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중간세계 인물: 살지도 죽지도 않은 채 시간에 갇힌 '장만월'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은 이승에 있는 존재를 저승으로 가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저승사자와 흡사한 역할을 한다. 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은 명부를 가지고 가서 망자들을 데려가지만, <호텔 델루나>의 망자들은 죽음을 맞이하고 미련을 가지고 호텔 델루나를 찾아온다.
만월은 호텔을 찾아온 미련이 가득한 망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대가를 받는다. 저승사자의 역할에 확장으로 장만월의 설화적 배경을 찾아보자면, 바리데기 설화를 들 수 있다.
바리공주는 저승에 이른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이끄는 생명의 여신. 기쁨과 슬픔, 고통과 한(恨)을 넘어선 듯 무심한 표정이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흰 꽃은 세상을 떠난 영혼이 저승에서 새롭게 부여받게 되는 새로운 생명의 표상일 터이다.
우리 신화의 가장 중요한 저승 신은 오구신 바리(바리공주, 바리데기)다. 바리는 저승차사에 이끌려 황천수를 건넌 영혼을 맞이하여 그 죄와 한을 눈물로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저승의 심판을 앞둔 혼령들을 감싸주고 지켜주는 모성과 자비의 수호신이다.
이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지 않으면 이끎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일이다. 일컬어 ‘길값’이라 하거니와 그것이 단지 재물을 뜻하는 것이 아님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신화에 나오는 바리가 했던 역할을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이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망자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며 돈을 받는 형식을 차용했다.
천년 넘게 호텔 델루나를 운영한 장만월은 달에 비유하며 1300년을 살면서 전생에 많은 사람을 죽인 큰 죄를 지어 긴 세월 동안 ‘델루나’라는 객점에 묶이는 저주에 걸려, 천년도 넘은 노파가 속에 들어앉은 듯 쭈글쭈글하게 괴팍하고, 변덕이 심하고, 의심과 욕심도 많으며, 사치스럽다.
6.25 전쟁에 지현중이 죽고 델루나로 들어오게 되었을 당시, 한을 품고 죽은 망자들이 너무나도 많아 델루나로 들어와서 한을 풀고 가지 않고 저승문이 한바탕 크게 열려서 전부 다 저승으로 가버렸다.
한을 풀고 깨끗해진 망자들을 저승으로 보내고 그 답례로 여러 물품을 구비하던 델루나의 특성상, 한을 풀어줄 손님들이 오질 않아 고생했다. 장만월은 계속해서 샴페인과 캐비어를 먹을 거라며 다짐한다. “가난은 싫어. 난 계속 캐비어에 샴페인 먹을 거야.”라며 만월의 사치에 이유를 만들어주었고, 캐릭터의 정체성을 대사로 표현하였다.
장만월이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던 조선 후기부터 경성 시대, 1900년대 후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델루나와 만월의 모습이 장만월의 사무실에 붙어있는데, 모든 사진은 델루나를 거쳐 갔던 인간 지배인들이 찍어준 델루나와 장만월의 사진이다. 사진을 통해 호텔 델루나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호텔 델루나> 2회에서 구찬성의 신발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어갔다가, 만월은 자신의 구두는 구경도 못 했다고, 짜증 내며 백화점 앞에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만월과 찬성은 백화점의 셔터가 닫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찬성은 만월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장만월은 자신이 하는 일을 백화점 문이 닫히는 것을 보면서 “아쉬움이 가득한 채로 문 닫은 사람들을 달래는 일”로 표현해 호텔 델루나에서 만월이 하는 역할과 만월의 캐릭터를 일상에 적용해서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보며, 스치고 지나갔던 장면들을 죽음과 연관 지어 만월이라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호텔 델루나> 3회에서 장만월의 정원이 나오는 장면을 통해 만월은 월령수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내레이션으로 ‘살지도 죽지도 않은 채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갇혀있다’고 인물을 설명한다. 월령수는 호텔 델루나 정원에 있는 고목으로 만월의 영혼을 속박하고 있는 나무로 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꽃이 피기 시작한다. 장만월의 감정 변화로 나무에 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 만월의 시간이 끝나간다는 것을 표현했다.
장만월이 월령수이고, 월령수가 곧 호텔 델루나다. 장만월이 호텔에서 외출하여 24시간 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월령수와 호텔 자체가 장만월이 있는 곳으로 이전하게 된다. 장만월을 속박하는 것이자, 장만월을 보호하는 울타리라고 객실장이 언급한다. 만월이 사랑을 하면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며, 사랑하는 자가 다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꽃이 지기 시작한다. 만월이 저승으로 향하자, 월령수도 소멸한다.
<호텔 델루나>에도 <도깨비>처럼 전생과 현생이 연결되어, 인물이 가진 전생의 사건들이 현생에 영향을 미치며 얽혀있다. 장만월은 과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로 전생에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 이승도 저승에도 속하지 않는 삶으로 살아가다가 전생에 얽혀있던 인물은 구찬성을 통해 모두 만나게 된다.
과거의 장만월은 무주국 사람으로 나오고, 고청명이 고구려 귀족의 후손으로, 연우가 장만월과 함께 모여 사는 가오리촌의 도적패 일당이었다. 이 당시 배경은 당의 황태후였던 무조(武照)가 당을 일시적으로 멸망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세운 시기인 무주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14화의 언급으로 옛 고구려 땅에 신생 국가가 생성된 것이 확인되었고, 호텔 델루나에서 고청명의 영혼을 계속 기다렸다. 그러나 고청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나, 배신자였던 고청명은 15회에 반딧불로 들어온 달의 객잔의 첫 번째 손님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환생한 연우와 송화 공주에게 전생이 기억나게 하는 술을 마시게 하고, 장만월은 전생에 대해 듣고, 연우가 고청명에게 배신자로 남아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을 알고 장만월은 오해를 풀고, 고청명을 저승으로 보내주면서 만월은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저승으로 갈 준비를 하게 된다.
참고자료
홍정은·홍미란 극본, 오충환·김정현 연출, <호텔 델루나>, 총 16회, tvN, 2019.
신동흔, 『살아있는 우리 신화』, 한겨레 신문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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