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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Aug 29. 2021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2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1.

화이자 2차 접종을 맞은 지 조금 있으면 2주가 다 되어 간다. 백신을 맞은 직후에는 몸이 너무 멀쩡한 듯 느껴져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곧이어 마무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날 밤부터 다음날까지는 몸이 꽤 이상했다. 타이레놀을 챙겨 먹지 않으면 잠이 들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리고(그 증상이 소위 말하는 '편두통'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몸 자체의 기력이 평소보다 확연히 떨어지면서, 약 기운이 돌면 겨우 쪽잠을 자면서 멍하니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2학기 개학을 하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개학하는 날부터는 몸이 정상으로 돌아와 무사히 출근할 수 있었다. 학교에 출근하고 보니, 몇몇 동료 선생님들께서는 확실한 이상 증상을 느끼셨고 아직까지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신 분도 있다. 이런 시기에는 더더욱, '건강이 최고다'라는 말만큼 뻔하고도 뻔하지 않은 말이 없는 듯싶다. 모두들 부디 안녕하시기를.


2.

널찍한 TV가 있었던 본가에서 TV 없는 자취 생활로 돌아온 이후, 예전처럼 나의 오래된 노트북은 나의 TV이자 영화관의 역할을 쉼 없이 수행해 왔다. 특히 올해는 넷플릭스(Netflix)에 가입을 했기 때문에, 퇴근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 시간이나 주말마다 틈틈이 여러 작품을 정주행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나' 자신을 분석하는 걸 즐긴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어떤 작품을 중도에 하차했다면 '어떤 점에서 내가 이 작품을 시청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자문해 보고, 내가 어떤 작품을 너무 재미있게 시청했다면 '왜 내가 이 작품에 몰입하게 되었는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그러한 분석조차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름의 근거나 이유를 찾고 나면 어쩐지 '나'란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느낌이 들어 뿌듯할 때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내가 넷플릭스에서 주로 외국 작품을 시청해 온 이유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외국 작품을 볼 때보다 우리나라의 작품을 시청할 때 더 많은 감정을 소모하는 듯했다. 아예 외국이 배경인 작품을 볼 때는 등장인물 간 갈등이 생기든 내용 전개상 문제 상황이 발생하든 확실히 남 일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작품을 볼 때는 그러한 '거리감'이 확실히 줄어들다 보니 완전히 남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작품 속 유머 코드가 이해되지 않아 웃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나는 최대한 나의 에너지를 쏟지 않고 무언가를 그저 시청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분명 내 취향에 맞을 우리나라 작품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영 중일 때 시청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넷플릭스에서는 이미 완결되어 있는 우리나라 작품을 거의 보지 않았다. 적어도 올해는 그랬다.

   내가 분석한 이 이유가 요즘의 '나'를 잘 대변해 주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시기의 취향도 내 역사의 일부인 만큼 아래에 내가 시청한 작품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상을 짤막하게 남겨 볼까 한다. 원래는 중도에 멈춘 작품까지도 언급하고 싶었는데 시간 관계상 오늘은 정주행을 완료한 작품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오, 이런 리뷰는 처음이라 어쩐지 떨린다!


(1)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원제: how i met your mother)

원제가 이 시트콤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해 주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매 회가 시작되면 남자 주인공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너희 엄마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 과정이 무려 9개의 시즌에 걸쳐 다루어진다!

   (다른 많은 리뷰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어느 정도쯤 지나면 '그래서 도대체 아이들의 엄마는 언제쯤 등장하냐!'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과정에서 극강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것도 같은데, 왜냐하면 남자 주인공의 끊임없는 인연 찾기의 과정(당연하게도 대부분은 잘 되지 않는다)을 반복적으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 바람둥이로 설정된 남자 주인공의 친구 캐릭터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캐릭터의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사람을 대하는 그의 가치관이 사람에 따라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이 시트콤을 정주행하고 나서 한동안 남녀 사이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은 도저히 시청할 수가 없었다. 물려서…)

   미국의 전설적인 시트콤 <프렌즈>를 재미있게 시청한 분이라면(나는 <프렌즈> 전 시즌을 두 번 정도 정주행했다) 이 작품도 어느 정도 취향에 맞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나도 아주 재미있게 시청했다. 그렇지만 굳이 둘 중에 하나를 추천하자면,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프렌즈>가 더 인상적이었다.

   별점을 매기자면 (5점 만점에) 3.5점과 4점 사이. 3.5점을 주기에는 좀 짠 것 같다가도, 4점을 주기에는 너무 후한 것 같은 그런 느낌.


(2) 브루클린 나인-나인 (원제: BROOKLYN NINE-NINE)

뉴욕 브루클린의 99번 관할서에서 벌어지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트콤이다.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경찰들이 사건을 조사하고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매 회마다 짧게 짧게 다루어진다.

   특징적인 것은 그 과정이 전혀 무겁거나 무섭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부분도 거의 없다. 이 작품의 소재를 생각했을 때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점에서 이 시트콤이 너무 좋았다. 나는 의학 드라마에 나오는 피는 볼 수 있지만(수술 장면 등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시청할 수 있다) 폭력적인 장면에서 발생하는 피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 <브루클린 나인-나인>만큼은 언제든 긴장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심지어 심각한 상황조차도 그리 오래 끌지 않고 바로 해결되는 편이라, 주인공들의 위기가 오래 지속되는 것을 견디는 게 힘드신 분들(내가 그렇다!)에게 추천할 수 있을 듯하다. 심지어 러브 라인까지 사람을 피로하게 하지 않는다. (엄청난 스포인가?)

   대부분의 외국 작품들이 그렇듯 우리의 상식선(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에서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인물이 존재는 하지만, <브루클린 나인-나인> 속 그런 캐릭터들을 애정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유쾌함 속에서 동료들 간의 애정과 신뢰가 사람 냄새 가득하게 그려진다.

   별점을 매기자면 (5점 만점에) 4점과 4.5점 사이.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4점 이상.


(3) 그레이스 앤 프랭키 (원제: Grace and Frankie)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그레이스'와 '프랭키'가 각각 남편과 이혼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혼 사유는 그 둘의 남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밝혔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어쩌다 보니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같은 별장에서 동거하게 되는데, 함께 힘든 시기를 이겨 내며 서로를 이해해 나간다. 특히 '그레이스'와 '프랭키'가 (이런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으나) 노년 여성의 다양한 감정과 욕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나가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다. 이 작품을 시청하며 나는 내가 혹시 노년의 삶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으며,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나의 미래를 그려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부분에 대해 내 사고의 폭을 넓히게 된 것도 같고.

   사실 이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소재들은 사람에 따라 굉장히 민감한 부분일 수 있어 어떻게 언급해야 할지 상당히 조심스러운데, 그렇기 때문에 어설프게 언급하기보다는 비워 두기로 한다. 판단은 꼭 시청한 이후에 내려 주시기를. (참고로 지금 넷플릭스에 새로운 시즌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나는 현재 아껴둔 상태.)

   별점을 매기자면 (5점 만점에) 개인적으로는 단연코 5점. 이 작품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 부러울 정도. 18세 이상 시청 가능한 작품임에 주의.


3.

글을 쓰다 보니 저녁 10시가 다 되어 간다. 내일의 평온한 출근을 위해서는 이제 취침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시간에 이렇게 출근 준비를 하는 것도 오늘을 포함해서 딱 이틀이 남았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학기 중간에 내가 떠나는 것이라 조용히 사라져야(?) 하나, 아니면 제대로 인사는 해야 할까 꽤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명확히 설명을 하고 떠나는 편을 택했다. 그것이 아이들에 대한 내 나름의 예의와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금방 나를 잊고 자신의 일상을 평소대로 살아갈 것이고, 나도 나의 달라진 삶에 금세 적응할 것이다. 그렇지만 눈에 밟히는 많은 아이들을 떠올릴 때면, (퇴사의 즐거움을 분명 크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아이들의 남은 학창시절을 곁에서 지켜볼 수 없음에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뭐 그리 큰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을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화법과 작문' 과목을 가르친 선생님으로서 따뜻한 말 한마디는 정말 잘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떠남'을 고민하지 않고 '머무름'만 고민하면 되는 교사가 되고 싶다. (사람은 간사해서 그때는 분명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 머무르기 위해 지금은 떠나야 할 때. 마지막 월요일 출근이 코앞이다. 작별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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