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교사의 교직 일지 5
어제 교육부에서 학생들의 학년별 등교 수업 시작 시기를 발표했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중학교 1학년은 6월 1일, 담임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수업에 들어가는 중학교 3학년은 5월 20일 등교한다.
예년과 같은 원래의 학사 일정대로라면 3~4월 두 달간 아이들과 별의별 일을 이미 겪고 1학년 야영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6월이 되어서야 우리 반 아이들과 우리 반 교실에서 첫 인사를 하게 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신규 교사들은 필수적으로 공개 수업을 해야 하는데, 나는 설마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모르고 (늦어도 3월 말에서 4월 초에 개학을 한다고 가정하면 5월 말 정도가 적당하겠지, 그때쯤이면 아이들과 '라포(rapport)'*도 충분히 형성되고 나도 수업에 익숙해졌을 테니 괜찮겠지, 생각하고) 공개 수업 날짜를 5월 말로 신청해 놓았었다. 그런데 5월 말에 아이들과 만나지조차 못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공개 수업은 자동적으로 2학기로 미뤄질 듯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특수교육학 용어사전>에서는, '라포'를 "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이다. 상담, 치료, 교육 등은 특성상 상호협조가 중요한데 라포는 이를 충족시켜주는 동인(動因)이 된다."고 설명한다.
신규 교사인 나는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고, 몇 주간의 온라인 학습이 진행되는 동안 내 자신에 대한 엄청난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신규인 내가 무언가 앞장서서 온라인 학습과 관련된 좋은 방법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야만 할 것 같은데, 실상 나는 온라인 수업 이전에 실제 교실 수업 자체에 대한 감이 없으니 그 무언가를 시도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어느 정도의 내용을 한 시간의 수업 동안 소화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수업을 운영해야 아이들이 덜 지루해 할까 등등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은 산더미 같은데, 그것도 모르는 상태로 실시간 화상 수업이나 녹화 수업 등을 섣불리 해 보겠다고 나설 수는 없었다.
혹자는 그것이 교사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교사의 편의주의적 선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그리고 그 말이 틀렸다고 하기에는 분명 나 역시 어느 정도 편의를 보았을 것이므로 완전히 반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단지 그것 때문에 EBS의 강좌를 수업 콘텐츠로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는 나는, 차라리 검증된 선생님이 검증된 내용을 가르치는 EBS의 강좌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교실에서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가르칠 때에는, 아이들이 어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풍기면 그에 따라 수업 속도와 수업 내용의 조절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피드백을 대면 수업에서만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기다 낯선 프로그램과 시스템에까지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로 옷을 갈아입을 자신이 없었다.
또 하나 이번 시기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나라는 사람이 변화에 상당히 둔감한 사람인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변해가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부터 그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고 일찍부터 배워 왔는데, 나는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많은 선생님들보다 새로운 기술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사실 충격적인 깨달음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요즘같이 (별도의 선이 없는) 블루투스 이어폰이 보편화된 시기에, 매일같이 출퇴근길에 유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직감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직시하는 게 두려워 피하고 있었을 뿐. 심지어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 준비를 지원하기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을 교사들에게 지급해 주었는데, 나는 동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블루투스 이어폰을 연결해 놓고도 이내 유선 이어폰으로 다시 돌아왔을 정도니까. 단지 선이 없는 이어폰이 낯설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새로운 변화가 두려워 몸을 사리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우리 반 아이들을 비롯한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러한 사상 초유의 사태에 생각보다 잘 적응해 주고 있다. 물론 초반에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이야기하자면, 모든 담임 선생님들은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그리고 온라인 개학이 시작된 초반에 교무실에서 하루종일 통화만 해야 했다.
일단 온라인 수업이 가능하도록 특정 플랫폼(대부분의 학교에서는 'EBS 온라인 클래스'를 활용하고 있다)에 아이들을 교과별로 가입시키는 것부터 큰 난관이었다. 학생 개인의 휴대폰이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학부모님께 안내를 드리지만, 그 한 번의 안내로 교사가 요청하는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드물지만 이런 분들께는 정말 마음으로 얼마나 감사의 인사를 드리게 되는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교사는 학부모님께 재안내를 하고, 필요시 개개인별로 따로 또 안내를 드리고 이런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신규인 나는, 어느 정도까지 자세하게 설명을 드렸을 때 학부모님과 학생들이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지 잘 몰라서, 나중에서야 나의 설명이 너무 불친절했구나 깨닫고 뒤늦게 반성한 적도 많다.
이때 어떤 선생님은 이러한 문제가 반복될 것을 미리 예상하시고는, '화면 녹화' 기능을 사용해서 어디를 클릭해서 어떻게 가입하는지 그 과정 자체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학생과 학부모님께 함께 전달하기도 하셨다. 나는 그 선생님의 완성작을 감사한 마음으로 공유하는, 일종의 무임 승차자 같은 나날을 한 달간 보내 왔다. 나는 아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몰라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저 도움을 받기만 하는 그런 동료였다. 거기서 오는 자괴감과 열등감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정말 모든 신규가 나처럼 버벅거리는 게 맞을까.
그렇게 서너 번의 안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해당 플랫폼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 학생 또는 학부모와 수시로 통화하며 모든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차질 없이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적지 않은 시일이 걸렸다. 학생을 컴퓨터 앞에 앉혀 놓고 "이거 보이니? 응, 그걸 클릭해 볼래? 그럼 뭐가 나오지? 그래, 그렇게 가입하면 되는 거야."와 같이 하나하나 통화로 알려 주는 것은 예삿일이다. '교육자'라기보다 '보육자'로서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였다. 물론 지금도 많은 부분 그렇지만.
온라인 개학 초반부터 지금까지 학생들은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9시 사이에 출결 확인을 위해 (우리 학교의 경우 'EBS 온라인 클래스'와는 다른 플랫폼에서 별도로) 출석 게시물에 댓글을 남겨야 했다. 그런데 특히 초반에는 아이들이 늦잠을 잤거나 혹은 출석 체크 하는 것 자체를 까먹거나 하는 여러 이유로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건 우리 반뿐만 아니라 1학년 전체의 문제였는데, 그래서 교무실의 아침은 한동안 자기 반 아이들을 깨우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몇 번을 안내해도 따라와 주지 않는 학생에 대해 약간의 짜증과 불만이 치밀어 올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시기가 분명히 있었는데(그 무렵 등교 개학이 이루어졌다면 내가 그러한 학생에 대해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시간이 더 흘러서 나는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중학교 1학년에 불과하며 고작 14살(만으로는 12살이 대부분일 것이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아이들이 이 정도까지 따라와 주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고(아침에 '모닝 엔젤' 역할을 하는 것도 이제는 하루에 적으면 1-2명, 많으면 4-5명만 하면 된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내가 '엔젤'이 아니겠지만.) 피곤하면 늦잠을 잘 수도 있지(나도 여전히 늦잠을 좋아하는데!), 나라도 과목이 많아 헷갈렸을 텐데 다른 수업을 잘못 들을 수도 있지, 과제가 적지 않은데 조금 늦을 수도 있지, 이렇게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대하게 된다.
교무실에서 다 같이 모여 있다 보니 의도치 않게 여러 선생님들이 각자 어떤 스타일로 아이들을 지도하시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그 선생님의 교직관을 어렴풋하게나마 추측해 보게 된다. 교직관은 각 교사의 수만큼 다양한 것이 당연하며,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기에 아무도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자 예의다. 물론 경력이 많으신 선생님들의 눈에 비쳤을 나의 무수히 많은 미숙한 점들 역시 그래서 언급되지 않는다.
나는 우리 교무실에서 (그것이 칭찬인지 염려인지 잘 모르겠으나) '친절한' 선생님으로 통한다. 일단 아이들에게 통화든 문자든 "~ 했어요?"와 같은 경어와 "~ 했어?"와 같은 평어를 섞어 쓰고, 혼내거나 질타하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최대한 돌려 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 늦잠을 자느라 출석 체크를 하지 않은 아이에게도, (그 아이들은 대부분 연속적으로 지각한 게 아니라 그날 하루만 늦은 경우가 많으므로) 여태까지 출석 체크를 너무 잘해 줬는데 오늘 댓글을 달아 주지 않아 혹시 아픈가 싶어서 걱정했다는 말로 통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가 늦잠을 잤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며 괜찮다고 다독여 준 뒤 통화를 마무리하는 편이다.
내가 이러한 태도를 학생들에게 보이는 것은 나의 성향상 어차피 무서운 선생님이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괜히 무서운 '척'을 했다가 들키는 것보다는 본래의 내 모습을 견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 학창 시절의 경험이 투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나는 선생님께서 말로 설명해 주시면 알아듣는 학생이었다고 (그 시절의 나를 미화하여) 생각하는데, 그래서 의도치 않은 실수로 말로써 또는 매로써 혼이 나면 그렇게 상처를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남학생 중에도 (많은 분들이 남학생들은 혼내도 뒤끝이 없고 훌훌 턴다고들 말씀하셨지만) 분명 나와 같은 아이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단 한 명일지라도, 나는 그 한 명이 나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최대한 없었으면 좋겠다. 완벽한 선생님은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내 학창 시절의 상처를 잊지 않고 그것을 대물림하지는 않으려 노력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게 내가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라도 경어를 '섞어' 쓰려 하는 이유고(그리하면 아이들에게 말이 '막' 나가는 것을 줄일 수 있을까 봐), 등교 개학 이후 아이들을 혼낼 때는 경어'로만' 혼내야겠다고 (실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은) 다짐을 하는 이유다.
신규 교사인 나는 이렇게 현실적인 업무와 관련해서는 동료 선생님들께 도움만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낭만적인 교직관 속에서 온전히 발을 빼지도 못한 채 6월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5월 20일부터 중학교 3학년 수업을 들어가야 해서, 한동안은 대면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어떤 식이든 병행하게 될 것 같지만.)
사실 나는 교직 경험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내가 아이를 낳아 키워 보지 않았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어떠한 입장을 지니는 것은 물론이고 학부모님들의 어떠한 입장에 감히 공감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물론 아이들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원론적인 생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대책이 나와도 누군가에게는 불안과 불만족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나는 이제 5월 말까지 길어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온라인 수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같은 교과 선생님들과 협의하고(이전의 방식을 계속 유지하거나 또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다가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학교 수업을 준비하는 것으로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일을 할 것이다. 부디 나의 부족함이 너무 크지 않기를, 내 마음대로 학생들을 위하는 방식이 그리 잘못된 방향은 아니기를, 그래서 그러한 나의 진심이 나의 미숙함을 조금은 가려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이번 달만 지나면, 우리 반 아이들을 볼 수 있다!
6월에는 꼭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