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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채움 Dec 01. 2023

5년차 마케터가 B2B로 도망친 까닭

스타트업 이직 일기. 

1. 두 번의 이직 

 첫 번째 이직은 망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였다. 나는 여행 회사 마케터였으니까. 일도, 동료도 사랑했지만 역병이 가져다준 가혹한 현실은 주니어 마케터에게 버거웠다. 뭘 해도 안된다는 패배의식에 절여진 후, 도저히 안되겠다며 도망쳐 나왔다.


 두 번째 회사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배울 것이 많은 사수, 케미 맞는 팀원들, 많은 업무를 경험해볼 수 있는 환경, 으쌰으쌰 함께 일했던 타팀 동료들, 적당한 월급,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가 다니고 있는 회사라는 사실까지. 평생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던 회사는... 나를 내보냈다. 실은 정확히 말하면 모두를 내보내고 사라졌다. (회사가 망했다는 뜻) 


 

2. 

 금방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경력이 지금보다 없을 때도 이직은 잘만 해왔고, 무엇보다 '서비스 종료로 인한 권고 사직'이라니. 이 얼마나 정당한 이직 사유인가! 하지만 이직까지 꼬박 5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까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휴식 없이 거의 매일을 책상 앞에서 정성을 쏟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짧진 않은 시간이다. 실업급여 덕에 배는 곯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직 기간이 길어진 이유는... 아무 곳이나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이직을 경험하는 동안 회사의 성장성 못지 않게 업계의 중요성도 크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경제 불황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는 상황에서 해당 조건을 만족하는 B2C 기업을 찾기가 어려웠다. 자연스레 B2B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 마디에 정리하기엔 흐름이 어색하다. B2C 마케터가 B2B로 전향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케팅'이라는 공통의 단어만 쓰고 있을 뿐 B2B와 B2C의 마케팅은 업무 범위가 크게 다르다. B2C가 전통적으로 말하는, 즉 광고를 돌리고 브랜드 캠페인을 기획하는 '마케팅'에 가깝다면 B2B 마케팅은 그보단 세일즈, 즉 영업에 가깝다. 때문에 B2B는 마케터의 무덤이라고 불릴 때도 있었다. 영업팀을 서포트하는 '영업지원' 업무가 되거나 브로셔를 만드는 등의 디자인 업무를 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정말 세일즈맨이 되거나.... 


3.

 그럼에도 B2B 마케팅에 도전한 이유는 예전보다 B2B 마케터의 업무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다양한 비대면 툴의 활용도가 높아지며 B2B 마케팅에서도 B2C와 마찬가지로 콘텐츠 마케터, 브랜드 마케터 등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면서 슬그머니 용기가 생겼다. 나도 B2B 마케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나는 스타트업에서 경력을 쌓으며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웠는데 B2B 마케터의 채용 공고는 B2C에 비해 좀 더 광범위한 업무를 포괄하고 있다는 면에서 용기를 얻기 충분했다.

 실은 이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건 친구의 조언이다. 작년 초,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을 하다 한국에 들어온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 AI 솔루션을 판매하는 세일즈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회사 얘기를 해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일본은 지금 전부 AI로 난리야. 거의 모든 기업이 AI를 도입하는 걸 당연시여겨. 그에 비해 한국은 아직 AI를 소수의 기업에서만 쓰고 있는데 곧 일본처럼 될거야. 

 그러면서 나에게 B2B 마케팅을 추천해줬다. 친구의 말처럼 한국에서도 많은 기업이 빠르게 AI 기술을 택하고 있다. AI, 빅데이터, 자동화 등의 솔루션이 주목받고 있는 만큼, 나에게도 많은 길이 열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 현직자의 조언이 있었다. 면접을 보기 전, 당근마켓에서 B2B 마케팅을 하고 계신 현직자 분을 만났는데 목표달성에 대한 욕구가 높다면 B2B 마케팅이 잘 맞을 거라고 조언을 주셨다. B2C 마케팅에 비해 비교적 성과 측정이 용이하고, 가시성이 높기 때문인데 내가 딱 그런 사람이라 어떤 느낌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유를 세 개씩이나 적었지만 실제 과정은 보다 얼렁뚱땅똥땅똥땅이였다. (붙은 기업들 중 유일하게 재택을 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었기 때문...B2C 기업에서도 재택할 수 있는 곳에 붙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다행인 건, 새로 걷게 된 B2B 마케터의 길이 꽤나 마음에 든다는 사실이다. 이 길을 선택하고자 하는 마케터들이 있다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직무이고, 또 아직 한국에선 성숙도가 낮은 시장이기 때문에 B2C의 경력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좀 더 자세한 얘기는... 미래의 나..를 기다려 주세요... 기회가 된다면 글을 써보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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