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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

도쿄 천사의 시(時)

by 무비뱅커

우리들의 이야기

영화 <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2024) 속 공중화장실 청소노동자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일상은 매일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삶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는 그의 성실함이 배어 있다. 사람이 살아가며 느끼는 무게와 고충은 각자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하루하루가 지닌 의미와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히라야마의 이야기는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일상의 반복 속에 숨겨진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쿄 천사의 시(時)

영화는 히라야마의 소소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마치 시(詩)의 운율처럼 조용하고도 섬세하게 따라간다. 새벽의 골목길을 쓸어내는 빗자루 소리는 마치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잠든 도시를 깨우고, 고요한 아침이 그의 곁을 찾아온다. 밤새 목이 말랐을 화분에 물을 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에는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여유가 담겨 있다. 자판기에서 뽑은 캔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채 승합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올드팝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를 연다. 도쿄의 스카이트리를 바라보며 백미러 너머로 슬며시 눈웃음 짓는 그의 평범한 일상은 시의 운율처럼 잔잔하게 반복된다.

영화는 화려한 대사도, 영화 전반을 휘감는 특별한 사건도 없다. 많은 부분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으며, 히라야마의 가족사나 화장실 종이 게임, 공원에서 마주치는 여인, 노숙인의 사연, 술집 여사장과의 관계 등 모두가 암시 속에 머문다. 영화는 스크린 밖으로 커다란 여백을 남기며, 관객이 그 공간을 각자의 상상과 해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도록 유도한다.


영화 속 히라야마의 세계는 일에 대한 헌신,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이웃과 도시를 향한 따뜻한 미소, 그리고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는 그의 일상적 시선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일상 속에서 경건함과 위엄을 발견하게 만들며, 히라야마를 마치 이 도시의 '천사'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도쿄 천사의 시(時)>로 기억하고 싶다. 어쩌면 히라야마는 가난한 청소노동자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가져서 더는 필요 없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반복되는 그의 일상도 같은 순간은 한 번 뿐이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같아 보이지만 모든 사소한 것들도 매번 달라진다. 매 순간 달라지는 나뭇가지와 햇살의 움직임,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준 아기의 손 인사, 갑작스럽게 찾아온 조카와의 충만한 시간, 단골 식당 주인의 인사와 함께 건네는 소주 한잔, 화장실 메모로 주고받는 게임 같은 작은 변화들이 히라야마를 미소 짓게 한다. 우리 삶에서 행복은 대단한 사건이나 성취가 아닌, 우연히 발생하는 소소하고 평화로운 시간이라고 말이다.


찬란한 인생은 중력을 견디는 것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이 영화를 통해 잔잔한 위로와 감동을 느꼈다면, 그것은 아마도 묵묵히 일상을 살아온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그런 삶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의 연대감 때문일 것이다. 빔 벤더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 규칙적인 리듬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든 사소한 것들이 똑같지 않으며 매번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매일 같은 패턴 속에 있지만, 내일은 오늘과 다른 감동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처음 듣는 음악에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고, 낯선 사람과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예기치 않은 순간이 쌓여갈 때, 우리의 일상은 새로운 온기로 채워진다.

이 영화는 하루하루 묵묵히 삶의 중력을 견디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내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다. 일상의 잔잔한 리듬의 여운이 길게 남는 오늘은 퍼펙트 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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