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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채움 Apr 02. 2020

착하게 살았는데 해고라니요

직장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얌전히 잘 살아온 인생이었다. 누구에게도 해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초중고+대학생활 내내 성실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2020년 초, 나의 눈 앞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해고 위기였다. 


코로나의 습격

코로나19가 내 인생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기 시작한 건 2020년 2월 중순부터다. 코로나19로 대규모 여행사의 무급휴가, 희망퇴직 소식이 들려오던 2월 초에도 정작 내가 몸담고 있는 여행회사에선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그래, 우리는 그래도 외국계니까, 아직 해외시장은 한국보다 희망적이니 그런대로 잘 넘어가나 보다’하고 넘겨짚었다. 


상황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기 시작한 건 2월 말이었다. 회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선택 안을 제시했다. 

1)당장 경제적 어려움이 없다면 3개월(3~5월) 간 무급휴가를 가라

2)경제적 어려움이 있다면 위로금과 퇴직금을 받고 합의 퇴직을 해라


그렇게 작지만 그 나름대로 소중했던 나의 월급은 날아갔다. 


억울했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을 보면 억울한 감정조차 사치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장 회사에서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은 팀원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해고'라는 단어 앞에서

즉각적인 해고도 아니었고 최소한의 선택권이 있긴 했지만, 회사가 내 앞에서 ‘해고’라는 단어를 꺼냈다는 그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무엇을 하던 평균 이상은 해온 나에게, 무엇을 대충하거나, 잘 못하는 사람들을 되려 신기해하는 나에게 ‘해고’라는 단어는 평생 생각해본 적이 없는 단어었다. 그만큼 그 단어는 내 인생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해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누구나 그렇듯이 ‘회사가 어떻게 나에게..’었다. 그리고 바로 꼬리를 물며 든 생각은 내가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것이었다. 정규직의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커리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늘 커리어패스를 생각하고 이직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매일 이직 시기를 재고 때로는 프리랜서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회사의 보호막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현실이 보였다. 나는 뭣도 없는 몽상가일 뿐이었다.


‘커리어를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에 취해 있었던 것일까. 계획은 창대했으나 막상 당장의 수입을 벌어들일 만한 능력은 없었다. 내가 바로 요새 유행한다는 ‘아가리 이직러’였던 것인지, 바로 돌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도 없었고, 부업을 할 만한 손재주도 없었다. 팀원들과 거취를 상의하는 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블로그라도 해 둘걸 그랬어요’였다. 정규직의 안전망(?)에 갇혀 해둔 것이 없었던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달았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다행히 나는 정기적으로 내는 월세도 없고, 먹여 살려야 할 가족도 없다. 그저 내 한 몸 건사하면 되는 삶에서 몇 달치 월급은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내게 자식이 있었다면, 혹은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그저 아찔하다. 책임감이 커지는 나이가 되기 전에 어서 빨리 내실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것이 ‘해고 위기’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바로 이직을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든, 부업으로 나만의 수익구조를 만들어내든, 확실한 건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는 거다. 


처음엔 ‘해고’라는 단어에 어이가 가출했지만, 이젠 어린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에 감사하다. 

직장인이라도 끊임없이 내실을 키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으니, 그리고 이는 평생 나를 위협하며 나를 성장시킬 경험이 될 것이니! 


모쪼록 코로나로 많은 것을 잃고 상처 받았을 이들에게 앞으로는 좋은 일들만 있기를 (특히 여행업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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