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하남
설이와 떠나는 전국일주 두 번째 여행지는 경기도 하남. 사실 하남은 여행이라기엔 조금 민망하다. 이제는 대형 쇼핑몰과 대단지 아파트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도시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지난 순천 여행으로 장거리 운전에 벌써 지쳐버린 우리는, 이번엔 가까운 곳으로의 당일치기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앞으로 먼 지역을 여행할 때에는 운전 외의 다른 교통수단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설이와 함께 다니기에는 운전이 편하지만, 그러다 보니 먼 지역은 떠나기 전부터 엄두가 잘 안 난다는 부작용이...
서울에서 하남까지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 거리만 보면 먼 곳은 아닌데 역시 주말의 서울 교통은 무섭다. 나름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가는 것이니 하남에서 가볼 만한 색다른 장소가 있을까 찾아봤는데, 마땅히 갈만한 곳을 찾지는 못했다. 하남 역사박물관에 가보고 싶었지만 역시나 박물관은 애견 동반이 불가능.
아~ 설이랑도 박물관, 미술관에 가고 싶다!
원래는 여행을 하면 그 지역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설이와의 여행에서는 그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게 조금 아쉽다.
결국 우리는 노선을 바꿔 어쩌면 지금 하남에서 가장 유명한 곳에 가보기로 했다. 스타필드 하남. 2016년에 개장한 복합 쇼핑몰로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라고 한다. 스타필드 하남이 개장했을 때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기사를 보고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특히나 애견 동반이 가능한 쇼핑몰이라니!
'이제 설이랑 쇼핑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건가?' 약간 기대가 됐다.
내부엔 층마다 배변봉투가 준비되어 있고 심지어는 강아지 전용 화장실까지 있었다. 강아지들이 편하게 볼일을 볼 수 있도록 작지만 인공 잔디로 된 공간까지 마련해놓은 것이 꽤 섬세하게 신경을 썼다 싶었다.
'이 정도면 설이랑도 맘 놓고 쇼핑할 수 있겠는데?'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많은 사람들과 큰 음악소리, 여러 소음들에 놀랐는지 설이는 쇼핑몰 안에서 시종일관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놀러 온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도 인사는커녕 그 친구들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완전 멘붕!
쇼핑몰을 빠져나오자 곧바로 길가 잔디에 소변을 누던 설이. 정신없고 놀라서 참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미안해 설아~ 이제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
멘붕의 쇼핑몰을 나와 우리는 근처에 있는 미사 경정공원으로 향했다. 긴 조정호수를 중심으로 길고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를 보니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차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돗자리를 펴고 스타필드에서 사 온 고급 주먹밥(?)을 먹으며 여유로운 멍 때리기를 즐겼다. 설이도 풀냄새를 열심히 맡으며 멘붕에서 벗어난 듯했다.
지금까지는 여행지나 관광지를 고를 때
첫째, 내가 가고 싶고
둘째,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
을 찾았다. 설이가 가고 싶어 할 곳인지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 일방적으로 내가 가는 곳에 강아지를 데려가는 게 아니라 강아지와 함께하는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두 번째 여행만에 이걸 깨닫다니! 하남에 오길 잘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