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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뱅커 Jul 07. 2024

영화 <퍼펙트 데이즈>

도쿄 천사의 시(時)

우리들의 이야기

가끔 결과에 대한 평가와 책임감이 필요 없는 단순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이 영화 <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슨, 2024) 속 공공화장실 청소노동자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처럼 말이다. 물론 직업선택의 자유는 개인의 사적 결심으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단순하던가. 첫 문장의 허세를 덜어내고 솔직하게 다시 적는다면 ‘일의 무게와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지만, 생계를 위해 그 중력을 견디어 내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제76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 <퍼텍트 데이즈>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삶의 충만함이나 행복을 느끼는 소중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나의… 아니, 자신의 영역에서 묵묵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도쿄 천사의 시(時)

영화는 히라야마의 소소하고 반복되는 일상의 시(時)를 따라간다. 새벽 골목을 쓸어내는 빗자루 소리는 마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을 깨우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기분 좋은 아침을 맞게 한다. 밤새 목말랐을 화분에 젖줄을 내려주고, 잠시 하늘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자판기 캔커피 한 모금과 승합차에 올라타서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도쿄 도심의 스카이트리를 보면서 인사하듯 짓는 눈웃음이 백미러를 통해 보인다. 보이지 않는 변기 아래 부분까지 깨끗하게 닦는 그의 노동은 성실을 넘어 경건하기까지 하다. 점심은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하늘과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올려다보고, 그 풍경을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담아 온다. 퇴근 후에는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단골 식당에서 레몬소주 한잔과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윌리엄 포크너>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다시 같은 날이 반복된다.

<점심 시간 하늘과 나뭇잎 사이 햇살을 찍는 히라야마와 조카>

영화는 그럴싸한 대사도 없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많은 부분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히라야마와 가족의 과거, 화장실 종이 게임(상대가 점심시간 공원 옆 의자에 앉은 여자로 추측), 공원 노숙인의 정체, 술집 여사장과의 관계 말이다. 영화는 외(外) 화면을 넘어 커다란 여백을 두고, 스크린 밖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면서 관객의 예술적 욕구를 자극한다. 관객은 저마다의 상상과 해석으로 또 다른 예술을 창조한다.


이 심심하고 조용한 영화를 보고 있으면 화장실 같던 내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감사한 마음인지, 미안한 마음인지, 보고 싶은 마음인지 모를 오만 감정에 눈이 촉촉해진다.


히라야마의 조용한 존재감, 일에 대한 헌신과 삶에 대한 태도, 이웃과 도시(스카이트리)를 향한 친근한 미소,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는 일상의 시점(時點)만이 존재하고, 이는 일상에서 발견되는 경건과 위엄의 사유와 함께 그를 이 도시의 천사로 느껴지게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도쿄 천사의 시(時)>라고 기억하고 싶다. 히라야마는 가난한 청소 노동자가 아닌 충분히 가져서 필요한 게 없는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히라야마의 친근한 미소>

영화는 반복되는 그의 일상도 같은 순간은 한번뿐이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같아 보이지만 모든 사소한 것들도 매번 달라진다. 매 순간 달라지는 나뭇가지와 햇살의 움직임, 엄마를 찾아준 아기의 손인사, 갑작스럽게 찾아온 조카와의 시간, 단골 식당 주인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와 건네는 소주 한잔, 화장실 메모로 주고받는 게임 같은 작은 변화들이 히라야마를 미소 짓게 한다. 우리 삶에서 행복은 대단한 사건이나 성취가 아닌, 소소하고 평화롭게 우연히 발생되는 시(時)라고 말이다.


찬란한 인생은 중력을 견디는 것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위로받는 느낌과 잔잔한 감동을 받는 다면 묵묵하게 일상을 살아온 당신에게 주는 스스로의 위로와 그것을 인정해 주는 극장 안의 동료 관객과의 연대 때문 일 것이다. 빔 벤더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의 규칙적인 리듬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든 사소한 것들이 똑같지 않으며 매번 달라진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그렇다. 우린 매일 같은 패턴의 일상 위에 놓여 있지만, 내일은 처음 듣는 음악에 감동을 받거나, 지하철에서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길에 넘어진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수도 있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면 우리 일상은 어제와 다르고 오늘의 소소한 행복을 느낀 것이다.


이 영화의 압권은 엔딩이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야쿠쇼 코지’의 표정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 연기를 볼 때는 영화의 시간에 올라타 내 그림자와 그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듯한 감정의 경험을 하게 된다.

<야쿠쇼 코지의 표정연기>

힘든 시기다. 하루하루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삶의 중력을 견디어 내는 내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영화가 좋다. 마음이 정화된 여운이 길게 남는 오늘은 퍼펙트 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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