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오늘은 문뜩 지혜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를 꺼냈어요.
조금 오래오래 적어두었다 전하고 싶어서요. 지난주 저에겐 큰일이 있었어요. 아이를 안고 계단에서 넘어져 발뒤꿈치 뼈가 골절되어 깁스를 하고 있어요. 사고의 여파가 이제야 진한 여운을 발휘해 저의 오른발은 온통 보라색이 되었답니다. 지금 이 글은 발에 냉팩 두 덩이를 올려두고 시원하게 적어요.
깁스를 하고 아이를 보는 것이 여의치 않아 오후에는 주변에 사는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귀한 시간을 나누어 주고 있어요. 해인이와 놀아주거나 가벼운 설거지를 해주고 가요. 주변에 저의 고통을 돌봐줄 친구들이 있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몰라요.
오늘 와준 친구는 오래전, 직장에서 만난 아주 가깝고 소중한 자매 같은 이예요. 오늘 그 친구와 부모에 대한 넋두리를 한참 나누었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요. 멀리 사는 언니네에 아이를 낳고 돌이 지나서야 갈 수 있었어요. 하필이면 언니네 놀러 가서 넘어진 거예요. 한데 저희 엄마가 짝꿍에게 사과를 하시더라고요.
"보람이가 친정에서 그리되어 미안하네."
엄마는 전부터 "친정에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시댁에서 싫어한다, 미움 산다, 알리지 말아라, 친정 일은 늘 뒷전이어야 한다, 너는 출가외인이다"라고 하셨어요. 실제 이 일을 겪고서 당신이 함께 하지도, 당신의 공간에서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솔선수범해 사위에게 사과하시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아니!" 하며 소리 지르고 화를 냈어요.
다만 이 글을 쓰다 느껴지는 한 편의 측은함, 당신이 일평생 그리 마음 졸였을 것과 제가 저의 시댁에서 미움을 살까 노심초사하고 계실 것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나는 결코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을 인정하고 있고요. 그러다 문뜩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우리 부모의 다툼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아빠와 다투고 저녁에 무작정 집을 뛰쳐나간 엄마를 늦게까지 거실에서 기다린 적이 있어요. 제가 열 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졸린 눈을 비비며 현관문만 바라보던 때, 자정이 넘어서야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오는 엄마를 볼 수 있었어요. 그때 엄마의 얼굴은 분명 분노라고, 그때의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사람의 얼굴은 저 모습일 거라고 기억하고 있었어요.
최근 몇 년 전에야 그날의 사건을 편하고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물어볼 수 있었어요. 사실 많이 궁금했어요. 엄마의 은신처는 어디였을지.
"엄마, 기억나? 그때 집 나갔잖아. 대체 어디 간 거였어?"
"가긴 어딜 가,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누구 하나 따라 나올 줄 알았지. 아무도 안 붙잡더라. 누구 하나 찾으러 나오겠지, 하고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있었어. 그렇게 몇 시간을."
저는 그제야 깨달았어요. 그날 내가 본 얼굴은 원망이었음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떠오르는 애틋함과 처연함, 또다시 화살은 나에게로 향합니다. 짝꿍과 싸우고 나면 어디든 뛰쳐나가고 싶은데 사실 갈 곳이 없어요. 세상은 수많은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저 하나 울 곳이 없다는 것을요.
지혜.
지혜에겐 안전한 공간이 있나요?
엄마의 원망을 보았던 20년 전, 그 뒤에도 여전히 갈 곳 없는 엄마가 된 나.
이 애처로움을 어찌 이길까요?
2022.1.26.
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