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삼 Mar 12. 2018

피해자는 가해자, 가해자는 피해자

세상의 아이러니

결국 요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느냐, 그것이 전부인 세상 같아 보이는 순간들이 근래 들어 참 많다.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무직자와 신생 업계의 개척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요즘 한국은 미투 운동으로 뜨겁다. 

이 땅에 사는 여자라면 나조차 미투 하라면 못할 것도 없다. 여자로 이 한국이라는 땅에서 사는 것이 그렇다, 정도의 차이일 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해자가 누구보다 처절하게 피해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였던 조민기는 사과 대신 죽음으로 답을 했다. 그 외 많은 배우들은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는 대신 국민들에게 '실망시켜 죄송'하다는 이미지 메이킹성 발언을 한다거나, '불찰'이었다, 혹은 '무지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어떤 것이 불찰이었을까? 그런 카톡을 보낸 것? 그 여자들의 몸을 만진 것? 그것이, 아차, 실수? 혹은 무지했다면 어떤 무지를 말하는 것일까? 만지면 안 된다,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는 그 말에 대한 무지? 그럼 당신은 어떤 생각으로 그 말을 했을까? 수치심을 주려던 의도가 아니라면, 자신의 성적 충족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그 '무지'를 말하는 건가? 이 판국에도 누구 하나 정말 죄송하다 무릎 꿇고 사죄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이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죄인들은 모두 횡령을 했을 때와 유사한 방식과 표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가 재수 없게 걸린 것뿐이다. 그리고 오히려 목소리 높이는 여성들을 마녀사냥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오래전 지인들 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증인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피해자에게는 당연히 돕겠다고 했는데, 가해자가 어떻게 내게 연락을 할 수가 있을까 더 의아했다. 그가 사과를 하고자 연락을 한 줄 알고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오히려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이 일로 인해 자신의 경제적 손실이 상당하다며,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자신이 실수 좀 했기로서니, 아는 사람들끼리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며. 그때 나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모를 보았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조차 피해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까지 모두 피해자의 몫이니 생업이 바쁘거나 돈이 없다면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릴 수도 없는 구조. 

내 경우도 싹이 석연찮은 상사를 피해 퇴사를 한 것은 내 쪽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내가 그것을 입증할 자료를 만들기 전까지는 무고죄에 휘말려 내가 도리어 큰 손실을 보게 된다는 변호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당해본 자만이 알겠지만 지속적으로 당한 사람이 큰 맘을 먹고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이상, 혹은 그 정도가 아주 심하지 않은 이상 '성추행 입증자료'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자들이 일상에서 수없이 당하는 그 폭력적 발언들은 넋 놓고 있는 사이 벌어지는 사고 같은 것이니까.


그리고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피해자의 몫이다. 내가 뭔가 빌미를 줬던 걸까? 내가 너무 가혹했나? 내가 먼저 잘못된 행동을 했던 걸까? 수없이 곱씹는 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며칠 전, 동생과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한참 언쟁을 하던 끝에 나는 동생이 먼저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내가 너무 강하게 꼬집었던 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동생은 사과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내 멋대로 화내고 내 멋대로 사과하면 그만이냐고 적반하장이었다.


세상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대체 어떤 스탠스를 지녀야 하는 걸까. 무엇을 하건 그저 당당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 

작가의 이전글 프리랜서와 백수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