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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지 Mar 11. 2023

지진 직후의 네팔로 무작정 떠났다

그렇게 사르르 녹는 멘탈과 비실거리는 육체를 떠안게 되었다 

도대체 어쩌자고 네팔에서 살게 되었나


아무래도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6년 전으로 되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일은 지진 직후의 네팔에서 시작 되었거든요. 당시 저는 혼자 배낭 여행을 하고 있었고,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5일 만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참이었습니다. 2달간의 여행을 통틀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가장 상태가 안 좋았는데, 열차 안에서 지독한 감기에 걸려 소독약 냄새에 찌든 시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5일을 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네팔에 큰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때 즈음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지루한 여행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심이 뒤엉켰던 것 같습니다. 네팔 지진 긴급구호를 위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메일을 본 그 순간부터 여행을 끝내고 네팔행 비행기를 끊을 때까지 수없이 많은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일단 네팔에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도 차마 부모님에게 사실을 말하기 어려워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척 연기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미리 여행 사진을 찍어두고 일정 간격을 두고 사진을 보냈죠.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제가 네팔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시곤 등산 중에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을 떨어뜨렸다고 하더군요. 아마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지진 직후의 네팔에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 하셨을 겁니다. 



당연하지 않은 상실에게


그렇게 도착한 네팔에는 많은 상실이 있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산산이 무너져 내린 흔적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상실은 비단 물질적인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초가웅 마을에는 17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잔해에 깔려 목숨을 잃은 막 9살이 된 남자아이도 있었습니다. 6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끔 얼굴도 모를 그 아이 생각이 납니다. 아마 그 아이는 살아남은 다른 마을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저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산산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마을 공터에서 다같이 뛰어놀수도 있었을 겁니다. 학교가 끝나면 우르르 몰려가 공을 차며 수다를 떨었을지도 모릅니다. 지진이 마을을 뒤흔든 그 해, 임신 중 이었던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이듬해 건강한 여자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올해로 6살이 된 아이를 볼 때 마다 그 기적에 마음이 벅차오르다가도 15살 오빠가 되었어야 할 아이를 생각하면 별안간 멈추어 서 조용히 상실의 무게를 곱씹게 되어버립니다. 감히 제가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 아이가 마땅히 누렸어야 할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걸 도무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사랑에 형태가 있다면


사실 지금에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제 눈을 잘 마주치지도 못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바뀌어버린 환경 속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낯선 외국인은 아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저만치 가라앉은 마을의 분위기 속에서 근심이 가득한 어른들의 한숨 어린 눈빛을 아이들은 이미 눈치채버린걸지도 모릅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우리의 어색한 관계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이 하나둘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걸기 시작한 겁니다. 지난 일주일간의 어색함이 어색할 정도로 급속도로 가까워진 우리는 무너진 벽돌 잔해를 넘어 뛰어다니며 숨바꼭질을 하거나 네팔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꼭 쉬고 오도카니 서서 한 때 아이들의 보금자리 였던 잔해들을 불도저가 밀어버리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 위에는 양철판을 엮어 만든 가설 주택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사랑에 형태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살짝 시들어버린 들꽃으로 만든 꽃다발, 알알이 흩어지는 달콤 시큼한 나무 열매, 표면이 반들거리는 유리 구슬일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아이들이 자그마한 손맛으로 비벼 내미는 찝찌름한 라면땅이나 구멍 가게에서 5루피에 파는 커피맛 사탕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마냥 서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손에 쥐어 모퉁이가 반들반들하게 녹아내린 초콜릿을 건네는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종종 손떼를 타 표면이 반들반들해진 유리 구슬을 쥐어주거나, 작은 꽃 모형이 달린 분홍색 머리핀을 꽂아주며 해사한 미소를 짓곤 합니다. 그 반짝이는 눈 속에서 따스하게 넘실거리는 사랑을 마주합니다. 제가 이런 과분한 것을 받아도 되는 걸까요. 이런 소중한 마음을 받아도 괜찮은 걸까요. 



6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참 많이 자랐습니다. 그 사이에 새롭게 태어나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코 찔찔흘리면서 바짓가랑이에 매달려다니던 아이들은 이제 제법 의젓해졌습니다. 저는 아이들 코 닦아주는 걸 참 좋아하는데요.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이 키도 한 뼘이나 훌쩍 크고 더이상 닦아줄 콧물도 없어 못내 섭섭한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느덧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제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소중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너무나 가파르고 높아만 보입니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의 월 수입은 20만원이 채 안됩니다. 마을 남자아이들의 많은 수가 부모를 따라 카트만두 시내로 내려가 버스 티켓 검표원이나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가 되거나 일당을 받고 농사일을 합니다. 여자아이들의 상당 수는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결혼을 합니다. 이 중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 학교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아이는 손에 꼽습니다. 저에게 당연하게 주어졌던 기회들이 이 아이들에게도 당연한 것이었으면 좋았을텐데요. 지진으로 무너진 잔해가 아니라 둘러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제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부조리를 이 아이들은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네팔에 직장을 가지고 눌러 앉는 건 제 인생 계획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어린 날에는 그저 막연히 기자나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전 세계를 누비며 활약하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마주한 해사한 미소에 저 또한 그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싶어졌습니다. 



다행히도 다년간의 끈질긴 삽질과 노력 끝에 네팔에 위치한 유엔 기구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6년 동안 약 10차례에 걸쳐 한국과 네팔을 왕복하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올해 3월부터 네팔에 살게 된 것이죠. 사실 이 일이 제 적성에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아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직업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후회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아이들과 만나지 못했다면 땅을 기는 것 같은 무력감 속에서 매일매일을 억척같이 살아갈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그럴 깜량도 안되면서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서 아둥바둥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아마 한 때 막역했던 사람들과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은채 갈라설 필요도 없었겠죠. 그러나 그 아이들과 만나지 않았다면, 제가 받은 상냥함도 따뜻함도 전부 몰랐을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며 지난달 26일부터 네팔에 락다운이 시작된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습니다. 지진에 이어 닥친 재난에 아직도 정신이 얼얼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괜찮게 지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엔이 제공하는 의료 크리닉과 보험을 비롯한 사회적 보호 장치를 겹겹이 두른 채 안전하게 집에서 근무하는 제가 경험하는 코로나와 네팔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코로나는 분명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이 글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신 여러분들에게 평안한 하루가 함께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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