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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들에게 한국의 '스몰 브랜드'를 소개하다

모든 게 처음이라, 마냥 서툴고 그저 신기했던!

by 최용경

뉴욕에 떠나기 전, 비행기 티켓 다음으로 챙겨둔 예약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탈리안 파티셰에게 배우는 티라미수 만들기 수업. 베이킹에 그다지 큰 관심도 없는데, 티라미수 수업을 등록한 이유는 단순했다. "뉴욕에서 이탈리안 셰프에게 정통 티라미수를 배운다고?" 상상만 해도 영화 <사랑의 레시피; No Reservations> 속 한 장면처럼 근사하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내가 이런 수업을 좋아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완전한 초짜로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만 찾아오는, 사고가 열리는 순간 때문이다. 새로운 테니스 기술을 배우다가 인간관계에 대해 갑자기 깨닫기도 하고, 물리학 원리 하나가 작은 브랜드 철학과 찰떡처럼 연결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만든 티라미수

돌이켜보면 이번에는 티라미수 수업뿐 아니라 '초짜 모드'로 부딪혀야 했던 모먼트들이 꽤 많았다. 애초에 이번 뉴욕행의 목적 자체가 한국의 작은 브랜드들을 현지에 '처음으로 직접' 선보이는 경험을 쌓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몇몇 브랜드의 해외 온라인 마케팅(예: 감자밭 일본 인스타그램)을 도운 적은 있었지만, 실제 해외 현장에서 바이어와 고객을 대면하는 건 처음이었다. 적어도 '스몰브랜더'라는 이름으로는.


“꼭 성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재밌는 경험과 이야기를 위해서죠.” H 대표님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크레파스로만 그림을 그리던 아이가 처음으로 물감을 손에 쥐는 순간처럼 조금은 긴장되지만 한편으론 기대됐다. 왠지 정말루(!) 더 재밌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뉴욕 프로젝트는 KOTRA 뉴욕에서 일하는 사촌 동생의 짧은 메시지로 시작됐다. "뉴욕 한류박람회라는 행사를 하는데, 스몰브랜더 클라이언트들에게 소개해보는 건 어때?" 100명 넘는 바이어들을 만날 수 있고, 대형 쇼핑몰에서 고객에게 제품을 직접 선보일 기회도 있다니. 그래서 몇몇 클라이언트에게 가볍게 참가를 권유했고, 그중 몇몇이 덜컥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한류 박람회 B2B 부스 현장

작은 브랜드들은 어떤 데뷔 무대를 밟았을까? H 대표님의 말처럼, 정말 '재밌는 이야기'가 탄생했을지. 이제부터 그 서툴고도 신기한 이야기를 짧게 기록해보려 한다. 비슷한 모험을 고민 중인 분들, 혹은 새로운 도전이 마치 계란으로 바위 깨기처럼 너무 크게 느껴지는 분들에게 아주 작은 도전의 디딤돌 같은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01. 메인 행사 활용 — 고객을 줄 세워서 '구매 전환'하기

첫 사례로 한국 전통 건축물과 예술품들을 모티브로 만드는 실버 주얼리 브랜드 '아틀리에 다린'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한류박람회가 시작되기 며칠 전, '아틀리에 다린'은 KOTRA 측으로부터 뉴요커들에게 선보일 제품 전시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좋은 기회였지만 문제가 있었다. 객단가가 200달러에 가까운 주얼리라 샘플을 나눠줄 수 없다는 점. 식품이나 뷰티 브랜드처럼 '맛보기' 전략을 쓸 수 없으니, 모객 방식이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보면 더 아름다운 아틀리에 다린 주얼리

그래서, 우리는 재빠르게 전략을 바꿨다. 구매 전환보다 더 현실적인 ‘인스타그램 팔로우 전환’을 1순위 목표를 잡고, 스티커와 키링 등을 랜덤으로 뽑을 수 있는 가챠 이벤트를 기획했다. 처음엔 "이게 과연 얼마나 통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부스 앞에 자연스럽게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이틀 만에 '아틀리에 다린' 인스타그램에는 수백 명의 미국인 팔로워가 신규로 유입되었다. 게다가, 부스로 사람들이 몰린 덕에 자연스럽게 '판매 전환'도 꽤 많이 발생했다. 우리의 러프한 가설과 기획이 뉴욕에서 통하는 것을 처음 체감해 얼떨떨했다.

엄마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면, 아이가 가챠 머신을 돌린다.



02. 메인 행사 활용 — 현장에서 '바이어' 찾기

아마도 수십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을 한류박람회에서 성과를 만든 또 하나의 브랜드 사례가 있다. 프로페셔널 슈가링 왁싱 제품을 만들어 유통하고 있는 프리미엄 남성 왁싱샵 브랜드 '왁싱랩'이다. '왁싱랩'은 이번 박람회에 부스로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핏이 잘 맞는, 이상적인 바이어와 만나는 데 성공했다.

아메리칸 드림몰 한복판에서 미팅 중인 왁싱랩 강정훈 대표

KOTRA에서 연결한 공식 미팅은 아니었고, 행사장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묻고 뛰어다닌 결과였다. 미팅이 성사된 바이어는 캐나다에서 이미 여러 개의 스킨케어 숍을 운영 중이며 왁싱 서비스 확장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피부 자극이 적은 ‘슈가링’ 왁싱은 바이어의 니즈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현재 왁싱랩은 캐나다 시장 전역에 유통 계약 체결을 진지하게 논의 중이다. 해외 영업이라는 것도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결국 부지런히 발로 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왁싱랩의 프로페셔널 슈가 페이스트




03. 직접 작은 행사 개최 — 50만 원으로 '줄 서는 행사' 만들기

메인 행사만 활용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작은 브랜드답게, 뉴욕에서 직접 작은 이벤트도 기획해 열었다. 립타투 브랜드 '얼리언스'는 '뉴욕의 신촌'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트 빌리지의 작은 서점을 약 40만 원에 3시간 대관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자주 쓰는 이벤트 플랫폼 Partiful을 활용해 이벤트 랜딩 페이지를 만들고 뉴욕에 거주하는 인플루언서들과 여러 커뮤니티에 홍보물을 뿌렸다.

행사 준비 중

그리고 마침내 행사 당일, 3시간짜리 짧은 행사에 100명이 넘는 고객이 사전 예약했고 행사 시작 1시간 30분 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거 뭐지? 좀 무서운데?" 싶을 정도였다. 행사 시간 내내 줄은 끊기지 않았고, 고객 대부분이 1시간 이상 대기했다. 얼리언스는 준비해 간 제품을 전량 소진했고, 인스타그램에는 수백 명의 신규 팔로워가 유입됐다.

이벤트 랜딩 페이지

행사 전 미리 아마존 페이지까지 만들어두어 제품을 써보고 만족한 고객들이 쉽게 재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뉴욕에서, 이 정도 비용으로 이런 규모의 고객들을 만나보는 경험을 해보다니! 다양한 인종의 글로벌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영상 콘텐츠까지 확보한 투자 대비 효율 높은 실험이었다.

어마어마게 줄을 서버렸다!



04. 직접 바이어 만나기 — 뉴욕 한복판에 '입점 계약'하기

마지막으로, 정공법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만든 사례도 있다. 싱잉볼 브랜드 '오감소' 이야기다. '오감소'는 뉴욕에 방문하기 전부터 브랜드의 결과 맞는 숍 리스트를 만들고 직접 하나하나 이메일을 보내 미팅을 잡았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오감소 싱잉볼

그 결과, 미드타운에 위치한 한 부티크숍과 정식 입점 계약을 확정 지었다. 뉴요커들이 자연스럽게 오감소의 싱잉볼을 접할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무대를 만든 셈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결국 직접 움직이는 사람이 길을 만든다는 걸 아주 깔끔하게 증명한 사례다.

오감소 축하드려욤...!!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작은 브랜드들을 소개하는 한 사람으로 뉴욕을 겪어보니 뉴욕이 왠지 새롭게 느껴졌다. 예측 가능한 선 안에서 쉽게 색을 칠할 수 있는 크레파스 대신, 삐끗하면 선을 유연하게 벗어나는 수채화 물감을 써서 오히려 더 재밌는 그림을 그린 기분이랄까.


마지막으로, 새로운 세상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기어코 흥미로운 성과를 만들어낸 작은 브랜드 대표님들 정말 최고...!


small epilogue — 이번 뉴욕 프로젝트로 깨달은 3가지 발견

1. 해외 시장도 발로 뛰면 된다.
2.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바이어 리스트업, 이메일 작성, 제안서 작성까지 전부! 몽땅!
3. 온라인 마케팅, 인플루언서 마케팅, 제안서 제작, 바이어 소통은 ‘각각’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으로 유기적으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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