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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May 31. 2023

저만 놀랐나요? 괜찮으신가요?


불안은 난 데가 없어 이렇게 정처가 없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일찍 일어난 해인이 덕분에 적어도 깨어있는 상태에서 사이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창문을 열고 밖을 보았습니다. 그 어느 날처럼 고요하고 조용한 골목길이었습니다. 몇몇 어르신이 “어휴 별거 아니겠죠” 하며 지나가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래, 별일 아니겠지, 하는 사이 두 번째 방송이 들렸습니다. 정확하게 ”대피를 준비하십시오“라는 말을 듣자마자 방으로 뛰어들어가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TV가 없으니 라디오를 켰습니다. KBS 콩을 앱으로 깔아두고 있었기에 제일 먼저 라디오를 틀었지요. 그 어떤 방송에서도 재난을 설명해 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대피를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우리에게 떨어진 대피만을 떠올립니다.  무얼 피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니 무얼 대비해야 하는지 알 리가 없지요.


그러니까 저에게 대피는 드라마나 영화로만 봐왔기에 짐을 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동네에 괴물이 나타난 건지, 폭탄이 떨어지는 건지, 영문을 모른 체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이 기저귀였습니다. 이제 배변 훈련을 하는 아이의 대소변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것, 그러니까 기저귀가 가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그 와중에도 투덜투덜 아니 왜 똥오줌을 못 가려서 짐을 만들어!! 하면서 말이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해인이는 ”나도 옷 입을까?“ ”나도 나갈까“ 서성입니다. 아이에게 설명할 길이 없어 ”해인이, 오늘 신을 양말 고를까?“ 하며 저의 불안을 달랩니다. 그러고는 아이의 상비약과 아이의 간식과 아이의 내복 두 벌을 챙겼습니다. 그러다 황급히 겸조에게 ”물! 물을 담아!“ 했더니 겸조도 마찬가지로 아이 빨대컵에만 물을 담아왔습니다. 119에 전화를 거니 불통이고 도대체 어디에 물어야 하느냐고 주춤대는 사이 저는 동네 맘 카페 창을 열었습니다. 네이버 모바일은 다운되었어도 다행히 카페 앱은 활성화되어 저마다의 불안이 올라왔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 각자의 불안, 그러니까 이게 뭔가요,로 시작해 저희 고등학생 아들이 지금 등교를 해도 되는 게 맞나요까지. 이 불안이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란 사실에 안도함과 동시에 분노가 터져 나옵니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붕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불안을 해명할 곳이 없어 무력합니다. 우울과 불안은 증폭합니다. 우리는 결국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대피를 목적으로 나온 이는 실제로 정말로 우리들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단 나왔습니다. 때아닌 아침 산책에 신이 난 아이는 천변에 간다며 흥얼거리는 사이, 주민센터에서 세 번째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오발령이었다고요.


밖으로 나온 우리는 아이의 신난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 근처 놀이터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운동하고 계신 어르신들의 다양한 수다를 주워듣습니다. 그 시각 유일한 꼬마를 만나 함박웃음을 짓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거봐~ 아니래찌~“로 시작해 ”내 말이 맞잖어~“ 가 오고 갑니다. 괜스레 한 어르신이 ”나도 손주가 있어 다 알아~" 하시며 해인이에게 천 원짜리 두 장을 쥐여주십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열 번 거절해도 열한 번을 손사래 치셔서 우리는 기어이 그 돈을 받았고, 해인이는 ”빵 사러 가자!!”며 신이 났습니다. 우리의 아침은 이렇게 한바탕 소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안심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시작된 불안은 정처가 없어 제 공간을 장악합니다. 오늘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게 맞나, 어린이집에 가는 게 맞나, 오늘 소풍 날인데, 그게 맞나, 아닌가, 얼른 주변의 다른 친구들과 양육자들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많이 놀라지 않았니, 괜찮니, 하고요. 누군가는 자느라 몰랐다고 하고, 누군가는 지역이 달라 사이렌 소리는 처음 듣는다고 하고, 누구는 어쩔 줄을 몰라 가만히 있었다고 하고요. 아마 저마다 각자 돌보는 생명들을 껴안고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사이렌이 울리기 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일상으로 복귀하라는 허무한 알람 문자에 나의 오늘은 조용히 붕괴하고 막연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전에 가만히 앉아 생각합니다. 그 문자를 받고 나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을 수많은 이들을요. 이토록 치명적인 해프닝을 그저 미안하다는 말로 그치지 않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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