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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Apr 12. 2023

단 한 톨의 용기


오늘은 정말 한 톨이라도 써보겠다며 마음을 가다듬고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자마자 요새 사람들은 뭐 하고 사나 근황을 살핀다. 인터넷 첫 화면에 왜 인스타그램이 뜬 걸까.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행복을 구경하느라 내 시간이 흘러간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차, 싶어 메모장을 켠다. 하얀 화면 앞에서 나는 지나치게 엄숙해진다.


갑자기 인생을 회고하며 지난날을 떠올려 무언가 성찰하고 통찰력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렇다.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나는 자꾸만 욕망한다. 동시에 나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 산다. 내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지만 오로지 나인 것도 없다. 나는 친구이자 자매이며, 딸이고 반려인이자 엄마다. 동시에 세입자이고 맘 카페 회원이며 수집가이고 기록자지만, 창작자가 되고 싶다. 나는 훌륭하지만 뒤떨어졌고 침착하지만 방황한다. 나는 이런 낱낱을 살피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적어보기로 한다. 아, 돈을 벌고 싶다! 앞으로 다가올 대출금에 허덕이며 삶을 요약하고 싶지 않다. 블로그를 열고 싶다. 해인이처럼 아토피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한 괜찮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곳? 여기에 해인이의 얼굴을 공개할지 말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그전에 아이디를 뭐라고 하지? 별명을 지어볼까 아님 누구 엄마  아무개로 적어야 하나. 나는 이런 잦은 고민을 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나는 이렇게 매일 망설인다.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벌지? 일이 끊긴 지 2년이 넘은 프리랜서는 어떻게 다시 돈을 벌 수 있는 거죠?


1년 전 일기를 들춰본다. 2021년에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 심지어 블로그 카테고리까지 나누어 놓았다. 결국 나는 생각하는 데에만 힘을 쓴 것이다. 나는 왜 쓰지 못할까? 왜 망설일까? 정확하게 다시 묻는다면, 그 많던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머릿속에 가득 찬 이야기를 쏟아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단 한 톨의 용기.


해인이를 양육하며 나는 매일 용감해진다. 조리원에서 기저귀도 못 갈던 내가 지금은 해인이 똥 앞에서 여유가 넘친다. 나의 용감은 어느덧 알게 되었다는 지점에서 발산한다. 기저귀 속엔 불 뿜는 용이나 미지의 무언가 숨어있는 게 아니라 그저 똥뿐이다. 그건 치우면 그만이다. 그러니 나는 용감해지고 때론 무모해지기도 한다.


글을 쓰는 건 언제나 두렵다. 나약하고 초라한 내가 보여 쓸쓸해지고 굳이 이런 것까지 적어야 하나 한없이 작아진다. 그 끝엔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엄마가 되는 데에 용감함을 모두 썼나 착각했지만 용기는 적금과도 비슷해 분명 어딘가 차곡차곡 쌓였을 터. 그 이자는 복리로 계산될지도 모른다.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두 명의 친구와 매달 글쓰기 모임을 했다. 서로 글을 써서 노션에 공유한 뒤 줌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꼬박 여덟 번을 채웠다. 한 친구의 출산으로 이 모임은 잠시 멈추었다. 여름에는 동네 친구들과 <아티스트 웨이> 책 모임을 시작했다. 모닝페이지를 쓰고 책에서 주어진 과제를 수행했다. 여름에 시작한 모임은 겨울에 끝이 났다.


그 사이 블로그를 열었다.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였다. 아이를 양육하며 자투리 시간에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 온라인 수익화에 눈을 돌려 열심히 배우기만 했다. '아이 다리가 휘었어요 - 15개월 아이 오다리, 세브란스 병원'이 가장 인기글이다. 그다음은 응급실 가는 법, 스튜디오 촬영 후기 정도이다. 그런 글을 쓰며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이게 맞나? 했지만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도움이 되길 바라며 썼다.


나는 육아 인플루언서가 되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6개월간 진행된 네이버 블로그 챌린지에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마치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라도 되는 양, 1등 상품이었던 세계여행을 꿈꾸면서 말이다. 6개월간 매주 쓰면서 글의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엔 엄청난 포부로 '양육자의 운동법'이라며 엄마의 운동을 게재했다. 살아보니 양육자의 운동은 그전의 운동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거금을 들여 시작한 PT와 잘 맞지 않아 한 달 만에 운동이 재미 없어졌다. 당연히 글 쓰는 것도 지루해졌다. 그러니 내가 재미있을 글을 써야 했다.


이름을 양육자의 주간 일기로 바꾸어 그저 매일 있었던 하루 일기를 적어 올렸다. 이는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어느 순간 '아, 이거 블로그에 써야지!' 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블로그를 무척 열심히 쓰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다. 정말이다. 나는 엄청난 야망을 가지고 매일 블로그 일기를 쓴다. 이글거리는 야망이 불타올라 나도 저런 사람처럼 유명해지겠다고 결심한 적도 많았다.


한데, 정말 아무도 보지 않는다. 좋아요와 댓글은 블로그 마케팅을 하는 이들이 '블로그 잘 봤습니다. 마케터로 참여하시려면~'과 같은 글이다. 일요일에 글을 올려 월요일 하루를 보낼 동안 짝꿍의 피드백이 없으면 애꿎은 사랑타령을 했다. "자기는 나한테 관심이 없지?"와 같은 말로 죄 없는 짝꿍을 비난했다. 그럼 득달같이 달려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하나라도 달아주고 갔다. 어휴, 처량해! 처음엔 사진을 올릴까 말까 어쩐다 저쩐다 고민을 했지만 아무도 안 보니 상관없다. 짝꿍이고 아이고 사진을 마구 올린다. 누가 봐도 이 지구는 넓다.


다시 겨울이다. 나는 이곳에 도착했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끝난 시점에서  <오키로북스>서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을 발견했다. 친구들에게만 보여주는 글 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글에 허우적대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정말 단 한 톨만큼. 워크숍을 신청해 첫 번째 글을 써서 게시판에 올리고 어떤 댓글이 달릴까 무척 기다렸다.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회신을 기다리는 과정, 그러니까 나를 모르는 사람이 오로지 내 글만 보고 피드백을 쓴다고요? 이는 공포에 가까웠다. 그러나 애정과 정성이 가득한 댓글을 확인하며 나는 사르르 녹아내렸다. 나는 내가 계속 써도 되는 걸까, 매일 망설였다. 마음속에는 나에 대한 불신, 불안, 불평만이 가득했다. 내 글을 제일 못 미더워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애정한다. 이 글을 올리기까지 공들였을 마음과 정성에 허투루 댓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다른 이들의 글이 올라오면 두세 번씩 읽어본다. 여러 번 고민하고 피드백 댓글을 단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내 글에 달린 댓글이 그렇다. 단 한 줄의 댓글을 쓰는 것도 힘이 드는데 매번 장문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며 모두를 존경하게 된다. 모두가 진심인 이 공간에서 헛발을 디딜 수 없다. 진심으로 받는 응원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글을 쓴다. 이 워크숍에선 모두의 마음이 순환한다. 진심을 전하면 기필코 돌아온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각박해도 여기는 그런 마법 같은 곳이다. 그러니 쓴다. 그러니 용기가 난다. 그래서 다음 워크숍에도 신청했다. 매주 글을 하나씩 쓴다는 것, 그것도 누가 읽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그냥 해보는 거지 뭐!" 하며 쓴다. 결국 단 한 톨의 용기는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이젠 쓰면 여섯 명, 일곱 명이나 보는 글이 되었다. 무척이나 즐겁고 감사하다.


내게 2022년은 '쓰길 잘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 글이 어디로 나아갈지 알지 못한다. 글 속에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 비난받고 창피를 당하는 수모를 겪을지도 모른다. 결국 시간이 흘러야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글 기저귀 속에도 똥뿐일 테니 나는 기필코 더 용감해질 것이다.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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