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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May 09. 2019

화요일에 만나요

어떤 책모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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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주 화요일 아침마다 만나기로 했다. 물론 매일 만나는 사람이지만, 다른 목적으로 자신을 조금 더 정돈하고 다듬어 만나기로 한 것. 화요일엔 지극히 공적인 관계이기로 했다. 적어도 2시간만큼은 말이다. 


<아티스트 웨이>를 알게 된 건 올해 1월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12주를 약속했다. 책의 주요 과제인 모닝 페이지나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게 된 건 이때부터였다. 아침 일기인 모닝 페이지를 쓰기 위해 30분 일찍 일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전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었다. 9시나 10시에 눈을 뜨면, ‘아 오늘도 망했네!’라는 심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눈을 뜨면, 그 날은 하루 종일 엉망인 기분으로 보냈다.


 책에는 모닝 페이지를 매일 3쪽씩 무의식으로 써야 한다고 적혀있다. 과연 이게 내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의심하며 시작했다.  첫날엔 ‘의식적 글쓰기’를 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앞섰다. 내가 너무 신경 쓰고 의식하여 어떻게든 있어 보이는 글을 쓰려고 집착하면 어쩌지- 라는 사서 걱정을 말이다. 막상 쓰려고 보니 너무 졸렸다. 8시에 일어난 것이 모처럼이기도 하고, 잠이 다 가시지 않은 채로 책상에 앉았기 때문이다. 눈을 비비며 펜을 잡았다. 일단 뭐라도 썼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뭐든 썼던 것 같다. 거기엔 주로 걱정을 적었던 것 같다. 이 노트를 누가 보면 어떡하지? 과연 이게 정말 안전한 걸까? 하는 의심이었다. 특히나 모닝 페이지를 쓰는 동안 겸조가 말이라도 걸면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는데 “나도 내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라며 거침없이 불편함을 드러냈다. 


 모닝 페이지에 적었던 것 중 기억이 나는 한 꼭지는 이런 것이다. “작가는 분명 자신의 일기장이 파헤쳐진 경험이 없었을 거다. 특히나 끝엔 ‘참 잘했어요’ 따위의 도장이 찍히지도 않았겠지. 내 일기장은 항상 누군가 읽었다. 보여주려고 쓰는 게 당연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내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증명하기 위해 쓰는 걸까 싶었다. 내 일기가 과연 온전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활을 6년이나 한 사람에게 모닝 페이지가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는 것은 과연 억지스러운 일이다!” 억울함을 토로했다. 분명 누군가 내 노트를 열어볼 것이고, 이건 안전한 일이 아니기에 절대 솔직을 적을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바뀌었다. 나조차도 내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지 않았다. 비몽사몽으로 써 내려간 글에 관심을 둘 만큼의 여력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 내 노트를 본다면- 그것은 단연 겸조뿐인데, 내가 알기론 이 인물이 그렇게 얍삽한 위인은 못 된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신뢰한다는 뜻이다. 


 아무튼 나는 거의 매일 아침 일기를 적었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이 변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일기를 쓰고 아침을 먹고 어딘가로 출근하는 제법 규칙적인 패턴. 모닝 페이지를 한 달쯤 쓴 어느 날엔, 막연한 두려움을 마주했다. 하고 싶다고 말만 하며 하루 이틀 미루다, 반년을 보낸 작업이었다. 정확히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럼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일기장을 덮고 가방을 메고 카페에 앉았다. 그동안 적은 글을 정리해 갈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콘티를 그리고 만화를 그렸다. 고작 세 쪽의 일기를 썼을 뿐인데 내겐 뿌듯이라는 감각이 새겨졌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책모임은 금세 끝이 났다. 롱 패딩에 목도리를 두르고 만났던 사람들이, 제법 가벼운 옷을 입고 공원 벤치에 앉아 휘날리는 벚꽃을 보며 모임을 마쳤다. 12주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고, 나에겐 수많은 것들이 남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포기할 만큼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에겐 그만한 힘이 있다는 것, 그러니 나는 나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주변엔 나를 이끌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들과 함께라면 더욱 즐겁다는 것. 애정과 관심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할수록 이 모임은 더 깊이 있게 나아갔다. 


 함께를 나눈 경험은 이렇듯 소중하다. 내가 받아본 것을 기꺼이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아티스트 웨이> 책을 권했다. 아침에 일기를 써보세요 여러분! 달라질 겁니다! 하고.  물론, 내게 소중한 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책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과 이야기였다. 


 문뜩, 겸조와 한창 수다를 떨다 요새 이런 고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답 대신 <아티스트 웨이> 9주 차를 읽어보면 좋겠다고 보여준 적이 있다. 한달음에 책을 읽어보더니, 자신도 그 모임을 꼭 해보고 싶다는 거다. 다음에 하게 된다면 자신은 무조건 1번 예약이라고. 그래? 그럼 하면 되지! 어려울게 뭐람? 첫 번째 아티스트 웨이 모임이 끝나고, 3주 정도를 쉬었다. 다시 모닝 페이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겸조에게 “같이 해볼래?” 하고 물었다. 


 그래, 이번 주부터 둘이서 모임을 시작해보자고. 그럼 일단 67쪽까지 읽고 만나자. 화요일 어때? 화요일에 아침 먹고, 이야기 나누자. 겨울에 시작한 아티스트 웨이 모임에서 첫 번째 진행을 맡았던 친구를 떠올렸다. ‘그 친구가 어떻게 시작했더라.. 이걸 같이 읽어보게 했어, 그래 이건 같이 적어보자고 했지!’ 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첫 번째 화요일을 준비했다. 


“왜 67쪽이야?”

“거기까지가 기초거든. 이 책으로 함께할 기본들. 오티니까 가볍게 읽고 와.” 


 화요일 아침. 책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 혹시 불편했던 점, 제안하고 싶은 것, 같이 읽었으면 하는 문장을 이야기 나누었다. 작가가 소개하는 기본원칙을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아주 공적인 만남을 시작했다.  9시부터 11시까지, 두 시간 동안 우리는 창조성이나 정체성, 열정이나 의지, 그리고 그것을 지속할 수 있을지, 서로에게 여러 번 묻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또 다른 함께를 쌓아갈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불신했고, 의심했다. “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재능”이라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나는 이제 아주 조금씩 나를 믿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가끔씩은 “나는 아주 안될 것이야!”라는 늪에 빠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나를 구할 구멍을 찾은 셈이다. 수많은 곡절들을 겪으며 왔다. 그 순간은 매번 완만하지 못했지만, 간신히 또는 제법 잘 넘어왔다. 앞으로 마주할 모든 좌절을 대비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미끄러지지 않을 힘을 기를 순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보탠다면, 미끄러져도 엉덩이 털고 일어날 힘도 말이다. 결국의 함께는, 나를 기르는 힘이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아주, 아주 오랫동안 적고 싶다. 


2019.5.7. 8: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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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귀한 경험을 선물해준 아티스트 웨이 모임의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함께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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