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자는척하며 재우기

결혼 14년 차 육아 2년 차

아이는 이제 걸음이 빨라졌다. 두 손을 꼭 잡고 걷더니 이제는 한 손만 잡고 걷고, 익숙한 집이나 집 주변 놀이터에서는 손을 잡으려 해도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걷는다. 걸으며 달려오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바탕은 사라지고 인물만 남게 된다. 아이는 일부러 코를 찡긋하고 나와 아내를 바라본다. 우리가 얼굴을 보면 웃음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 주름에 대한 거울 반사일 것이다. 신발에 얼룩과 먼지가 성장의 흔적이고 옷에 흘린 귤 즙이나 딸기 조각에 비벼 빨기와 특수 세제를 쓴 빨래에도 더 먹일 수 있을까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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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무, 압하, 음, 압 등을 송두리째 '엄마' '아빠'라고 오인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옹아리가 시작되었다. 옹아리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동반한다. 아쉽게도 우리말 주변부에 있으나 통용되는 문법과 음절에 맞지는 않지만 아이는 끝없이 시도한다. 이제는 '밥 먹자'에 묘한 웃음을 짓고 '놀러 가자'에 눈이 동그랗게 된다. 말하기보다 앞선 듣기의 과정을 통해 아이의 구강구조와 이 언어가 맞는지를 평가하지 못한 채 아이는 우리말을 익힌다.


아장아장 걸음과 옹아리의 신장이 있더라고 신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잠'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현재 아이는 통상 저녁 7~8시 사이에 잠이 들고, 새벽 6시 전후에 일어난다. 중간에 한두 번 깨어서 거실에 자고 있는 우리에게 엉금엉금 기어 온다. 걷기가 익숙했는지 어제는 서서 다가와서 기뻤다. 아이를 더 이상 억지로 잠들게 하지 않으려 요즘에 재울 때는 부부가 자는 척을 한다. 자발적 수면이 되어야 아이의 수면이 좋다는 아내의 사전학습 덕분이다. 그래서 저녁 이유식을 먹이고 양치질을 하고 오늘 하루도 즐거웠는지를 말하며 이제는 외워버린 책의 문구를 억양을 달리하며 아내가 아이에게 전한다. 이제 이불 대용의 구름 조끼를 입히고 기저귀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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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의 아이가 쓰던 의자에서 예의 있게 행동하는 아이 -


아이는 자지 않으려 불 꺼지고 커튼이 내려진 거실에서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 정육면체의 에듀볼을 다시금 켜서 '안녕 반가워 친구들. 아빠랑 놀자, 이름이 뭐니?, ABC 알파벳송, 나란히 나란히' 등을 무작위로 재생한다. 그러다가 친구의 아이가 쓰던 작은 자동차를 방바닥에서 연신 움직인다. 책을 가져다가 나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두서너 번 읽다가 아이의 시선이 다른 곳에 가있을 때 부부는 자리에 눕는다. 자는 척을 한다. 아이는 그래도 몇 번을 반복한다. 아이는 슬슬 졸려한다. 나에게 기대거나 아내에게 안긴다. 자는 척을 하다가 때론 아이를 껴안는다. 아이가 졸음을 이기려 일어난다. 다시금 자는 척을 한다. 이렇게 반복하고 아이가 손가락으로 내 콧구멍을 후벼 팔 때 소스라치게 아파서 일어난 것을 제외하고 계속 자는 척을 한다. 아이는 누워서 때론 엎드려서 잠이 든다. 아이가 잠이 충분히 들면 아이를 옮겨 재우고 우리는 매트리스 위에 이불을 깐다.


오늘도 속이기 절차를 반복하려 했다. 유난히 노래 틀기 장난감 만지기를 홀로 하다가 잠이 들지 않는다. 여간해서 자는척하다가 중간에 안으려 해도 자지러지게 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는 자는 척을 하며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지칠 때까지 놀다가 스르륵 잠이 드는 것인가, 자는척하는 부모를 원망하며 칠흑 같은 어둠으로 빨려 드는 것인가? 왜 아이는 잠을 싫어할까, 잠의 끝은 삶의 끝이라 여기는 것인가? 언제부터 아이는 잠 이후에 눈을 뜨면 성장이 있고 피곤이 풀림을 알 수 있을까? 피곤은 언제부터 느끼는 감각일까? 등등을 눈 감고 자는척하며 생각한다. 그러다 위기의식을 느끼고 잠들지 않고 우는 아이를 재우려 아기띠를 오랜만에 동원했다. 충분히 아이가 숨소리의 간격이 일정해질 때까지 안고 재웠다. 그런데 아기띠를 풀자마자 자지러지게 운다. 두 번을 반복했는데도 또 운다. 다시 돌아온 원더윅스 인가를 고민하는 찰나, 역시 아이도 생명체였다.


똥을 쌌다. 아이의 이성적 발달과 합리적 판단과 사유의 증대에 대한 내 머릿속의 생각들은 지금 시간 똥이 되었다. 내 머릿속 잡언이 아이의 배변을 촉진한 것인가? 내 생각을 담은 숨이 아기띠로 연결되어있는 아이의 숨 속에 들어가 이제 꺼져가는 아이의 눈꺼풀의 중력도 견디며 똥을 싸게 한 것인가? 미안한 반, 난감한 반인 상황에서 아이는 다시금 자지러지게 울었고, 부부는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질퍽한 똥을 변기에 버렸다. 아이는 자다가 봉창보다 더한 샤워 물을 맞으며 졸린 얼굴에 홍조까지 더해졌다. 생명체임을 그득히 알려주면서도 이성이라는 개념 너머 인간으로서 속일 수 없는 몸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는 이내 평안해지고 다시금 반복적인 껴안기를 거쳐 평소보다 좀 늦은 시간에 잠에 들었다. 모르는 것 앞에서 고개를 숙이던 김수영의 시가 다시 생각한다. 육아 앞에서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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