본다면? 둘 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내가 넘기는 창작물의 저작권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만약 2차 콘텐츠를 만들게 된다면 수익 배분은 어떻게 할지, 이 계약의 만료는 몇 년으로 하며 그 이후에는 저작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저작권 조항을 잘 살피기 위해서는 계약서를 쓰기 전에 미리 받아보는 게 좋다. 도장을 찍기 전에 집에서 살펴보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전문가를 통해 상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저작물을 잘 보호하는 만큼 남들의 저작물을 잘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창작물이 어떻게 쓰이는지 뿐 아니라, 내 창작물에 쓰일 재료들이 저작권 허가를 받았는지도 중요한 요소다. 나와 친한 한 작가는 일본의 유명 만화를 소재로 에세이를 쓰자고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그가 에세이를 완성하고 넘긴 후에도 출판사는 만화가에게 저작권 허락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의 원고는 공중으로 분해되었다. 그에게 남은 건 100만 원이라는 선금뿐! 그가 울며 자신의 원고를 개인 SNS를 통해 내보내는 걸 보며 나는 성실히 하트를 눌러주었다. 그도 글을 쓸 때는 자기가 원고료를 하트로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겠지. 

“에이, 유명한 글이니까 그렇겠지. 내가 사진 하나 블로그에 올린다고 무슨 일 나겠어?”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있으면 진짜로 ‘무슨 일’이 난다. 내가 출판사의 프리랜서 마케터로 책을 홍보할 때였다. 나는 책의 내용을 간추려서 출간 전에 블로그에 연재를 하거나 페이스북에 주요 문구들을 올리곤 했다. 어느 날 법무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운영하시는 블로그에 저희 고객 사진이 허가 없이 쓰여서 연락드립니다.”

“네? 그럴 리가 없는데요!”

“내용증명 보세요.”


내가 쓴 사진은 오래된 중국의 책을 찍은 사진으로 저작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였다. 게다가 사진을 가져온 게 주민센터 홈페이지였기에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저 무슨 무슨 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인데, 저작권이 누구한테 있었나요?”

“주민센터에서도 지금 저작권을 위반하셔서 같은 내용 증명을 받았어요.”

“그럼 전 어떻게 하죠?”

“소송 가시거나 사진을 구매하셔야 합니다.”

“사진이 얼만데요?”

“50만 원입니다.”


결국 나는 울며 50만 원을 냈다. 부디 그 50만 원의 많은 부분이 원작자에게 갔기를 바랄 따름이다. 나중에 들었는데 저작권만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법무법인들이 있다고 한다. 원작자가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저작권을 위반한 사례를 수집하고 원작자에게 연락해 대행해주는 서비스다. 프리랜서여, 부디 저작권을 잘 지키자.

내 저작권이 소중하면 남의 저작권도 소중한 법


쓸 수 있는 사진인지 확인하기, 유튜브에 음원 올릴 때는 원작자의 허가를 받기, 팟캐스트에서 누구 책 읽어줄 때는 일부만 리뷰와 함께하기 등 저작권에 대한 일반 상식은 다들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내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남의 자식 머리를 쥐어박았는지, 나도 모르게 밀었는지 조심조심 살피며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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