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min lee Dec 18. 2018

46. 원더풀 고스트 & 미스백

오지랖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사람과 사람이 사는 이야기

사람과 시람이 만들어가는 이세상.  서로 부딪히며 많은 이야기, 사건, 이슈를 만들어 가는 이세상. 어쩌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파도가 부딪혀 만들어내는 또하나의 파도, 바람과 바람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바람, 땅과 땅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또하나의 땅의 움직임과 같은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들의 행동이 우연처럼 부딪혀 일어나는 사건들,  누군가의 원인 제공으로 기인되는 이슈, 결과를 의도하여 나타나는 결과들.  이러한 부딪힘과 이슈가 다시 부딪혀 일어나는 더 커진, 혹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때로는 작은 우연이, 사건이, 이야기가 커다란 감당못할 일들로 번져가듯이, 마치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만들어 낸다는 나비효과처럼, 이또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사건들이다.

원더풀 고스트 다음 이미지
오지랖이 넓다

그런 이야기속에 들어가려는 우리의 행동.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 그저 스쳐지나가도 되는 그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다. 그저 그사람일이라고, 내가 할일은 아니라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하겠지라고, 때로는 귀찮아, 혹은 내일만 신경쓰자고 하며 그냥 지나칠 일들에 나는 또 신경이 쓰이고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겐 말한다. 왠 오지랖이냐고. 옳은 표현은 너는 무슨 오지랖이 그렇게 넓냐? 이다.  오지랖이란, 우리말로서 윗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즉 오지랖이 넓다는것은 옷의 앞자락이 넓다는 뜻으로서 웃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안에 있는 다른 옷을 감싸버릴 수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무슨일이나 말이든간에 앞장서서 간섭하고 참견하고 다니는 것을 비유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말한단다. 오지랖이 넓다라는 말은 사용해도, 오지랖이 좁다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단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지랖이 넓다는 소리는 긍정적인 칭찬이 아닌 당신을 타박하는 부정적 꾸지람이다.  다시 표현하자면 “쓸데 없는 참견하지마라, 나할일이나 잘해라”로 생각하면 될것이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이런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식에는 “남의 일에 참견하면 안된다, 내할일이나 잘하고 살자”라는 것이 무의식중에 자리잡고 있는줄도 모르겠다.  마치 얼마되지않던 근래의 국가적 산아 정책 구호 처럼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국가적 창피한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부모님들의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의식처럼 말이다.  

원더풀 고스트 다음 이미지

물론 이말은 어른들이 우리들을 걱정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남의일에 참견하다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었다. 핍박받는 신분제도에도, 전쟁과 침략에도  우리는 용감하게 참견하다 죽는일이 있었으니 당연히 우리의 보호자들인 어른들은 우리를 살려야 했다.  그것은 근래에도 현재에도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지랖을 떨지 말아야 한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야하니, 그래서 살아야하니 말이다.

미스백 다음 이미지
오지랖 = 관심?

걸맞지않는 오지랖 경찰 태진, 가족의 아픔을 안고 무관심하게 자신을 삶을 살아가는 미스백, 백상아. 그들의 오지랖은 자신의 삶을 피곤하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고하고, 죽음에 까지 이루게 한다. 그래서 장수는 오지랖을 떨지 않는다. 그 오지랖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했던 경험이 있으니.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만, 삶만 살뿐이다. 그럴뿐인데 누군가는 나를 욕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태진이 갖는 오지랖은 세상을 바꾸고, 미스백의 오지랖은 한 아이를 구하고, 관객들의 먹먹한 분노를 깨뜨렸다. 그리고 장수의 오지랖은 사람을 구하고 사랑을 전하고 딸을 살렸다. 그저그런 스토리의 이야기들, 영화들. 우리는 재미없다 뻔하다. 오지랖을 떨었지만 나는 이 두 영화의 오지랖이 우리의 무관심한 사회를 보여주고 느끼게하는 묵직한 돌을 가슴에 맞은듯하다.  우리가 알던 오지랖은 그저 참견이나 간섭이아닌 관심이다.  우리의 무관심이 누군가에게는 희생으로 다가온다. 죽음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영원히 기억할 대구지하철, 세월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는 어쩌면 우연일지도, 필연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누군가의 오지랖만 있었더라면, 관심만 있었더라면 더 많은 삶이 현재 우리와 함께 지속되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알고 있어야한다. 그게 나에게도 일어날수 있을 경우의 수는 단지 수학적 확률이 아님을.  인생에서 수학적 확률은 통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100%가 될수있음을, 그리고 관심만이 그 100%를 50%, 30%, 0%로 낮출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하인리히 법칙의 진정한 의미인것을.....

미스백 다음 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 45. 너의 결혼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