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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lidayreading Feb 07. 2017

난 자유로워질 거야 따위 버려.

퇴사 후, 느낀 단상

스웨덴 작가. 칼 라르손의 그림.


시국은 여전히 불안하고 또 불쾌하지만 나의 삶, 나의 공간에서의 삶은 이토록 여유롭고 넉넉해도 될까 싶습니다. 이 평화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나에겐 든든한 남편이 곁에 있지만 언제까지 남편에게 나의 경제적 활동을 의지할 순 없는 것이니까요. 퇴직금 또한 여유로운 편은 아니기에 마음껏 쓰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 퇴사를 하고 가정주부로서 지내다 보니,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 알 것 같아요. 왜 여자도 일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성장'을 원하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었고요. 지금 당장은 기약없는 쉼이 나 너무 게으른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긴 인생의 항로에서 본다면 '이 쉼을 통해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적어도 집안일만은 못하고 살겠다/나는 세상이 뒤집어져도 일을 돈을 버는 수단만으로는 죽어도 못할 사람) 깨우치는 시간' 이였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런 깨우침 만으로도 무척 귀중한 시간이라 복기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아직도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레이다망은 계속되고 있어요.


20대부터 나름 꽤 많은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건데요, 자아성찰 이런 거. 꼭 힘들게 산티아고 길을 걷거나, 여행을 통해 나를 진지하게 탐색하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고민과 성찰, 인생의 방향 설정은 꼭 폼을 잡고 고민하지 않아도 마음에 품고만 있다면 정말 문득, 갑자기 떠오르더라고요. 너무나 싱겁게요. 오히려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볼까' 생각하는 순간 더 답답해지고 뻔한 결론만 나오기 십상이죠. 가령, '난 자유로워질 거야' 따위.


며칠 전 작은언니가 '공부방' 이야기를 살짝 꺼내셨습니다. 지금 신혼집이 2층 단독인데요, 둘 밖에 살지 않다 보니 2층을 게스트하우스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분리 형태이다 보니 예쁘게 꾸며놨지만 아무래도 활용도가 떨어져 활용방안에 대한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나온 '공부방' 아이디어. 이 곳 당진에도 분명 아이에 대한 교육에 관심이 있고, 서울에서 많은 문화적 혜택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부모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예전부터 어찌 보면 대학 때부터 관심 있었던 영상교육/독서습관 교육을 이 곳에서 테스트해볼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그렇다면 프리랜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여행을 가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시간 활용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도 교차했습니다. 물론 아직은 창업보다는 기업에서 경력을 쌓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제가 이 쪽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이직하는 분야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할 테고, 평생 직장을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영화' 쪽 보다는 안정적으로 평생 할 수 있는 업이 필요한 것이겠죠. 돌이켜보면 '영화'는 전공이기도 하지만 저는 무조건 '영화 일'을 해야 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고, 마음을 움직이는 매체의 힘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움직이는 힘이 예를 들면, 기자들이 보여주는 비판과 감시의 기능이 아닌, 긍정적인 감성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이 끌렸던 것이고요. 긍정적인 감성들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다시 시작하고 싶어 꿈틀대는 감정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아마 다시 일을 시작하면 '난 왜 그때 조금밖에 쉬지 않았을까. 이 멍충아. 쉴 수 있을 때 좀 푹 쉬라니까'라고 땅을 치며 후회할 겁니다. 퇴사하면서 목표는 있었어요. 평생 크리에이터, 아웃풋 생산자로 살았던 제가 이번 기회에 풍성한 인풋을 키워 봐야 했다는 것.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내공과, 마케터든 기획자든 한 명의 조직원으로 돈벌이하기 위한 설득력과 통찰력을 키우기. 그리고 평생의 숙원인 말을 좀 더 잘하고 싶은 것과 글을 잘 쓰는 것 말입니다.


아휴, 아줌마다 되어도 욕심은 정말 끝도 없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심지어 취업을 해도 인생이 끝이 아니더라고요. 여전히 꿈틀대는 꿈이 있고 성장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저의 꿈이 단지 '돈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문득 내 삶에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오늘은 나 자신을 쓰다듬어 주고 싶습니다. 노는 시간에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드는 것도 나 자신을 그만큼 애정하고 사랑한다는 뜻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데 없어 보이는.. 우리 남편과 지인들만 하는 이상한 허세는 버릴 수 없어 우습지만요.


지금 이 순간. 100년 인생에서 고작 한 달하고 7일 쉬었을 뿐이에요. 이왕 쉬는 거 제대로 더 쉬어보려고요. 이렇게 쉬다 보면 또 어떤 몽글거리는 감정들과 두려움은 팽개치고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실행력과 열정이 떠오르고, 그때 내가 정말 제대로 쉬어보고 제대로 일을 시작했지,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그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PS

사랑하는 SBS 고릴라 앱의 고릴라디오 M으로 듣는 릴랙스 한 음악들과 '나'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이 평화로운 밤의 시간이 참 좋네요. 졸린 얼굴을 한 고양이 샤미도 조용히 옆에서 제가 글 쓰는 걸 지켜봐 주네요. 발목을 다쳐 절룩대는 우리 샤미. 얼른 나으렴. 이렇게 동물에게 마음이 쓰이는 감정을 제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감정이에요. 조만간 이 고양이에 대한 글도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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