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5일
짝꿍이 사 온 아침을 먹는데 아랫배가 싸르르했다. 변비라 그런가, 하는 생각으로 밥을 먹었다. 정기검진 일이니 병원에 갈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랫배의 이상신호를 해소하고 갈 생각에 변기에 앉으니 이전과 다른 통증이 찾아온다. 앞쪽 아랫배가 아프다. 처음 느끼는 통증이다. 필히 이것은 진통이다. 시작이다! 며칠 전부터 콧물 같은 분비물이 아침저녁으로 나온 것은 분명 출산 신호인 이슬이었을 것이다. 예정일로부터 3일이 지난 오늘까지 소식이 없으면 이상한 거라며 무슨 결정이든 내리자던 주치의 얘기가 꽤나 큰 부담이었다. 아니 스트레스였다. 제왕절개는 싫고 유도 분만도 싫었다. 아이가 나오고 싶어 할 때까지 자연스레 기다리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찾아온 통증은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기를 만나는 축제 같은 과정의 시작이다. 지금은 약 10분 주기로 진통이 오고 있다. 짝꿍에게 진통이 오고 있다고 알리니 화들짝 놀라 초긴장 모드다. 오늘 이런 꿈을 꾸었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가에서 엄청 큰 물고기 두 마리를 건져 우리 방에 두었는데 아주 듬직한 새끼 용과 유난하게 까부는 원숭이 한 마리였다고 한다. 그 원숭이는 하도 까불어서 장난감 망치로 발바닥을 토토토톡 때려주었다고 한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설거지를 했고 짝꿍에겐 분리수거를 부탁했다. 과한 분주함으로 움직이기에 “자기야! 침착해!”라고 하니 “울 것 같다"는 답이 돌아온다. 병원에서 엉엉 울면 어떡하지? 간호사들이 “아~ 그 아빠요?” 하고 얘기할 정도로. “괜찮아! 오늘은 그래도 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울어!”하며 놀란 그를 다독였다.
마무리 짐을 싸고 책상에 오니 그가 새벽에 써둔 편지가 놓여있다.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 오늘이 우리가 처음 만난 지 4년 되는 날이란다.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고 환기를 하고, 집안 곳곳 물건들에게 “나는 아마 보름 뒤쯤 올 테니 우리 집을 잘 부탁해!”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일기를 쓴다. 통증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지금도 약 10분 간격이다. 황급히 진통 앱을 설치해 체크하고 있는데 갑자기 광고가 뜨고 1분 30초 뒤에 꺼진다고 한다. 1분 1초가 조급한데 이게 무슨 짓이야! 화를 내며 유료 결제를 했다. 이제 점심 먹을 시간이다. 허기지다. 오전 11시부터 지금껏 7번의 진통이 다녀갔다. 주기와 정도가 아직 들쭉날쭉. 통증도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통증을 익히고 있다. 한 몸으로 보내는 마지막 관문이다. 끝나가고 있다. 아니 지나가고 있다. 이제 축제가 시작된다.
아이와 대면하는 즐거운 일이 시작된다. 설레는 일이다. 물론 앞으로 - 오늘 - 몇 시간 뒤의 나는 분명 제발 살려달라고 침대 위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을 테지만 그 기록은 추후에 또 할 수 있길. 일단 현실적인 고민이 먼저다. 점심, 뭐 먹지?
2020년 마지막 일기다.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무사히 아이와 만났다. 놀랍게도 짝꿍은 눈물 한 방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분만실 앞에서 왔다 갔다 초조하게 돌아다녀 간호사로부터 “제발 앉아서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고 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엉뚱한 질문을 여러 번 던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 “지금 저 소리가 제 와이프 소리인가요?” 그날 밤 분만실의 산모는 나 혼자였다. 이후에는 “내가 꼭 탯줄을 잘라야 해?”라며 무서워했던 과거의 얼굴 (그래서 나를 열받게 했던 얼굴) 대신 호연하게 가위로 툭, 아이의 탄생을 선언했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와 무사히 만났다.
다시 일기를 적기까지 백 일정도 시간이 걸렸다. 아이가 백일 정도 되면 신생아 딱지를 졸업하니 아주 작은 시간을 낼 수 있으리라. 그 틈에 내가 유일하게 붙잡은 것은 일기였다.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구입해 하루 10분, 20분 아주 작은 틈을 만들었다. 9줄 정도의 짧은 메모 수준이지만 하루를 담기엔 충분했다. 일과를 마치고 캄캄한 밤이 되면 책상 앞으로 달려와 일기를 적었다. 하루를 적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나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몇 줄과 생각을 정리하는 여유가 당시의 내게는 공기와도 같았다. 그런 매일이 쌓여 일기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요새는 그 일기를 다시 보고 있다. 마치 영감을 주는 귀한 책이라도 되는 듯 포스트잇도 붙이고 밑줄까지 그어가며 집중해서 읽는다. 양육과 동시에 내 존재를 어떻게든 증명하기 위해 애쓰던 우울함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돌아보면 어떻게 멀쩡할 수 있지? 싶을 정도의 내가 있다.
우울과 방황이 전부라고 할 순 없다. 여러 가지 감정의 얼굴도 만났다. 백일 무렵 시작된 아이의 아토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의 온몸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고 난 뒤, 나는 이런 말을 적었다.
“아이의 옷을 벗길 때마다 기도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두드러기와 발진이 싹 사라져 있길. 희망은 자꾸만 꿈을 꾸게 한다. 그게 희망의 일이자 역할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희망을 적었다. 그 믿음과 반대로 흘러갈 때도 많았지만 글을 적으며 나는 계속 단단해졌다.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는 일이 지금 내게 당면한 숙제 같다. 아침에 세수하기, 저녁에 혼자 잠들기와 같은 아주 사소하지만 매일 쌓아야 하는 중요한 것들. 아이의 시야는 내가 내딛는 역사만큼 닿을 것이다. 나는 매 순간 나의 지평을 꾸역꾸역 늘려가야 한다.”
어떤 양육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다. 아이에게 무얼 해주겠다고 다짐한 적도 없다. 다만 나는 내가 살아온 방향과 고민, 선택의 과정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내가 된다는 것을 안다. 결국 써야 하는 말이 있다. 마음속에 맴도는 어떤 말들이 모여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 있다. 매일 쌓아둔 말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에 도착했다.
앞으로도 어떤 엄마가 되겠다고 선언할 생각은 없다. 일기 속엔 매일의 갈등과 성찰이 압축된다. 돌아봄은 나를 나아가게 한다. 나는 믿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미래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내 희망은 여전히 꿈을 꾸게 하고 쓰게 한다.
내가 가장 나다울 때, 아이에게 가장 훌륭한 양육자가 되는 것임을 믿는다. 단지 적을 뿐.
매일 나의 지평을 한 글자씩 늘려갈 뿐.
덧. 29개월 정도 키워보니 우리 아이는 새끼 용이 아니라 원숭이였음을 알았다.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