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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lee Aug 23. 2017

42. 장산범

최고의 공포는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공포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차든, 눈이 보이지 않아 앞을 구분할 수 없든. 그런 상황에서 들리는 소리는 우리를 무섭게 만든다.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데 익숙한 우리에게 소리만으로 사물을 판단하기에는 무엇보다 침착하고 냉정한 마음이 아닌, 두려움이 앞선다.  요즘은 없는 것 같지만, 내가 중학교 시절 학교 캠프를 가던 시절에는 꼭 한가지 코스가 있다.  한조의 친구들이 서로의 허리를 잡고,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제일 앞의 조교를 따라 이동하는 미션.  그 미션을 하는 도중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장애물을 만나고, 절벽을 만난다.  떨어질것 같아 잔뜩 움켜쥔 앞 친구의 허리는 내가 살아야 겠다는 생존 본능의 표현이다. 눈을 가리니 앞을 볼 수 없어 오직 소리만으로 지금의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그 코스 중 나타나는 절벽 - 사실 그 절벽은 냇물이 흐르는 조그만 오솔길에 지나지 않지만 - 에서는 최대의 공포심을 자아낸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제일 앞의 조교는 '야 꼭잡아 떨어지면 죽는거야!'라면 겁을 더한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해 수건을 풀고 보면 그저 어디서나 만나는, 떨어져도 전혀 털끝하나 그저 개울가 옆 오솔길이었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다는 헛웃음.  비로소 우리는 보지 못하고, 귀로만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편견을 가지게 하는지 알게된다.  그 소리는 그저 개울가 물 흐르는 소리이지만,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이용해 겁을 주는 것.  그동안 보았던 것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어떤 친구는 거짓말이야 하지만, 막상 그친구의 발이 살짝 미끄러졌을때 마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거기에 한술 더뜨는 군중심리까지.  고정관념, 보이는 자의 거짓말, 군중심리. 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조교들이 준비한 어마무시한 미션은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오로지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판단했던 우리. 소리의 고정관념이 우리를 공포로 이끈다.  

익숙한 소리에 대한 공포

하나도 보이지 않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는 내 아이의 소리다. 내 어머니의 소리다. 내 남편의 소리다.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바로 소리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리는 장막뒤의 사물을 맞추듯이 자연스럽게 정답을 외치게 한다.  그만큼 살아오면서 들었던 소리이기에 소리의 존재감을 짝찟기 밑줄긋기 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어버린다.  정답이다.  마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향효과에 실제 말이 달리는 것처럼, 파도가 치는 것처럼 공감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익숙한 소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정답이 아니라면.  그게 바로 장산범의 공포이다.  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나에게 친근한, 내가 믿는 소리를 낼줄 안다면 얼마나 큰 무기이겠는가?  나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이끄는 그 소리.  그 소리의 주인공은 어떤일이 있어도 나를 보호 할 수 있는 존재인데, 신뢰하는 존재인데... 그 소리가 나에게 적이 될 수 있다니.  마치 새소리를 내서 새가 오면 '빵'하고 사냥을 하는 사냥꾼의 못된 기지와 같을 것이다.  

마음의 소리의 공포

우리는 마음이 불안할 때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나를 이끄는 소리, 나에게 용기를 주는 소리, 나를 유혹하는 소리.  불안한 마음일때는 마음과 이성의 벽이 얇아져 벽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들린다.  어떤때는 그 소리를 용기를 얻지만, 어떤때는 유혹에 흔들려 나약한 선택을 하게 된다.  어떤이는 무서운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야기 한다.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고.  그 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신임을 알지 못한채.  최근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을 겪고,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로 인해 나도 현재 마음의 벽이 얇아져 있다.  거기에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차곡 차곡 위로 위로 쌓여져 살짝 들추기만 해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이 놈들은 평온한 상태에서는 볼래와 볼수 없는 것들이다.  너무 깊은 심연에 갇혀있는 것들이라.  그런데 마음의 소리가 자꾸 나를 유혹한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다.  저사람 잘못이다, 그러니 저 사람을 탓해라' 라고.  그러면 나는 거기에 유혹되는 상대방을 탓한다.  물론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소리를 듣는다. '지금 이 문제의 핵심은 상대방이 아니다.  바로 나라고. 너의 불안한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 헛소리 일뿐이라고.' 우리는 항상 이런 상반된 이야기를 듣고 갈등하게 된다.  바로 불안한 상태에서. 한번 생각해 보면 찾을수 있고,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꼭 부정적인 헛소리는 나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찾아와 나의 판단을 흐리고,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이끈다.  만약 한번더 정확하게 냉정하게 판단할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알것이다.  후자가 현재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라는 것을.  타인을 내가 바꿀수는 없지만, 나 스스로 나를 바꾸는 것은 그보다 쉬운일임을.  그러니 불안한 마음의 소리가 들릴때 스스로 한번더 신중하게 판단해 보길 바란다.

희연이 남편의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고 여자아이를 선택한 것은 그녀만의 자식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 동정심, 책임감일 것이다.  우리자신을 너무나 잘 아는 소리. 그리고 장산범.  그가 우리를 - 우리의 약점, 유혹, 감정 - 잘 아는 것은 바로 그가 우리의 마음에서 들리는 부정적이며, 나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마음의 소리일 것이다.  바로 내 마음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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