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박홍준, 2024)은 조선소 인사팀 막내 강준희 대리(장성범)가 구조조정 업무를 맡으며 노동 현장의 부조리를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박홍준 감독은 실제 조선소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노동 문제를 세밀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회사의 지시와 개인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노동자들의 무력한 현실을 그려내며, 관객에게 '해야 할 일'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이 질문은 관객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 스크린 너머 현실에 맞닿아 있는 자신의 '해야 할 일'을 곱씹게 만든다.
흔히 노동 문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대체로 노동자들의 편에 서는 서사를 택하지만, <해야 할 일>은 조금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영화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측의 관점도 함께 조명한다. 영화를 거칠게 양분하면 노동자보다 오히려 정리해고를 맡은 인사팀을 주축으로 사측의 관점에 좀 더 기울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영화 속 인물들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대상의 문제다. 사측을 대변하는 인사팀 역시 입장은 다르지만, 일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버티는 노동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정리해고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회사 경영에 책임이 있는 상위 계급과 직접적으로 맞서기보다는, 같은 계급 내에서 갈등한다. 즉 경영 문제로 발생한 회사의 위기에 회사를 지탱해 온 노동자들끼리 서로의 멱살을 잡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달리 말해, 영화는 가해자 대 피해자의 이분법적 선악 대립구조나, 사건을 단순히 개연성이나 인과관계로 설명하려는 쉬운 마침표를 거부하고 복잡한 현실을 담아낸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책임 있는 상위 계층이 아닌, 스스로 하층과 최하층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는 것인가. 이는 회사가 설계한 정리해고 원칙과 기준이 실제로는 노동자들 간의 갈등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구조조정의 악역을 상위 계층이 아닌, 하위 계층에게 떠넘기면서 하층(인사팀)과 최하층(노동자)이 서로 대립하도록 만든다.
이 과정에서 상위 계층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며, 노동자들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구조에 내몰린다. 투명해야 할 정리해고 과정은 경영진에 의해 왜곡되며, 강대리는 결국 절친한 선배 둘 중 한 명의 이름을 해고 명단에 올려야만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타인의 생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 곧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
영화는 이처럼 노동자들 간의 연대를 파괴하고, 갈등을 유도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한다. 강대리와 인사팀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저항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시스템의 일부로 남아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결국, 영화 속 인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회사가 정한 자리를 지키거나, 극 중 회사를 떠나는 장부장이나 손대리처럼 시스템에 굴복하는 것뿐이다. 이 시스템은 ‘해야 할 일’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에게 구조적 무력감을 심어주며, 그들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냉소적인 분위기는 한겨울 차가운 조선소 풍경과 금속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담은 인서트 장면을 통해 더욱 차갑게 전달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영화의 결말까지 이어지며, 정리해고가 취소되었음에도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에둘러 표현한다. 이런 영화의 무기력한 상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부조리와 맞물리며 더욱 무거운 무력감을 던져준다.
예를 들어 영화는 중간중간 국정농단 당시의 촛불혁명 이미지를 교차시키며, 한 회사 차원의 갈등을 사회적 문제와 연결 짓는다. 강대리 입장에서 보면, 조선소의 부당한 해고 방침에는 순응하지만, 사회적 부조리 개선이라는 흐름에는 거리를 두며 고뇌한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무거운 논의 속에서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영화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조선소 회장과 책임 있는 자들은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의 책임 회피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관객의 시선을 그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집중시키며 은유적으로 묻는다. 또한, 사회적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도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는 강대리의 부끄러움이 관객의 마음에 닿을 때쯤, 비로소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곱씹는다.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현실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을 서사를 이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