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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여행,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Ep3. 여행의 행복은 맛있은 음식에 있다

제3화.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하는 남아공 푸드파이팅 (글쓴이 백수부부 아내)


나는 라디오와 팟캐스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즌1 유럽 자동차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팟캐스트라는 것을 듣게 됐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스트리밍은 안 되고, 다운 받아온 음악으로는 금방 싫증이 나서 결국 팟캐스트까지 듣게 된 것이다. 무료한 차 안에서의 시간에 듣는 팟캐스트는 참 재미있었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은 여기자 세 명이 진행하는 ‘듣똑라(듣다보면 똑똑해지는 라디오)’였다. 한국을 떠난 지 열 달이 지나니 뉴스는커녕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문외한이었는데, 지적 갈증을 채워줬을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야를 확장해준 백수 부부의 친구였다. 복잡한 이슈를 똑 부러지게 정리해주는 기자들의 음성을 들으며 늘 남편에게 말했다. 기자는 정말 똑똑하고 멋진 것 같다고. 


그런 나에게 기자 친구들이 생겼다. 세계여행 중인 부부와는 SNS 친구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운이 좋게도 여행 시기가 겹치면 만나 친구가 된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살 때는 메밀꽃부부가, 부다페스트와 이스탄불에서 만난 슬로우커플이 그랬다. 이번에는 남아공에 들어와 트럭킹도 이틀 차이로 하는 곰부부님이 그 주인공이었다. 선망하는 직업군을 직접 만난 건 처음이었다. 멋진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내내 신났다. 


두 분 모두 여의도에서 사회생활을 했던 공통점으로 우리 넷은 금방 가까워졌다. 요즘 같은 여름에 더욱 생각나는 여의도 진주집 콩국수로 대동단결한 우리는 꿈에 그리던 생굴을 먹고, 초밥까지 먹기에 이르렀다. 작년 겨울 김장철, SNS 피드를 도배한 생굴과 김장김치의 사진을 보며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던 세계여행자에게 남아공 생굴은 단비 같았다. 비록 초고추장은 없지만 아쉬운 대로 타바스코(핫소스)와 레몬즙을 뿌려 먹는 굴은 일품이었다. 한 판을 추가로 시켜서 굴 껍데기에 있는 물까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는 해산물 덕후들을 만나니 또 신이 났다. 이때만큼은 진주집 국수가 부럽지 않았다.


남아프리카의 푸른 바다를 보며 먹는 점심 풍경은 사치스러워서 우리가 백수임을 잠시 잊게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생굴을 남아공에서 먹게될 줄이야! 초고추장이 사무치게 그리웠지만 정말 싱싱하고 맛있었다.


다음 날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초밥 반값 할인’ 프로모션을 본 우리 넷은 또 한 번 먹부림을 시작했다. 비록 광어나 우럭 같은 흰 생선은 없어도 연어, 참치가 들어간 남아공 스시는 해산물에 대한 갈증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무려 네 번의 추가 주문을 하고도 인당 만 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먹을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장기 여행자에게 최고의 미덕은 ‘가성비’인데, 이를 만족시키는 식당을 찾은 기쁨에 우리 넷은 또 한 번 신났다.


초밥 반값할인 덕분에 부담없이 네 번의 추가 주문을 하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잠시나마 또 백수임을 잊었던 순간.


곰부부와 함께 하는 마지막 날, 렌트카를 반납하고 토요일에만 열리는 마켓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한국 아주머니가 하는 푸드트럭을 발견했다. 전날 얘기하며 군침을 흘린 잡채뿐만 아니라 김밥, 닭강정에 김치까지 판매하시는 천사셨다. 김치는 먹다 남아서 포장을 했더니 다시 새것처럼 리필까지 해주신 따뜻한 마음에 눈물이 날 뻔했다. 생굴, 초밥에 한식까지 정말 여한이 없다면서 마지막 코스인 한인마트로 향했다. 아무래도 트럭킹을 하는 20일 동안 라면 생각이 날 것 같기 때문이었다.


현지에 사는 백인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나온 토요마켓(The old biscuit mill)
우리는 한식 코너를 발견하자마자 직행했다. 우리말고도 다른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먹는 모습에 굉장히 뿌듯했다.


한인마트에 들어가니 주인 내외분이 드실 점심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우리가 1년 이상 여행 중이라는 걸 들으시자 인심 좋은 부산 출신 사장님은 갓 무친 콩나물과 어제 담근 겉절이 김치를 한 통 선물해주셨다. 딸 생각이 난다면서, 우리 딸도 이렇게 선물을 받길 바란다며 아낌없이 베풀어주셨다. 우리 엄마들이 어디선가 베푼 선행을 이렇게 받게 되는 건가.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베인 콩나물을 먹으며 또 한 번 베풀며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인마트 사장님 덕분에 돈 주고도 못 사 먹을, 젓갈이 팍팍 들어간 맛 난 김치를 라면과 함께 먹으며 우리의 푸드파이팅은 마무리됐다.


남아공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예상외로 한식을 구하기 어려웠던 터키여행 후 온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게 될 줄 몰랐다. 여행은 우연의 연속이며, 연속된 우연이 모여 행복이 된다. 좋은 친구와 맛있는 음식, 이 두 가지만으로 우리는 충분하게 행복할 수 있다.


한인마트 사장님의 콩나물까지! 먹을 복 터진 날이었다. 한국에서 밑반찬으로 나오던 콩나물을 남긴 날들이 후회스러워졌다. 이 맛있는 걸 왜 남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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