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주년. 작년 오늘 이 시간엔 이상한 후련함과 낯선 감정 그리고 행복하다는 감정이 온 몸 가득 휘감았던 감히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로 기억되는 날. 결혼식이 끝나고 드라마처럼 내렸던 비와 쌍무지개처럼. 그렇게 한 남자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지 오늘로 딱 일 년이 되었다. "어떻게 한 남자와 평생 함께 해? 평생 어떻게 사랑해? 그게 말이 돼?"를 여기저기 외치고 다녔던 나였기에. 결혼이라는 건 감히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이슈는 아니었다. 다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지 않나. 얼굴만 봐도 기분 좋아지는 사람. 그랬다. 그런 사람이라면 평생 함께해도 기분 좋은 감정을 항상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연애를 하다가 내가 결혼을 결심한 건 그의 '최악/바닥'을 봤을 때 였다. 내가 이런 부분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 했을 때. 진짜 마음은 어이없고 짜증날지라도 정말 두 눈 꼭 감고! 이를 꽉 악물고! 그래 이건 내가 정말 어떻게든 참고 받아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진짜 참아보자. 내가 받아들여주자. 그러자 조금 쉬워졌다. 이 부분만 참아주고 이해해주면 되는거잖아. 용서와 이해는 한번만 하면 되는 거잖아.
30년을 넘게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와, 당진에서 10대를 보낸 그와는 완벽하게 다른 삶을 살아왔을테니 함께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게다가 난 당진에 신혼집을 차렸다. 초반엔 야근에 주말 행사까지 많은 일 덕에 사실 남편은 주지 않았던 눈치를 매일 혼자 보고 다녔고 그게 많이 힘들었다. 퇴사 후에는 서툰 집안일과,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또 혼자 눈치를 봤다. <가족>이라는 워딩은 여전히 지금의 남편 보다는 서울 우리 부모님과 동생 유일이가 익숙하고, 어쩔 땐 당진 신혼집보다 서울 친정집이 더 편한 날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그동안 그토록 열심히 살았나' 같은 류의 고민들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은 다행이도 '열심히 살아와서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 싶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가족>이 되었지만 여전히 서로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그건 말이 눈치이지 결국 서로에 대한 '예의와 배려'일 것이다. 나는 그게 좋다. 세상 가장 편한 친구이지만 서로의 기분과 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이어가는 사이. 그건 여전히 그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말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상대의 감정과 상태에 내가 맞춰주고 싶은 배려일 수도 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감정을 그때 그때 파악하려고 엄청난 애를 쓰고, 배려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배려를 하려다보니 '다른 점'을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려니> 어쩌면 가장 쉬운 행복의 비결. 그래서 어느새 신혼 초반의 당황스러움과 투닥거림은 어느새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남편이 나한테 이런 걸 해줬고, 사줬고, 표현해줬고. 이런 부분으로 자랑을 하거나 우리의 일 년을 평가하고 싶진 않다. 당진에서 매일 출퇴근 하는 나를 사람들은 대단하다 평가하지만 그만큼 나를 아침, 저녁 픽업해주는 남편도 정도의 차이이지 엄청난 배려와 희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하는데 너는 왜 이것 밖에 못해줘?'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작지만 사소한 배려와 감사가 쌓여서 믿음이 되고 그게 쌓여 가족이 되는 것 같다. 결혼을 했다고 한 번에 오래 함께 산 친정집같은 가족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순 없다. 여전히 신희용-최유리 부부라는 어색한 말. 부부 사이에 영원한 사랑이란 건 믿지 않지만 부부 사이의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하는 기쁨은 영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항상 고마워 하고 싶다. 지금처럼만. 오늘, 더욱 가족이 되어가는 한 걸음을 내딛는다. 우리 진짜 가족이 될 때까지 더 화이팅하자! #그래서결론은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