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백수부부가 만난 또 다른 부부세계여행자
제2화. 둘이 아닌 넷이 되어 떠난 남아공 렌트카 여행
어느 여행지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유독 더 '안전'이 신경 쓰이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이곳 아프리카다.
여행자인 우리가 잠재적으로 느끼는 위협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바로 강도나 소매치기와 같은 사람에 의한 위협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말라리아, 황열병 같은 질병에 의한 위협이다. 두 가지 모두 '생명'과 직결될 수 있어서 아프리카는 분명 다른 여행지보다 몇 배 더 '안전'을 신경 써야 하는 여행지였다.
도착 첫 날,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조언은 다음과 같았다.
* 해가 진 이후에는 거리를 돌아다니지 말 것.
* 인적이 드물거나 어두워 보이는 길은 낮에도 피할 것.
* 시내에서도 되도록 걷지 말고 우버(모바일로 부르는 택시)를 이용할 것.
* 거리에서는 휴대폰을 쓰지 말 것.
* 가방은 앞으로 멜 것
위에 안전수칙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남아공을 여행할 때 조심해야 하는 일들은 대부분 거리 위에서 발생하는 것들이었다. 남아공을 즐겁게 여행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관광지까지 잘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다. 도로에서의 위험한 일들을 피하면서 시내에서부터 거리가 꽤나 먼 관광지들을 '안전하고 즐겁게' 여행하는 방법, 바로 차를 렌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동행을 구한다면 금상첨화였다.
석 달 전 런던에서도 만날 뻔했던(일정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지만) 우리와 같은 부부세계여행자인 곰부부 님들이 우리와 같은 시기에 남아공을 자유여행한 뒤 트럭킹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부부세계여행자로서 관심사가 비슷하고, 머무는 일정도 비슷해서 우리는 별 망설임 없이 곰부부커플과 이틀 동안 차를 렌트해서 남아공을 같이 여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남아공 도착 둘째 날 우리는 나미비아 대사관 앞에서 곰부부 커플을 만났다. 여행하며 수염을 기른 젊은 동양 남자를 잘 만난 적이 없었기에 나보다 더 수염이 덥수룩한 큰곰님이 반가웠다. 우리는 그렇게 둘이 아닌 넷이 되어 렌트카 업체로 향했다.
이틀 동안 곰부부 커플과 함께 차를 타고 희망봉에 가서 아프리카 최남단에 서보기도 하고, 볼더스 비치에 가서 펭귄도 봤다. 남아공의 부촌 지역인 캠스 베이와 후트 베이도 드라이브했고, 스텔렌보스에 있는 와이너리도 방문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우리 숙소에서 같이 저녁을 해 먹고 와인을 밤늦게까지 마셨다.
둘이서만 여행하다 오랜만에 단체(?)가 되어 떠난 여행은 더 안전했고, 더 즐거웠다. 4인승 차를 가득 채운 사람 수만큼 우리는 더 안전했고, 둘이서만 공감하던 이야기를 넷이 함께 공감하니 즐거웠다. 음식점에 가서도 넷이 함께 먹으니 더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고, 우리 부부만 차 안에 있었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두려웠을 차 렌트도 넷이 함께하니 든든했다. 심지어 난생처음 해보는 오른쪽 운전석도 큰곰님과 나눠서 하니 수월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붙어있던 탓일까. 차를 반납하는 날까지도 저녁까지 같이 여행했던 곰부부 커플이 트럭킹을 먼저 출발한 날 우리 부부는 헛헛한 마음에 온종일 숙소에서 칩거하며 지냈다. 그게 넷이었다가 둘이 된 허전함 때문인지, 2박 3일 동안 너무 빡세게 놀아 피곤해진 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