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화양연화
#시험도 나를 버리고 사회도 나를 버렸구나
답안 작성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시험을 잘 치르지 못 했는데도 이상하게 슬프지는 않았다.
짐을 챙긴 사람들이 하나둘 고사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한참을 우두커니 교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교실 앞문에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빠였다.
아빠는 3년 내내 날 고사장에 데려다 주었고,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날 기다렸다. 첫 시험을 치른 해에, 시험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교실에 남아 한참을 울었다. 그때 내 모습을 본 아빠는 이번에도 내가 우느라 늦게 나오는 줄 알았다며, 날 데리러 왔다.
그제서야 슬펐다. 아빠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슬펐다. 하지만 대놓고 울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으로 울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를 지켜보는 가족에게도 못 할 짓이고, 심신이 지친 나는 휴식이 필요했다. 주변 모두가 만류했지만 나는 그렇게 수 년간 준비했던 수험 생활을 마무리했다.
막상 책에만 둘러 쌓여 있다가 세상으로 나오려니 그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내게는 교원자격증 하나만 덜렁 있었다. (아, 하나 있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자격증...ㅋ)
대외활동 경험도 전무했다. 나는 대학교 다니는 내내 아르바이트나 하고 학점 관리만 하고 책만 읽었다. 여행도 제대로 떠난 적이 없었다. 남자친구가 있어서 일주일 놀러간 것 정도... 내가 하고 싶어서 4학년 때 9개월간 했던 교육봉사가 처음이자 마지막 대외 활동이었다. 그 흔한 운전면허증도 없었다.
핑계일 수 있지만 임용고사는 그렇게 나를 사회의 변두리로 내몰았고, 대학까지 나왔음에도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고급인력으로 만들었다.
[시험을 준비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본격적인 시험 준비 직전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기를 바라요. 경험을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눈에 들어올 수 있어요. 그리고 무언가 도전하려 할 때 주저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저처럼 시험 하나만 생각하다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학벌도 경력도 없이 열정만 가득해서는
어떤 회사에 지원해야 할지 막막했다.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기간제 채용 공고만 찾아 지원했다.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10곳 정도 넣었을 때, 두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다. 두 학교 모두 수업시연까지 갔다.
한 곳은 기독교 대안학교였다. 수업시연 직전에 서류합격자들을 모두 모아 티타임을 가졌다. 이사장이라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내게 학벌이 구리다며, 자기네는 최소 이화여자대학교 출신만 쓴다고 했다. 불합격을 직감했다.
나머지 한 곳은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였다. 이사장이신 80대 할머니 앞에서 10분간 시연을 했다. 임용고사를 준비할 때 항상 2차 수업시연 준비도 했었기에, 시연은 나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불합격했다.
학교 사이트에 최종합격 공지가 떴다. 최종합격한 역사 선생님은 나를 포함해서 최종 시연을 했던 3인 중 그 누구도 아닌 새로운 인물이었다.
기간제 교사 지원을 더 했다. 얼마나 지원한지 파악조차 안 될 때 즘, 이미 다른 곳에서 기간제 교사만 하고 있는 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본인은 100곳이 넘는 곳에 지원했었다고, 더 많은 이력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 더군다나 기간제 교사 경력이 없으면 시간강사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때부터 사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사기업에 취직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기업의 이름을 보자니 내 직무가 불분명했고, 직무를 보자니 지원하는 기업이 성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벌어야 했다. 그래야 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곳이나 지원했다.
3개월 정도 정말 ‘아무 곳’에서 열과 성을 다해 근무했다. 그 아무 곳에서 일하는 사람조차 모두 번듯한 대학을 나온 능력자들이었다. 사회는 독서실 밖보다 더 냉정했다.
[저는 ‘교육’ 이라는 분야라면 어디든 지원을 했었답니다. 제가 무지해서 그럴 수 있지만, 교육도 정말 분야가 다양한 거 아시죠? 학습자의 연령에 따라서 유아, 초등, 중고등, 성인교육으로 나뉘기도 하고 학습 분야에 따라서 내신, 수능, 공무원, 공기업 대비 교육 등 다양하게 나뉩니다. 이것도 정말 rough하게 분류한 것이죠.
지원 분야에 대해서 꼼꼼히 공부하고 지원해 보세요. 수험 기간만큼 사회생활 기간도 날릴 수 있답니다. 일은 일대로 했으나 경력란에 한 줄도 쓰지 못 하는 대참사가...]
#긍정적인 승화로 탈바꿈하기
임용고사에서 탈락했다는 내 패배감을 업무로 승화시키고 싶었다.
갈증이 더해지던 찰나에, 드디어 내 전공을 살리는 일을 시작했다. 가르치는 일도 할 수 있었지만, 학생을 마주하기에 내 마음이 불편했다. 교육출판 일은 혼자 있기를 즐기고 전공 분야를 살려서 일하고자 하는 내게 딱이었다. 꼼꼼함과 섬세함이 부족했는데, 그것은 일을 하면서 습득해야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갈증이 생겼다. 수험에서 실패한 것을 어떻게든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계속 내면에 자리했다.
시험이 내 인생의 다가 아님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마음 한 켠의 공허함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티칭 기술이 늘어갈테니, 나는 반대로 지적으로 풍요로워지자’고 다짐했다. 이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7년의 시간을 책을 벗삼으며 달라진 점은 차분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객관화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승화의 힘을 믿는다.
[몰랐는데, 저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더라고요. 인내심은 많지만 끈기는 없고요. 시키는 일은 잘 하지만 주도적으로 하는 걸 더 즐겨요. 책을 읽고 사색을 하다 보니 34살이 된 지금에서야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네요.
시험에서 실패했다는 패배감은 상당히 오래 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반드시 긍정적으로 승화하셔야 합니다. 당시의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 시절은 내게 화양연화였음을 받아들이셔야 해요.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느끼실 거예요. 그렇게 나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며 목표만을 위해 정진하는 때가 다시 오지 않거든요. 저는 승화의 수단으로 책을 선택했지만 여행, 영화, 소모임, 업무, 또 다른 배움 등 긍정적으로 승화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세요.]
쓰고 나니 별 거 없어 보이네요. ^^; 하지만 조금은 도움이 되실 거라 믿어요. 틀린 길에서 되돌아 오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뒤늦게 새출발을 했지만, 저는 지금의 제 일을 사랑하고 제 자신이 자랑스럽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해요.
수험생활의 구렁텅이에서 나오시려는 분, 슬럼프를 겪으시는 분,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분들! 힘내세요.
지금 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랍니다. 여러분 인생의 자양분이 될 거예요. 어떻게든요!
그러니 믿으세요! 그리고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