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의 희망을 그리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가족 드라마' 라는 소개를 처음 들었을 때, 놀라움과 궁금증이 동시에 밀려왔다. 주로 공포와 스릴러 장르로 유명한 구로사와 감독이 가족 드라마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포의 손'이었다. '도쿄소나타'는 경제 불황 속에서 흔들리는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단면을 냉철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도쿄의 평범한 한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빠는 오랜 시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당하고, 재취업의 장벽과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만, 그로 인해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낀다. 큰 아들은 현실을 부정하며 세계 평화라는 명분으로 미군에 자원 입대하고, 작은 아들은 급식비를 빼돌려 몰래 피아노를 배운다. 각기 다른 비밀을 간직한 채, 가족 구성원들은 일상 속에서 두려움과 갈등을 겪는다.
영화는 아빠가 가족 몰래 청소일을 하는 쇼핑몰에서 위험에 처한 엄마와 마주치지만, 도망치고 마는 장면을 통해 그들의 갈등을 극대화한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뒤로한 채 더 깊은 위험 속으로 들어가며, 파국을 향해가는 그들의 절망적인 외침은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떠보면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대사는 그들이 다시 한번 삶의 굴곡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암시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작은 아들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는 명불허전이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나부끼는 평화로운 장면 속에서, 작은 아들의 연주에 위로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는 아빠의 손길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 순간은 현실의 공포를 잠시나마 가라앉혀주는 듯하다. 바로 이 장면이 '도쿄소나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도쿄소나타'는 삶의 공포스러움과 허무주의적 현실을 솔직하게 바라보며, 그 안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작은 행복과 안식을 보여준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가족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감정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도쿄소나타'는 더욱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