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lidayreading May 30. 2021

크루엘라 - 디즈니의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주인공

가능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가장 존경하는 신형철 평론가의 칼럼을 보고 였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영화를 쉽게 많이 자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OTT와 VOD, 리모컨과 빨리 감기가 가능해져 버린 모바일과 컴퓨터로는 영화의 온전함을 경험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진짜 영화를 보는 경험은 때로는 영화의 시간을 기다리고, 견뎌야 하고, 참아야 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어느 때보다 영화를 많이 접하는 지금, 영화를 온전히 느끼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리고 더 빨리 휘발되어버렸다.

"극장에는 덜 가지만 영화는 더 보고 있다. 매달 얼마를 내면 수백 편의 영화를 언제고 틀었다 끌 수 있으니까. 그래서 거실에서, 리모컨을 옆에 놓고, 시큰둥한 마음으로 본다. 이제 나는 한 편의 영화를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폭군 같은 자유를 누리게 됐는데 나와 영화의 관계는 왜 점점 공허해지는가."


그래서 나는 마음을 먹었다.


리모컨을 든 폭군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만끽하자. 충분히 영화를 경험하자. 게다가 나는 영화를 마케팅하는 사람인데, 점점 나 또한 영화와 멀어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주말에 하루는 무조건 극장에 가자. 그리고 영화를 기록하고 기억하자.



그 다짐을 하고 첫 극장에 방문해서 본 영화는 디즈니의 <크루엘라>였다. 아무래도 업계에 있다 보니 영화 소식이나 시사 반응을 빠르게 알 수 있는 편인데, <크루엘라>의 평이 꽤 좋았던 터라, 시큰둥한 남편을 끌고 극장에 갔다. 극장엔 나와 남편을 포함해 8명 정도밖에 없었지만, 최근 극장에 갔을 땐 나뿐이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던 터라, 그럼에도 디즈니 영화이니까 이 정도의 관객이라도 모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크루엘라>는  동화 '101마리 달마시안'의 스핀오프 격으로 탄생한 영화이다. 어릴 적 동화책으로 읽은 경험은 있지만 사실 이야기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했고, 동화 속의 캐릭터에서 발췌 정도만 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봤다. 그 외의 정보는 전무했다. 어떤 예측도 없이 마주한 <크루엘라>에 대해 나는 마블식의 판타지 빌런 액션을 기대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오프닝부터 새로운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같은 패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빌런의 이야기가 아닌, 한 인물의 성장담을 다룬 영화인가 싶어 혼란스럽기도 했다.

관람 후에 느낀 점은 물론, 배우들의 연기, 화려한 촬영과 편집, 현란한 패션과 그에 절묘하게 어울렸던 클래식 음악 등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다양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이야기, 단연코 주제 의식이었던 것 같다.


지금을 살아가는 디즈니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이 블로그에 남긴 마지막 글인 <겨울왕국 2> 또한 환경 이슈 등 지금 시대의 화두를 밀접하게 연결 지어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크루엘라는 어쩌면 그동안 디즈니가 공고히 쌓아온 "가족주의"에 대한 믿음을 철저하게 배신하는 영화였다.


새로운 시대가 왔고, 디즈니는 정말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개발한다.


<크루엘라>는 디즈니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캐릭터일 뿐만 아니라, 디즈니의 가장 파격적인 도전이기도 하다.



에스텔라라는 원래 이름이 아닌 내가 만든 이름, 크루엘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


미국식 가족주의가 이미 익숙해진 우리에게 <크루엘라>는 혈연이 정해준 모든 것을 탈피해 나의 이름을 스스로 만들고, 새로운 유사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새로운 유사 가족의 모양 안에서 크루엘라는 어릴 적, 엄마를 잃고 런던에 혼자 떨어진 자신을 거둬준 두 친구들에게 '너희가 진짜 가족이야'라는 대사로 다시금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에 대한 정의를 완벽하게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가족을 만든다.



영리하고, 조금 못됐고, 조금 미친 우리의 주인공은 어쩌다 빌런으로 탄생하게 되었나 가 아닌, 그 자체로 태어난 존재였다.


자칫 자기 계발서스러운 이야기 같긴 하지만 확실히 요즘의 추세는 '나답게, 그 자체로'인 듯 하다.


억지로 상냥해지지 않아도, 억지로 착하지 않아도, 조금 돌아버려도, 미쳐도 괜찮은 것. 그리고 그것이 곧 미래다. THE FUTURE.


크루엘라라는 디즈니의 빌런은 조커처럼 추락하지 않고, 하늘로 떠오른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신이 된다.


날개를 가지고 있는, 타인이 아닌, 가족이 아닌, 스스로를 정의하는 여성 빌런.


디즈니의 세계관을 마음껏 휘집고 다니며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을 앞으로도 실컷 만끽하고 싶다.


디즈니의 영화들은 여전히, 무조건 극장에서 볼 것이고 관객들 또한 새로운 빌런의 탄생을 스크린 앞에서 마주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원히 영화밥 먹으며 살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