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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May 03. 2020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싶습니다

초임 교사의 교직 일지 4

  학교에 매일같이 출근한 지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4월 1일부터 정상 출근을 했으니, 학교에서 보낸 첫 달이 지난 셈이다. 물론 아이들은 없는, 고요하고 조용한 한 달이었다.

  학생들로 가득한 4월의 교정을 (교생을 나갔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비교군 자체가 없었지만, 교직 경력이 있으신 선생님들은 이러한 봄날의 모습이 특히나 낯설고 어색하신 듯했다. 그러나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이러한 4월의 풍경이 어찌 보면 '학교'라기보다 '회사'의 속성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각자의 시간표대로 분주히 수업에 들어갔다가 쉬는 시간 잠깐 동안 교무실에 와 있고, 수업이 없는 빈 시간이 겹쳐야 교무실에서 서로 간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선생님들이, 출근부터 퇴근까지 같은 교무실에서 내내 함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신규는 사실 이 시기 덕분에(?)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보다 빨리 가까워지고, 각각의 선생님들이 어떤 스타일이신지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어 이러한 상황이 나쁘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동료 선생님들과의 인간관계에도 그만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 그것은 그것대로 나에게 많은 자기 반성의 순간을 유발하였다.)


  그렇다고 아예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휴업 기간('온라인 개학' 이전에 개학 자체가 연기되었던 기간을 의미함)이 길어지면서 교과서를 아예 받지 못하고 있었던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배부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고, 그래서 우리 학교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교과서를 배부했다.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모여 학교 자체 에코백에 십여 권의 교과서를 수작업으로 일일이 담고, 그걸 며칠 간에 걸쳐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나누어 주었는데 그때 부모님 차 뒷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받으러 따라온, 우리 반 아이들 몇 명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은 정말이지 완전 애기들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직접 대면하여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나는 이러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사실 요즘의 나는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교직에 뛰어든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책 한 권을 낼 때에도 혹시 내가 오탈자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 혹시 내가 책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까 봐 불안함에 떨었던 나였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출간 일정이 주어지면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고, 주말 시간을 빼서 일을 하다가 너무 빨리 마모되고 지치지 않았던가. 그렇게 독자의 삶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두려워서 벌벌 떨던 내가, 이십여 명이 넘는 우리 반 아이들, 더 나아가 내가 수업에 들어가 가르칠 백여 명의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생각을 했다는 게 어이가 없는 것이다. 대체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을까…….


  만약 아이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면, 그래서 모든 아이들은 아니지만 한두 명의 학생에게서만이라도 나의 수업이나 나의 생활지도가 의미가 있는 듯 보였다면 이런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들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 없다. (이건 뭐,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학생들에게 배우는 입장임에 틀림없다.) 원래도 이런 이상한 쪽으로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고(그러나 능력은 완벽주의자가 될 수 없고), 스스로에게 엄격하여 내 자신을 몰아붙여 옥죄는 게 특기인 나는, 요즈음 뿌연 안개 속에 갇힌 느낌이다.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자욱한 안개가 명물이라던 '무진'이라는 고장에 서 있으면 이런 느낌이 들려나.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눈앞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며, 나는 그곳에서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두려움이나 불안함과 같은) 어떤 부정적인 감정들이 스멀스멀 나에게 스며드는 것을 느끼고 있다. 때때로 그것들은 나날이 증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작은 바람이라도 불어와 이곳 '무진'의 안개를 흩뜨려 주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작은 공기의 흐름을 내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어 답답한 나날이다.

  그렇다면 그 모호한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이 두려워할 필요도 불안해 할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직시하면,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조금은 덜 '무진'스러워질까. 재량 휴업일인 내일로 인해 주어진 연휴를 활용하여, 이곳에 글로써 지난 한 달을 복기해 보면 조금은 이 안개를 밀어낼 수 있을까. 나는 정말이지 이 안개의 고장을 떠나고 싶다.*

* 이 글의 제목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마지막 문장인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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