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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삼 Feb 03. 2018

프리랜서와 백수 사이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새해를 맞아 한 독서모임에 가입을 했다. 글을 쓰는 직업을 정말 여러 해 해오고 있지만, 책 읽는 일은 내게 강제성이 없을 때 일어나지 않는 행위 중 하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비싼 가입비까지 지불하며 그 모임에 가입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첫 번째 모임에 참석을 했다. 이름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만 나눌 뿐, 서로의 나이도 공개하지 않은 채 열댓 명의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좀 고민을 했다. 나는 프리랜서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어느 걸 얘기해야 할까, 혹은 나와 같은 삶의 형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여서다. 저는 간호사입니다, 선생님입니다, 하는 식으로는 간결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긴 설명은 좀 구차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최대한 간결한 설명을 찾는 사이 나의 차례가 왔다. 

[음, 저는 얼마 전 퇴사를 하고 제 일을 시작했습니다. 글도 쓰고, 번역도 하면서 여전히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몇 가지 추가 질문을 받아 간단히 어떠한 언어를 번역하고, 어떠한 글을 쓰는지, 또 전에는 어떠한 일을 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끝으로 본격적으로 책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비싼 가입비와 독후감을 제출해야만 참석이 가능하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지만, 생각보다 깊이 있는 대화가 오고 가지는 않았다. 모임마다 있는 리더가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말씀해보실까요, 하면 마치 제 이름은 김삼삼입니다 자기소개를 했듯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두어 문장쯤 얘기를 한다. 길게 얘기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발언에 추임새를 넣는 일조차 좀 눈치가 보이는 분위기였다. 세대가 좀 달라졌다고는 하나 (모임에서 내가 거의 최고령인 것으로 짐작이 된다) 여전히 사람들은 열린 토론에는 쭈뼛쭈뼛하는 것이 그냥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겸양과 겸손의 또 다른 형태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끼리 특별히 연대감이 형성되거나 하는 성격의 모임은 아니었다.


모임이 끝난 후 모임 리더는 멤버들의 이름, 그리고 자기소개의 키워드 몇 개를 정리하여 리스트를 공유했다. 다음 모임에 서로를 좀 더 잘 기억할 수 있기 위함이다. 나 역시 사람들의 이름과 특징들이 다소 헷갈리던 차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링크를 받자마자 열어보았다. 그리고 나의 모호한 자기소개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궁금해 나의 이름을 가장 먼저 찾아보았다. 그리고 가나다순도 아닌 리스트의 거의 끝단에 적힌 내 이름 옆의 키워드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키워드는 다름 아닌 '지금 무직'이었다. 무직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지만, 사실과는 다르며, 다른 이들의 '글 쓰는 사람' 혹은 '콘텐츠 만들기'라고 직업이 적힌 프리랜서들에 비해 다분히 부정적일 뿐 아니라 악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묻지 않았고, 며칠간 계속 언짢음을 품은 채 고민을 했다. 따지는 것도, 혹은 그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한다는 자체가 구차하게 여겨져서였다. 그러던 오늘, 나는 결국 그 리스트에서 나에 관한 설명을 삭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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