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 5월 말
한 달 전쯤 강원도 홍천에 있는 애견 캠핑장을 갔었다. 현생이 바빠 거의 4~5개월 만에 가는 캠핑이라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출발을 했다. 장장 3시간이 걸려 도착한 캠핑장. 텐트를 치려는데, 아뿔싸! 폴대(텐트를 세우기 위한 기둥)가 없다......
폴대가 살짝 휜 부분이 있어 수리를 맡기려고 빼놓은 것을 완전히 까먹고 그대로 캠핑에 나선 것. 결국 우리는 텐트를 펼쳐보지도 못한 채 곧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허탈함과 분노를 연료 삼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캠핑을 하고야 말겠어!'라는 열정으로 폭풍 검색을 했고 그렇게 남양주에 있는 애견 캠핑장을 발견해 지체 없이 예약을 했다.
그렇게 가게 된 나름 사연 있는 도시, 남양주. 캠핑장으로 가는 길에 하늘이 점점 흐려지더니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꽤 주룩주룩 비가 와서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고 캠핑장비들을 정리했다. 1시간 정도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고 나니 오늘의 할 일을 다 끝낸 듯한 기분에 기운이 쭈욱 빠졌다. 하지만 도자기 수업을 가야 한다.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해뒀기 때문. 남양주에 있는 괜찮은 카페들을 찾아보다가 캠핑장 가까이에 있는 한 애견 동반 카페를 찾아냈는데, 도자기 만드는 체험도 제공하고 있어 별생각 없이 재밌겠다! 하고 예약을 해두었다. 텐트를 치고 나면 이렇게 지쳐버릴지 생각을 못했지... 심지어 비까지 올 줄이야.
설이를 포함한 모두가 비를 맞아 꼴이 썩 말끔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오는 예쁜 카페에 들어가는 게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약속 시간에 맞춰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는 한적한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덕분에 카페에서 보이는 풍경이 참 예뻤다. 비가 오는 날이라 더 한적하고 조용한 풍경이었다. 비는 매일 보는 익숙한 장소라도 마치 새로운 공간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의 여행은 기억에 더 오래 남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날씨가 마치 이른 장마가 온 것처럼 비가 내리고 있어서 남양주에 오기 전까지 '제발 주말에는 비가 오지 않았으면!' 속으로 기도를 했었다. 기도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생각했다.
"비 오는 날의 캠핑도 참 좋네~"
도자기 수업에서 나는 작은 접시를, 남편은 뚜껑 없는 다관을 만들었다. 수업은 약 1시간 정도의 과정이라 뚜껑까지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짧은 수업인 만큼 애초에 쉽고 간단한 건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관만을 고집했다. 내가 옆에서 계속 그건 무리야!라고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결국 다관을 만들어냈다. (비록 뚜껑은 없을지라도...) 역시 무언가를 끈기 있게 고집하면 그 목표에 비슷하게나마 도달하는 걸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건 정말로 교훈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여행은 멀리 가지 않아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하는 참 좋은 방법이라는 것.
늦은 밤부터 서서히 줄어든 빗줄기는 다음 날 아침엔 완전히 사라져 아주 맑은 하늘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파란 하늘, 뜨끈하고 묵직한 공기, 운동장에서 한바탕 신나게 달린 설이의 헥헥거리는 숨소리. 이제 정말 여름의 시작인가 보다. 봄을 보내기엔 아직 너무나 아쉽지만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겠다. 남양주에서 나는 드디어 올해의 여름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