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화이자 백신 2차 접종을 받고 왔다. 다행스럽게도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별 이상이 없고, 오히려 1차 때보다 근육통도 덜하고 더 멀쩡한 느낌이다.
이렇게 빠른 접종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이번 학기를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며 고등학생들을 가르쳤던 덕분이다. 한 학기 동안 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들과 있었던 무수한 일들은 일언반구도 없었으면서, 덕분에 백신을 빨리 맞았다는 이야기로 오랜만의 후기를 시작하다니… 이것은 지난 한 학기 동안의 일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는 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근무하는 지역도, 근무하는 학교급도, 가르치는 학생들의 나이도, 가르치는 과목도 달라진 이번 한 학기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는가. 그 많은 일들을 때때로 글로 표현해 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번 주 수업부터 먼저 준비하고, 일단 시험 문제부터 출제해 놓고…' 이렇게 수도 없는 핑계 뒤로 글쓰기를 미루어 놓고 나니 어느새 9월이 코앞이다.
어떨 때는 학생들이 너무 예쁘고 대견해서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눈물이 핑- 돌더니, 어떨 때는 소위 정나미가 뚝- 떨어져서 '아, 나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는 사람인가' 싶어 얼마나 자기 반성을 했던지. 그럴 때마다 동료 선생님들을 통해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애정이 식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비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얼마나 많은 위안을 느꼈던지. 머지않은 날에, 조금 더 정제된 생각과 조금 더 넓어진 시야로 올해 내가 겪었던 일들을 기록할 수 있기를. 지금은,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없을 것이므로.
부족함 많은 내가 누군가의 선생님으로 교탁 앞에 서 있었던 시간이 끝나 가고 있다(나의 계약 기간은 8월 말일까지여서, 나는 곧 다가올 2학기 개학 이후에도 대략 열흘 정도 더 출근해야 한다). 그 부족함이 부디 누군가의 마음에 아주 작은 생채기라도 내지 않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나는 그저 8월 안에서 다가오는 9월을 바라보고 있다. 임용의 계절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수험생의 시간이 다시 한 번 돌아온다.
시간 참, 빠르다.
2.
어제 머리를 잘랐다. 예상보다는 조금 덜 자르긴 했지만, 어쨌든 이 행위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뭐랄까, 소위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농담처럼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간도 줄이며 공부할 거야!'라고 말하지만, 사실 스스로에게 '공부할 때'가 왔음을 인지시키는 행위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실제로 머리를 자른다고 공부 시간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원래는 여름 방학 기간부터 공부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8월 말까지 끝내야 하는 예상치 못했던 학교 업무가 생겨나면서 사실, 나는 그 핑계로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시험 공부를 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해 왔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옭매고 질책하다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지금 두렵고 불안한 상태이다. (1년 동안 기간제로 일하며 임용 시험장에 들어갔던)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올해는 한 학기만 일하고 몇 달간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결정을 내 스스로 내려놓고는, 작년처럼 '일과 병행하다 보니 공부할 수가 없더라'는 핑계를 대지 못할 것이 솔직히 겁난다. 반 년간의 경력 공백이 생기는 것도 어쩐지 찜찜하다.
그래서 나는 여름 방학 한 달간, 내가 다시 한 번 임용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2021년의 내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어떠한 소소한 결과나마 스스로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최악의 경우가 닥쳐와도 그때의 나를 스스로가 살려 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가정을 하고, 이런 고민을 하는 내 모습에서 나는 내가 더 이상 패기로 가득 차 있던 초수생 혹은 재수생이 아님을 깨닫는다.
어쨌든, 어차피 학교 일 때문에 8월까지는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핑계로, 나는 작은 목표도 세우고(지금 이것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예상치 못했던 제안을 수락함으로써) 올해를 '존재'하는 시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