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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크홀릭 Jan 26. 2017

덮어놓고 김영란법 탓

부정청탁금지법

참여정부 시절 무엇이 잘못되고 맘에 안들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원인의 분석 과정은 녹록치 않다. 기껏 원인이라 찾아내어 조치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도 많다. 문제의 핵심을 파 들어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들인 공에 비해 확실히 찾아냈는지 자신 없다. 이럴 때 우매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살피기보다는 타인의 말과 생각을 가져다 제 것인 양 쓴다. 머리 아프지 않고 참 쉬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간 때문이야.”라는 CM송으로 유명한 간장약 광고를 볼 때마다 잘 먹힐 광고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최근 경기불황의 원인을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제 시행된 지 100일여 밖에 되지 않은 법이 대한민국 경제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이 사람들이 진정 김영란법이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고 생각한다면, 현재 탄핵으로 인해 직무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김영란법에 의한 경기악화 걱정 발언은 혜안(?)이 되어 버린다. 

경제와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근원적인 문제해결에 골몰하지 않는 우중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이런 모순된 언사와 생각을 탓하기 어렵겠지만 안타깝게도 발언자들은 황교안 국무총리, 유일호 경제부총리,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등이다.

서로 다른 처지와 배경 속에서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인사들이 김영란법 때문에 경기가 악화되고 서민의 삶이 나빠졌으니 개정해야 한다는 말을 공교롭게도 동시에 쏟아냈다.


이쯤 되면 김영란법 개정은 경기악화를 단번에 끊어낼 것 같은 전가의 보도가 되었다. 

일부 언론들은 국민들에게 ‘거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꿋꿋하게 김영란법에 의한 서민경제의 침체를 보도한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경기침체의 원인은 소비악화 이다.

소비악화는 김영란법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영란법을 개정하면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조잡한 논리 비약으로 인해, 이런 잘못된 분석으로 인해, 만약 김영란법 개정이 이루어진 후에도 경기호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 책임을 질까 궁금하다. 


구체적으로 김영란법에 의한 피해 사례가 제시되는 것들은 한우 판매 식당의 폐업, 대목인 설 명절에도 불구하고 농가의 소득 감소, 꽃 판매량의 감소로 인한 화훼 농가의 시름 등이다. 

과연 이런 피해들은 그 한가운데 김영란법이 똬리를 틀고 있어서 생겨났을까? 


임대료가 비싼 식당을 개업함에 있어 가장 확실하게 임대료의 부담을 덜어내는 방법은 높은 객단가의 메뉴를 내 놓는 것이다. 한우, 한정식, 일정식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이 연예인이 대중의 인기를 얻어 번 돈으로 빌딩을 사서 임대업을 하고 수십억의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 재테크의 정설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이다.

일그러진 부동산 소유구조로 인해, 임대차보호법의 법망을 자유롭게 피해 나가는 건물주들에 의해 혹사당하는 자영업자들에게 김영란법보다 무서운 것은 조물주 위에 있는 건물주일 것이다. 


설 명절에 급감한 판매량은 농산물 중 특히 가공식품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어찌 보면 김영란법에 의해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과나 식혜와 같은 전통식품, 건강기능성 식품 등인데 이런 품목들은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도 설과 추석 같은 명절에 판매가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 왔었다. 쉽게 얘기해서 1년에 명절 두 번 장사하고 노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농가기업, 마을 기업 형태의 지방 소재 기업들의 업력이 짧고 경영전문성이 떨어져 나타난 문제점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통해 오픈마켓 입점 등을 통한 온라인 판매,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한 수출 다각화 등을 통해 연간 고른 매출을 낼 수 있는 방안들이 컨설팅 되고 있고, 시간은 걸리겠지만 분명 개선될 것이라 예상된다.

 

화훼농가의 꽃 판매량 감소는 승진, 전보 및 경조사 등에서 소비되던 꽃 판매량의 감소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꽃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감소되고 있어서 김영란법 시행 이전부터 화훼업계의 시름은 이어지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못하다고 하는 개발도상국, 심지어는 후진국보다 못한 꽃 소비의 원인은 꽃을 보고 즐길 여유가 없는 삶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OECD에 의하면 2015년 전 세계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평균은 1,766시간, 1위는 멕시코 2,246시간, 우리나라는 2,113시간으로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문화를 향유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각박한 삶 속에서 꽃이 팔리겠는가?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저녁이 있는 삶’을 국민에게 되돌려준다면 꽃 소비량은 늘어난다. 그렇다면 개정할 것은 김영란법이 아니라 노동법이다. 


하나의 법을 제정하거나 수정해 경기를 부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이 사회의 모든 문제가 얽히고설킨 경제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해온 ‘중소기업기술개발 제품 우선 구매제도’를 보자.

정부에서는 판로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제품이 더 많이 팔리게 하기 위해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에서 중소기업의 제품을 우선적으로 사주도록 했고, 이 제도를 잘 시행한 공무원과 기관에는 별도의 포상까지 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덕에 중소기업들이 먹고 살만하다는 소식을 들어 본 사람이 있는가?

중소기업에 자금이 순조롭게 유입되지 못하고, 시장의 경쟁구조가 공평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 법은 애초에 의도했던 목적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정치권은 시민들의 촛불혁명에 의해 표출된 리셋(reset)에 가까운 정치혁명의 요구가 경제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근시안적인 땜방대책이나 아전인수 격의 주장이 이번 김영란법 개정에서 또 고개를 들고 있지만, 소비주체인 시민들이 경기악화의 문제가 김영란법에 있지 않음을 어떤 전문가나 정치인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의도한 바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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