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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싹 Aug 31. 2017

오래간만에 쓰다

메모광을 꿈꿨지만

학창 시절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국어 선생님을 참 좋아했다.

물론 중학교 국어 선생님과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은 다른 분이셨다. 두 분은 외모도 느낌이 다르셨고, 목소리도 말투도 다르셨다. 추구하시는 유머의 스타일도 다르신 분이었다. 

사람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상태로 스치며 다니다가도 알고 보면 참 닮아 있음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두 분은 정말로 매우 달랐다. 

한 분은 도라에몽 퉁퉁이의 3분의 2 정도 체형. 그러니까 뚱뚱하지는 않지만 단단한 체형에 통통한 얼굴을 가지신 분이었고, 한 분은 안경을 쓰고 계셨고 아담한 체형에, 만화가들이 주로 무난한 성격의 남자 선생님을 그릴 때 사용하는 이미지라고 해야 할까. 닮은 곳이라고는 까무잡잡한 피부색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분이라 하더라도 나에게 언어적 흥미를 불어넣어 주신 분인 것은 같았다.

그 당시에는 전혀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때부터 여러 분야의 글을 좋아했던 덕분에 지금의 일을 하는 데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글이란 재미있고 언어란 놀랍도록 광활한 분야이다.

시, 고전문학, 비문학, 근현대문학, 문법 할 것 없이 다 재미있어했는데, 수필이라는 종류의 글을 처음으로 배운 것도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서였다.

어감도 참 좋았다. 수필. 발음하는 느낌도 좋았고, 어째서인지 수필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방망이 깎는 노인>도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나고,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작품은 <메모광>이다.

공책이나 수첩도 필요치 않고, 그저 무언가 잔뜩 쓰여 있는 종이여도 빈 공간만 있으면 개의치 않고 메모를 해야 직성이 풀렸던 주인공. 

이하윤 작가의 메모광은 보는 순간, 무언가에 물들기를 좋아했던 내 머리를 쿵 쳤다.

좋은 버릇인지 나쁜 버릇인지 헷갈리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참 물이 잘 드는 사람이다. 뭘 잘 몰라도, 내가 호감을 갖는 이가 좋다고 하면 그때부터 '그것'에 매료되었다. 순서가 이상했다. 보통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점점 알게 되며 좋아지는 것인데 '그것'이 뭔지 알지 못해도 일단 느낌이 좋다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응, 나 이거 좋아하잖아."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었다. 그러고 나서 '그것'에 대해 조사하고 내가 좋아할법한 면을 찾아내며 만족했었다. 

그 덕에 관심 분야가 많아진 것을 보면 나쁘지는 않으나. 지금에서야 회상하며 적어 내려가 보니 허언증의 한 종류 같기도 하고 애매한 성향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메모광>은 원래도 글 쓰거나 무언가 두서없이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충격을 준 수필이었다.



그래. 쓰자. 무언가 써 놓으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 동안은 그 불꽃이 좀처럼 식지 않아서 정말 순간순간 떠오르는 말도 안 되는 생각들, 구상들, 심지어 꿈까지도 써두었다. 메모광 주인공과 달랐던 것은 나는 눈에 띄는, 무언가 써 내려갈 수 있는 공간이라면 뭐든 좋았던 사람은 아니고 굳이 종류별 수첩을 샀다는 것이다. 그래서 꿈 노트도 만들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는 메모광까지는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언가 기록하는 것, 무언가 써서 나중에 그걸 구경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뒷심이 부족했고, 성실하지 못했다. 

결국 그 당시 사두었던 수첩은 지금도 방 한편에 한두 페이지 이외에 새하얗게 보존되어 있는 채로 쌓여있다.


하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핸드폰 메모장이나 음성 녹음 어플에 무언가 기록해 둘 때가 있다. 물론, 뒷심이 부족한 것은 여전하다. 개인적으로 아직 나는 매우 젊다고 생각하나, 그럼에도 뇌는 본래 탄생의 순간부터 더디게 늙음을 향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보니, 망각이 점점 빨라진다.

지인들이, 주로 나보다 연장자인 지인들이 말한다. "너 벌써부터 그렇게 깜박해서 어떡하니?"라고 말이다.


게다가 방금 나를 스쳐간 생각은 제법 쓸모 있었다고, 곱씹어 볼 가치가 있는 생각 조각이었다고 딱 느끼려는 순간. 그 감탄도 채 마치지 못했는데 생각이 흔적 없이 날아가 버릴 때면 메모의 가치가 다시금 나에게 박히는 것이다. 사실 오늘도 일곱 개는 잊은 것 같다.


내가 쏟아내는 생각들 틈에 다른 아주 미세하게 더 중요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나의 기억은, 나의 공상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붙들고 싶어서 애가 탄다.


애초에 세상에 꺼내어지지 못한 것이니 이 생각들의 가치를 알아줄 사람은, 이 생각이 소멸해 버렸음에 애통해할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뒷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은 바로 이 공간이기도 하다. 서너 번 떨어지고도 다시 나의 포트폴리오를 보강하여 지원하기를 여러 번, 드디어 브런치 작가로 입성을 했던 게 벌써 언제 일인지 아련하다.


이 곳에 나의 많은 생각을 분류하여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잘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모처럼 오래간만에 브런치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다. 심지어 콜라보에 지원을 하고 있다.모처럼 쓰는 장문의 글이니 만큼 매우 못마땅하다. '쓰다'라는 키워드에 대해 분명, 이 콜라보를 알게 된 몇 주 전부터 종종 고민했다. 그 순간 무언가 번뜩이는 게 스쳤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따 기억하면 된다는 학습능력 없는 바보 같은 생각에 놓친 것이 몇 가지 일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쓰다'라는 주제에 대해 오히려 부담 없이, 정말 말마따나 경수필을 적어 내려 가는 마음으로 쓰게 되었는데 결과가 어떤들 어떠랴. 내가, 뒷심 없는 내가, 오래간만에 다시 시작을 하지 않았나. 

무언가 자주 써 내려가겠다. 나의 순간순간을 가능한, 그것의 가치를 유일하게 알고 있을 내가 가능한, 메모해두었다가 이 공간에 펼쳐놓으리라.


그래서 사실 매우 기분이 좋다. 문득문득 글이 맥없어졌다고 느껴지고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은 것은 꽤 긴 시간 미뤄두고 묵혀둔 공간에 무언가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스타에 쓰려다가 인스타는 엔터 기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 옮겨둔 글이 하나 있긴 하지만, 그건 사실 복사 붙여넣기였을 뿐이니, 오롯이 이 공간을 떠올리며 쓰는 글이 차곡차곡 쌓이도록 해야겠다. 미루다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이렇게 생존할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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