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이러니
결국 요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느냐, 그것이 전부인 세상 같아 보이는 순간들이 근래 들어 참 많다.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무직자와 신생 업계의 개척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요즘 한국은 미투 운동으로 뜨겁다.
이 땅에 사는 여자라면 나조차 미투 하라면 못할 것도 없다. 여자로 이 한국이라는 땅에서 사는 것이 그렇다, 정도의 차이일 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해자가 누구보다 처절하게 피해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였던 조민기는 사과 대신 죽음으로 답을 했다. 그 외 많은 배우들은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는 대신 국민들에게 '실망시켜 죄송'하다는 이미지 메이킹성 발언을 한다거나, '불찰'이었다, 혹은 '무지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어떤 것이 불찰이었을까? 그런 카톡을 보낸 것? 그 여자들의 몸을 만진 것? 그것이, 아차, 실수? 혹은 무지했다면 어떤 무지를 말하는 것일까? 만지면 안 된다,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는 그 말에 대한 무지? 그럼 당신은 어떤 생각으로 그 말을 했을까? 수치심을 주려던 의도가 아니라면, 자신의 성적 충족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그 '무지'를 말하는 건가? 이 판국에도 누구 하나 정말 죄송하다 무릎 꿇고 사죄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이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죄인들은 모두 횡령을 했을 때와 유사한 방식과 표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가 재수 없게 걸린 것뿐이다. 그리고 오히려 목소리 높이는 여성들을 마녀사냥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오래전 지인들 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증인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피해자에게는 당연히 돕겠다고 했는데, 가해자가 어떻게 내게 연락을 할 수가 있을까 더 의아했다. 그가 사과를 하고자 연락을 한 줄 알고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오히려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이 일로 인해 자신의 경제적 손실이 상당하다며,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자신이 실수 좀 했기로서니, 아는 사람들끼리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며. 그때 나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모를 보았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조차 피해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까지 모두 피해자의 몫이니 생업이 바쁘거나 돈이 없다면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릴 수도 없는 구조.
내 경우도 싹이 석연찮은 상사를 피해 퇴사를 한 것은 내 쪽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내가 그것을 입증할 자료를 만들기 전까지는 무고죄에 휘말려 내가 도리어 큰 손실을 보게 된다는 변호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당해본 자만이 알겠지만 지속적으로 당한 사람이 큰 맘을 먹고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이상, 혹은 그 정도가 아주 심하지 않은 이상 '성추행 입증자료'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자들이 일상에서 수없이 당하는 그 폭력적 발언들은 넋 놓고 있는 사이 벌어지는 사고 같은 것이니까.
그리고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피해자의 몫이다. 내가 뭔가 빌미를 줬던 걸까? 내가 너무 가혹했나? 내가 먼저 잘못된 행동을 했던 걸까? 수없이 곱씹는 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며칠 전, 동생과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한참 언쟁을 하던 끝에 나는 동생이 먼저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내가 너무 강하게 꼬집었던 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동생은 사과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내 멋대로 화내고 내 멋대로 사과하면 그만이냐고 적반하장이었다.
세상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대체 어떤 스탠스를 지녀야 하는 걸까. 무엇을 하건 그저 당당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