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의 노동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구조는 경제학 원론 교과서의 앞부분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 현실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이론’이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르면 수요자들이 늘어날 때 공급이 부족한 상품은 가격이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뉴스를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중소기업 구인란을 예를 들어보자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의 인력충원 방법은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인건비를 높게 지급하면 된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말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의 인력 란에도 중소기업의 급여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적은 없었다.
왜? 하도급을 통해 원청기업이 가져야 할 임금부담을 하위 사슬인 하청기업으로 내려 보내는 방법도 있고,비교적 높은 임금을 지급하되 장기간 고용으로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 생기지 않도록 기간제근로 형태로 계속 인원들을 바꿔 쓰는 방법도 있다. 뿐인가? 값싼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업의 입장에서 너무나 고마운 것은 이런 잔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도록 국가가 최저임금이라는 것을 정해놨기 때문이다.
모든 고용기업은 최저임금이라는 숫자를 ‘적정임금’이라고 마음 편하게 이해하고 있기에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급여수준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업계 전반에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여 평균적으로 낮게 형성해 놓은 임금을 시작점으로 삼아 노동자와 협상을 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최저임금의 딜레마’ 이다.
국가의 복지 수준이 몇 해째 제자리걸음도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을 통해 번 임금이 삶의 질과 심지어는 생사를 결정한다. 노동자는 높은 임금과 낮은 임금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임금과 실업을 양손에 올리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거, 육아, 교육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복지가 부실한 대한민국에서 실업은 곧 죽음이거나 죽음을 갈망하는 비루한 삶의 밑바닥으로의 추락을 의미한다.
결국 노동자는 기업이 강요하는 낮은 임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굳이 이리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최저임금의 인상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1+1이 2라는 걸 증명할 필요가 없듯 말이다.
지난 2016년 4.13 총선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최저임금의 인상을 그것도 콕 짚어 시급 1만원 인상의 공약을 내걸었음 상기해 보면 최저임금의 인상 필요에 대해서는 꽤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최저임금에 대한 공약은 어떨까?
유력하다는 대선 후보들의 최저임금에 대한 공약과 실천방안을 찾다보니 의외의 결과를 만났다.
우선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방신문 7개사의 조사 의뢰로 2017년 4월 7일 10시 부터 동일 22시, 4월 8일 10시부터 동일 22시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2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1위 문재인 (42.6%)
2위 안철수 (37.2%)
3위 홍준표 (8.4%)
4위 심상정 (3.3%)
5위 유승민 (2.4%)
의 결과가 나왔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강구도를 볼 때 다른 군소후보들에 비해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두 후보 중 한 사람의 당선가능성을 높게 볼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그런데 이 두 후보의 최저임금 관련 공약은 타 후보들에 비해 되레 모호하고 구체적인 공약이행 요소라 할 수 있는 구체적 최저임금인상율이나 인상액을 밝히지 않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최저임금이 1만원에 이르기까지 인상속도를 높이겠다.(2017.2.16 성평등 포럼 중)”, “"최저임금 1만원은 좋은 정책으로 가장 먼저 캠프에서 받아들일 것.(2017.3.30, 홍정학 문재인 캠프 정책본부장이 토론회 참석중)" 등의 발언을 했으나 구체적인 연간 인상률이나 최저 임금이 1만원에 이르는 시점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2016년 총선 당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든 이후에는 후퇴했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불명확함은 불신을 키울 소지가 있으니 ‘전략적 모호함’을 견지하는 것은 좋은 방법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2022년 정도에 1만원에 도달하는 게 적절하다.(2017.4.6 토론회 중)”라고 밝혔는데 뭔가 생각해서 말한 것 같지만, 2016년 대비 2017년 7.3% 증가한 최저임금 증가율이 그대로 지속된다고 해도2022년에는 자동으로 최저임금은 9,201원이 되기 때문에 이 공약에 정책의지나 계획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발언 이후 비판이 일자 안철수 후보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영세 자영업자의 고충’을 들고 나왔는데, 유승민 후보의 경우에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국가가 분담하기 위해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납부해야 할 4대보험료를 국비로 보조하는 세부적인 해결책을 내놨기에 되려 아니한 만 못한 대답이 되어 버렸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에는 2020년까지 최저시급 1만원이라는 명확한 기한을 제시했고, 최고임금제(살찐고양이법)이라는 보완책까지 함께 제시하면 노동 분야에 대한 그간의 고민을 정책으로 만들어내려 노력했음을 보여줬다.
군소후보들의 최저임금 공약과 비교해보면 여론조사 1,2위의 당선가능성이 높은 문재인, 안철수의 공약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정치인이 대중에게 내놓은 책임 있는 약속이라는 뜻의 공약(公約)을 헛된 말장난이라며 공약(空約)이라고 비웃는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뼈아프게 들어야 할 말일 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선이 거듭될수록 정책을 준비하고 국정운영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공약집은 계속 발행이 늦어진다. 올해의 경우는 급박한 선거일정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공약집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한다면 인수위조차 없이 당선 즉시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해야 할 급박한 상황이니 자신을 뽑아달라고 외치는 것은 언어도단일 뿐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다 할 거.”라는 거짓말을 덥석 믿었던 사람들의 끔직한 후회와 불신이 자신을 통해 다시 거듭 되서는 안 될 일 아닌가?
얼마 안남은 대선 기간이지만 부디 공약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고, 정책의 치밀함과 가능성이 있는 공약다운 공약이기에 믿고 한 표를 행사하고픈 대선후보들이 경쟁하는 19대 대선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