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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꿈 Aug 06. 2023

8. 시민덕성의 4가지 하위 개념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비롤리까지 이어지는 시민덕성에 대한 답 찾기

이러한 시민 덕성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덕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기타 공화주의자들의 의견을 함께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공화주의자들의 내용을 해당 세계시민교육 안에서 참고해야 할 이유는 세계화의 현실 앞에 공화(共和)의 개념은 확대되어 왔는데 이에 따른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책무와 실천을 어느 정도까지 확장하고 타협해야 하는가를 그들이 먼저 고민해 왔기 때문입니다.


세계화 안에서 공화에 대한 논의가 계속 어려운 과정에 있었죠.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공동체 안의 공통된 문화적 전통 및 공유된 역사의식의 부재 때문입니다. 공유 전통은 공화주의 시민성의 구성을 위한 전제 조건인데 말이죠.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글로벌한 세계에 상응하는 세계시민성을 강화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도 이상의 초국가적인 공화주의 거버넌스와 시민성의 가능성에 관한 여러 확장된 제안은 세계시민주의와 공화주의 간의 일종의 결합과 연결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민 덕성에 대한 개념은 ‘덕’이나 ‘역량’으로 번역되는 이탈리아어 ‘virtu’, 영어 ‘virtue’는 라틴어 ‘virtus’서 유래한 것입니다. 남성을 의미하는 ‘vir’가 어원인 virtus는 고대 로마 공동체의 안전과 방어를 책임진 시민군인 성인남성의 덕성을 포괄하는 말로 용맹, 남자다움, 역량 등을 의미했습니다. 로마 초기에는 수많은 전쟁에서 싸움에 이겨야 하는 군인이자 남성의 용맹, 능력 등을 지시하는 말이었다가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고 그리스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면서 도덕적 · 윤리적 덕성까지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영웅과 군인의 덕목 외에 정치공동체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시민의식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 것입니다.


그러나 덕성의 개념에 대해 보다 먼저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그는 이상의 덕(arte)이란 남성성이 강조된 시민의 역할과 목적에 근간하는 것이 아닌, 무척이나 보편적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그리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보여주는 이성에 의해 정의되는 기준에서의 신중하고 영구적인 성향”이라고 그의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이와 같이 정의한 바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덕은 이론적인 지식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습관을 통해 몸에 익혀야 하는 품성상태(hexis)들이며, 무엇보다 그것들을 시의적절하게 적용할 줄 아는 실천적인 지혜(phronesis)이었던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덕을 교육받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덕을 실행하는 것은 시민의 행복에 필수적이고 사회적으로도 유익이 되기 때문에 그는 시민들이 덕을 학습하게 되면 동일한 형태로 국가와 다른 시민들의 행복도 증진하려는 바람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개별 시민이 스스로 최선의 삶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이웃의 시민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도와주려는 성향을 가진다면 그 국가의 시민들은 ‘최선의 삶/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라 믿었죠.


국가를 하나의 통일체로 인식한다면 개별 시민들이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들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유익한 삶의 방식을 추구함에 있어서 그들 간의 ‘마음의 일치(homonoia)’가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덕성에 대한 교육은 가능한 최선의 삶을 목적으로 하는 동등한 자들의 정치적 공동체(koinonia)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언급한 바 있죠.


물론 이러한 ‘덕성’에 대한 다른 전통 또한 존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그리스적 전통과 결을 달리하는 로마적 전통이 바로 그것인데요, 그리스적 전통은 정치 현안에 대한 적극적 토의와 심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러한 정치 참여 능력을 공화주의 시민의 덕성으로 보는 입장인 반면, 로마적 전통은 적극적 토의와 심의는 자칫 집단을 선동하는 민중주의를 유발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단지 ‘비지배를 보장받을 수 있을 정도’의 정치 참여 능력, 즉 ‘국가에 대한 견제력 수준의 덕성’을 요구합니다. 로마 전통은 민중주의를 동료 시민의 선동에 의해 ‘나의 자유가 지배당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제한적으로 수용합니다.


후자의 전통을 이어온 이 중에 대표적으로는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이론가 마키아벨리(Machiavelli)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에서 시민적 덕성은 숭무적이면서 웅장하고 금욕적인 덕성이 아니라, 상업적 공화국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세련되면서 평범하고 관용적인 덕성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세상사의 다채로움을 찬양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며 남의 방식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개인의 특정한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다양성의 가치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화주의적 시민성은 사람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민으로서 공동의 지평을 모색함을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기원하는 고전 공화주의보다는 마키아벨리와도 같이 전통적인 공화주의 노선을 벗어나 ‘비지배 자유’를 최상의 정치적 가치로 삼는 ‘신로마(neo-Roman) 공화주의’가 스키너(Skinner), 포콕(Pocock), 비롤리(Viroli), 페팃(Pettit) 등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되면서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구상을 통해 기존의 도덕적 시민교육은 이상주의 및 원칙론의 영역에서 분리되고, 다시금 현실 세계의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석학 모리치오 비롤리는 이와 같은 시민덕성에 대해 그의 책『공화주의』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현재의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개별집단의 이해에 묶여 있어 공공선을 추구할 동기를 가지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실현 불가능’하고, 오늘날의 다문화적 사회에서 시민들의 시민적 덕성이 강해지는 경우, 시민들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덜 관대해지고 자신들의 것에 대해서는 더욱 열광적으로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입니다.


모리치오 비롤리


이렇게 시민적 덕성이 충만한 사회를 만들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의 자유가 제한될 위험이 있을 현재와 같은 상황에 비롤리 또한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중 어느 것도 희생하지 않으며 양자를 견줘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묘사하는 덕성을 지닌 시민들의 모습은 자유를 만끽하는 삶에서 나오는 평안을 사랑하는 이들이며, 계속해서 그러한 평안함과 달콤함을 즐기기 위해 그들의 의무를 다하고, 법령에 복종하며, 자신들의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파괴하려는 자들에 맞서 저항하며, 어떻게 세력을 동원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이들입니다. 비롤리는 이러한 형태의 시민적 덕성이라면 전혀 불가능하거나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며, 시민 덕성은 ‘대리석과 같이 엄정한 것’이 아니라 좀 더 가볍고, 쉬우며 그래서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 또한 세계시민교육을 진행하는 실무자로서 이와 비슷하게 신로마 공화주의자들의 의견에 따라 시민 덕성을 ‘성품 안의 통합’으로 보지 않고, 보다 ‘옅은(thin)’의미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 이유는 세계시민적 실천 가능성을 확보하고, 실존하며 다각화되어 있는 다양한 국제적 · 사회적 문제의 현실적 대응과 함께 그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세계시민교육의 주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흡사 컴퓨터의 알고리즘처럼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쉬운 영역으로 ‘문제분해’를 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패턴 매칭’ 작업과도 같이 전지구적 문제를 개별 학습자의 일상으로 불러들이는 자기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이처럼 학교 현장에서 보다 본연의 세계시민교육의 고유 목적과 목표에 맞춰 커리큘럼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시되어야 할까? 무엇이 변화되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저 나름대로 시민 덕성으로의 가치 전환을 위해서는 이하의 4개의 하위 개념을 동시에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로는 실천성(Practicality)입니다. 세계시민의 기준은 인지능력보다는 실천능력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이에 세계시민교육의 핵심은 학습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며, 이러한 실천을 통해 세계시민성은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특수성(Particularity)입니다. 이상의 실천을 위해서는 모든 사건을 보편화할 수 없으며, 매일 일어나는 일상적인 문제일지라도 그 순간의 상황적 요인이 개입한 특수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에 자연스럽게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셋째로는 유익성(Profitability)입니다. 이런 이해관계의 첨예함은 상호의 이익이 충돌하는 것이며 그 이해의 과정이 바로 숙의와 토론을 통한 상호주관성 획득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단계를 통해 어느 한쪽의 희생이나 도의적 양보가 우선시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상호이익의 지점을 찾아가며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의 공존을 함께 구축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는 책임성(Responsibility)입니다. 이러한 상호이익이 오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해당 ‘공동체의 유지’라는 공동의 책임이 발생하는 것이며, 그 역할을 누군가에게 대리하거나 위임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에 속한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그 책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음 회부터는 이 4가지의 개념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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