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란 Sep 20. 2020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면

반인반수의 가을 단상

1.

지난주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핸드폰 케이스를 바꿨다. 삼사 년 전이었던가, 생일이면 너무나 우울해지는 나를 위해 내가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핸드폰 케이스의 한쪽 귀퉁이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 핸드폰 케이스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야수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 주는 장미꽃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게 디자인 된 것이었다. 장미꽃의 붉은빛과 그 배경에 깔린 보랏빛의 색감이 쨍한 것이 정말이지 아름답고도 몽환적이었다.

  내가 생일을 싫어하게 된 것이 첫 연애의 흔적 때문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리고 올해 생일에도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서글픔을 매번 느끼고야 말았던 이십 대 중후반의 나는, 그 핸드폰 케이스를 나에게 선물하며 이 쨍한 색감이 바래고 바래서 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진정한 사랑을 만날 것이라며 나를 위로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핸드폰 케이스에는 빛 바랜 흐릿한 색만이 가득했으나, 나는 차마 내 손으로 핸드폰 케이스를 바꿀 수 없었다. 그 행위 자체가 진정한 사랑을 만날지도 모르는 일말의 가능성을 내 손으로 내치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딱 보아도 오래되어 보이는 핸드폰 케이스를 보고 내가 가르치는 중학교 3학년 학생 몇 명이 관심을 보이기에, 나는 이 핸드폰 케이스에 담긴 이야기를 해 준 뒤 너희를 너무 사랑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마음의 공간이 없다고 농을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핸드폰 케이스를 바꿀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나는 아직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 인연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핸드폰 케이스가 부러져 버리면서 예상치 못한 작별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핸드폰 케이스를 주문해서 받아 놓고도, 나는 며칠간 오래된 핸드폰 케이스를 새로운 것으로 갈아 끼울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작년 임용 시험에 출제되었던 지문 하나가 생각났다.

<사물에 쌓인 기억> 

(전략)

한국이 특별히 유행에 민감한 나라라는 것은 모든 것이 가장 빨리 낡아 버리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뜻도 된다. 학기 초나 생일 때 요란을 떨며 샀던 소중한 물건들은 손때가 묻기도 전에 돈을 들여 처리해야 할 쓰레기 더미로 전락하다. 물건들 속에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이 쌓이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런 슬픔이 유행을 부르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마음속에 세상과 만나 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따뜻한 기억으로 채워지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공허해지고 삭막해진다. 이렇게 삶이 충만함을 잃으니, 자연스럽게 밖에서 생산된 새로운 물건과 유행에 집착하게 된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깊은 곳에 그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사물도 그 깊은 내면을 열어 보일 것이다. 사물을 대하는 이러한 자세는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따뜻한 마음일 것이다. 오늘은 내 옆의 오래된 물건에 눈을 돌려 보자. 그리고 그 물건에 쌓인 기억을 떠올리며 깊은 눈으로 바라보자.

- 2020학년도 중등학교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 국어 전공B 11번 문제의 지문 중에서

  내가 쉽사리 핸드폰 케이스를 바꿀 수 없었던 것은 그 안에 내 흔적이, 내 삶의 기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핸드폰 케이스를 결국 새것으로 바꿔 끼우고도 버리지 못했던 나는, 어쩐지 이 물건에 마음의 빚이 있는 느낌이다. 이 공간을 빌려 마지막 인사를 건네 본다.


오랜 시간 적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을 보였다가, 기대를 했다가, 마음을 접는 그 일련의 씁쓸하고 쓰라린 과정을 지겹도록 곁에서 보아 와 준 너에게 뒤늦은 고마움을 전한다.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괜한 기대를 버리지 못해, 너에게 무수히 많은 부담을 지웠던 것에 미안함도 전한다. 너는 내 이십 대의 자화상이었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기어코 잊을 수 없게 했던 또 다른 나였음을 알고 있다. 이제야 너를 떠나보내며 헛된 욕심도 함께 내려놓으려 하지만, 어쩐지 너에게 걸었던 나의 바람은, 아니 너는 나에게서 온전히 사라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게 영롱하게 빛나던 색이  바랠 때까지 내 곁을 지켜 주어서 고맙다. 이제는 편히 쉬기를. 안녕.




2.

요즘 화가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왜 아직 서른 한 살이 되도록 어떠한 안정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걸까, 왜 아직 시험이라는 걸 쳐야 하는 걸까 생각하면 화가 난다.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자꾸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그 기분이 표출되는 것 같다. 최악의 딸이다.

  학교에서는 세상 자상하고 다정하고 온화한 선생님으로 지내다 오려고 노력하면서(사실 화를 내고 싶어도 아이들이 나를 무서워하지 않아서 내 말을 듣지 않을까 봐 아예 화를 내려는 시도조차 못 하는 측면도 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임고생'이라는 나의 신분에 직면할 때면 억눌러 놓은 감정이 폭발하는 느낌이다. 요즘 '반인반수(반은 그냥 인간, 반은 수험생)'의 삶을 살면서 내 자아가 여러 개임을 분명하게 자각한다.


3.

퇴근 후에 어떻게든 잠깐이라도, 주말에는 어떻게든 몰아서라도 공부를 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확실히 전업(?)으로 수험 생활을 했던 작년과는 그 밀도와 폭이 너무 다르다. 작년에는 지금쯤 시험 때까지 이걸 더 보고, 이건 더 보지 말고 이런 계획이 얼추 세워져 있었고 그 시점의 내 상태를 주관적이나마 파악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시험 때까지 뭘 더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계획한 것들이 매주마다 엎어지는 나날의 반복이다.

  방학 때 몰아서 2학기 수업 준비를 해 놓는다고 해 놓았으나, 개학 후 코로나19의 진행 상황이 악화되면서 그것도 일정 부분 무용지물이 되었다. 대면 수업과 온라인 수업의 일정이 (1학기 때를 기준으로 한) 내 예상과 완전히 달라지면서, 결국 주 중에도 주말에도 수업 준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 근무 시간 내의 준비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선도적인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의 편의를 분명 생각하는 측면도 있어 항상 찔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무 시간 내에는 거의 내도록 무언가를 하고 있다. 온라인 수업으로 아이들이 제출한 과제에 피드백을 하거나, 대면 수업 때 아이들과 함께한 활동에 피드백을 하거나, 이번 주 수업을 수정하거나 다음 주 수업을 준비하면서. 정말이지 교사들이 EBS 강의를 틀어 준다고 해서 교무실에서 그냥 놀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말만큼은 드리고 싶다. 


4.

지난주에 피를 뽑았다. 자주 가는 동네 내과에 목이 아파 가볍게 들렀다가, 워낙 내가 쌓아 둔 진료 기록이 있다 보니 혈액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올해 들어 내가 저혈압인 것을 확실히 자각하기도 했고, 나도 내 몸의 상태를 신뢰할 수 없었던 터라 독감 주사를 맞으며 채혈도 함께했다.

  그 결과 심각한 빈혈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몸에 꼭 필요한 이 요소도 정상 수치보다 심각하게 낮다, 이 요소도 심각하게 없다, 등등 (내 기준) 무수히 많은 진단을 받았다. 나는 보통 내 예상보다 심각한 이야기를 병원에서 들을 때면 마음에서 뭔가가 찡-하고 울리면서 눈물이 나는 편인데,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별로 놀라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이렇게 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까, '그래, 내가 나름 아등바등 살기는 했나 봐. 그렇게 살았다고 말할 수라도 있어서 다행이네.' 뭐 이런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내 스스로를 위한 건강한 사고방식이 아니지 않은가.

  받아 온 약 중에 졸리는 약이 들어 있다는 말을 들어서인가, 지난주에는 정말이지 퇴근하고 공부를 하는데 너무 졸려서 힘이 들었다. 원래는 그렇게까지 조는 편이 아닌데 아차, 하는 순간 졸고 있는 나를 보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 그런데 몸이 아프다고 하니까, 꽤나 안 좋은 상태라고 하니까, 생각하면서 그냥 그런 나를 내버려 두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5.

꽤 오랫동안 집에서 요가 매트를 깔고 유튜브로 요가 수업을 따라해 왔다. 특히 나에게 맞는 선생님 한 분을 발견한 뒤로는, 그 선생님이 올려 주신 영상을 이것저것 번갈아 가면서 따라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짧게라도 요가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몸으로 느껴지니까, 건강을 위해서라도 시간을 내서 자주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내가 구독하는 선생님이 올해 들어 서양의 요가인 '양요가'에 대비되는 '인요가' 프로그램을 가끔 올려 주셨는데, 인요가를 하게 되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좀 더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본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벼르고 별렀다가 어제는 50분이 넘는 인요가 프로그램을 따라 했는데, 내가 첫 자세를 잡고 스트레칭을 하다가 우는 것이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오고, 내 몸은 이완되어 있었고, 그 순간 나는 내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불안하다. 다가올 시험도, 그 시험의 결과도, 그로부터 비롯될 내 미래가 불안하다.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괜찮지 않다.

  할머니 생각도 났다. 임고 준비를 한다고 가지 않았던 2년 전 추석이, 할머니가 그나마 건강하셨던 그 마지막 추석이 자꾸 후회로 다가와 다음 자세를 유지하면서 또 울었다. 할머니는 기간제가 무엇인지, 정교사가 무엇인지 모르셨을 텐데, 그런 할머니에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얘기 한 번 해 드릴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죄송하고 죄스럽다. 할머니는 분명 좋아하셨을 텐데. 내가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관용적인 태도와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당신께서 나에게 준 유년 시절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6.

올해의 가을도 이렇게나 훌쩍,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눈앞에 당도해 있다. 바람이 선선하다. 올해가 간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